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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가기 싫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조선생활실록(實LOG)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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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이 말하기를,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잊지 말라’고 하였는데, 지금은 평화로운 시대가 오래여서 인심이 편안함에 익숙해졌다. 여러 도의 산성에서의 훈련하는 규정을 시행하되, 민폐를 끼치지 말라고 단단히 타일러 경계하라.” (영조실록 1년 1월 26일 기축)

 

무예도보통지의 삽도와 총보를 뽑아 언해해 한 권으로 만든 무예 교본이다.
무예도보통지의 삽도와 총보를 뽑아 언해해 한 권으로 만든 무예 교본이다.

국가 체제를 보위하는 최후의 보루로 우리는 흔히 군대를 떠올린다. 강력한 국방력이 없다면, 그 국가가 오랫동안 존속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문치주의 사회로 국방력이 약했을 것으로 인식하는 조선에서도 국방력 문제는 첨예한 관심사 중 하나였다.

 

조선의 군대는 젊은 남자들 사이에서 군대에 적합한 사람을 동원하고, 이 사람들을 일정한 방식에 따라 편성하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편성된 군대는 평시에 훈련하면서 미래에 있을 전란에 대비하게 된다. 조선이 군인을 선발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조선 백성 중 대부분은 국가가 부과하는 군역에 응하는 방식으로 군인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선발된 군인 중 상당수는 돈을 내고 군대 가는 것이 면제되지만, 그래도 일부는 군대에 가서 직접 근무를 서게 된다.

 

기효신서에서 대봉, 등패, 낭선, 장창, 당파, 장도를 다루는 여섯 가지 무예를 뽑아 언해를 붙여 편찬한 무예 교본이다.
기효신서에서 대봉, 등패, 낭선, 장창, 당파, 장도를 다루는 여섯 가지 무예를 뽑아 언해를 붙여 편찬한 무예 교본이다.

군역을 부과하는 조정과 부과받는 사람의 갈등은 첨예한 문제였다. 군인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전이나 향리의 농간도 무시할 수 없었다. 다산 정약용은 그의 저서 ‘목민심서’에서 “군인 한 명을 서울로 올려보내는 데 그 침해가 백 집에 미치고, 열 명을 뽑는데 천 집을 괴롭히게 되니 사방이 소란해서 마치 난리가 난 것 같다”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군역을 피하고자 하는 사람과 군역을 충원하고자 하는 조정의 갈등은 향촌 사회를 뒤흔들만한 큰일이었다.

 

이렇게 군인을 선발하는 데 갈등이 많은 것은 그만큼 군대가 힘들기 때문이다. 먼저 집에서 부대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특히 어영청이나 금위영의 군인들은 주로 지방에 거주하다가 4년에 1번씩 서울로 올라와 2개월 동안 근무를 서고 내려가는 처지였다. 전라도나 경상도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군인들의 고통은 짐작할 만하다.

 

무예제보속집에 일본고를 덧붙여 펴낸 책으로 권법, 청룡언월도, 협도곤, 왜검을 다루는 무예를 수록한 병서이다.
무예제보속집에 일본고를 덧붙여 펴낸 책으로 권법, 청룡언월도, 협도곤, 왜검을 다루는 무예를 수록한 병서이다.

전국 각지에 있는 산성도 주요한 근무처 중 하나였다. 근무 때마다 성에 올라갔을 군인들의 노고도 상당했을 것이다. 연해에 일정하게 배치된 수군 기지 ‘수군진’에도 군인들은 근무를 섰다. 변변한 교통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조선의 군인들은 부대에 가는 데만 상당한 시간과 노동력을 허비하는 것이다.

 

군대에 가면 군인들은 여러 가지 업무를 수행했다. 그중에서 훈련은 군인들이 행하는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국왕은 종종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잊지 말라는 교훈을 떠올리며 훈련 문제를 언급하곤 했다. 훈련의 절차는 ‘병학지남’, ‘병학통’ 등 이른바 ‘군사교리’를 수록한 병법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훈련 중 상당수는 모의 전투 훈련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모의전투훈련이란 가상의 적을 상정하고 이들이 공격해 왔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 숙달하는 것이다. 이 훈련의 하이라이트는 진법을 펼치는 것이었다. 조선군은 원앙진, 학익진 등 다양한 진법을 펼쳐서 적과 대적했다.

 

조선 후기 바다에서 실시한 수군의 훈련 모습을 그린 12폭 병풍이다.
조선 후기 바다에서 실시한 수군의 훈련 모습을 그린 12폭 병풍이다.

훈련과 함께 군인의 중요한 입무는 바로 ‘행행’이다. 행행은 국왕이 선대 왕릉 방문, 온천 방문을 목적으로 도성을 떠나는 것이다. 이때 서울에 있는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등은 국왕의 경호를 위해 행행에 참여해야 했다. 각종 노역도 군인의 몫이었다. 한양도성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성곽을 수축하거나 수리하는 임무는 군인의 노역 중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조선 조정에서는 한양도성을 세 구역으로 구분해서 각 구역을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에게 관리를 하게 했다. 이들은 도성을 순찰하면서 도성이 헐거나 무너지게 되면 그 수리에 참여해였다. 지방에 있는 군사들도 산성 수축에 동원되거나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설치된 보(湺)를 수리하는 데 동원되었다.

 

화성능행도 가운데 정조의 현륭원 행차 부분으로, 정조는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현륭원(사도세자의 능)에 행차한다.
화성능행도 가운데 정조의 현륭원 행차 부분으로, 정조는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현륭원(사도세자의 능)에 행차한다.

조선은 500년을 넘는 기간 동안 국가를 유지했다. 500년이라는 기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라 볼 수 있다. 조선이 이렇게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조선의 군대에서 근무했던 군인들의 헌신도 큰 역할을 했다. 이는 조선을 문치주의 국가, 연약한 국방력을 가진 국가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국학진흥원 전통생활사총서 26)

 

송기중 해군사관학교 인문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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