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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녀의 벽 허문 퀴리, 여성 과학자들의 ‘길’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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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윤 기자 chasy9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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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퀴리의 원소들-라듐의 불빛은 어떻게 여성 과학자들의 길을 밝혔나/데이바 소벨 지음/김병순 옮김/돌베개/2만6000원

 

마리 퀴리만큼 유명한 여성 과학자가 있을까. 사후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퀴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는 유일한 여성 과학자로 꼽힌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금녀의 영역이던 대학과 과학에서 쌓아 올린 퀴리 ‘개인’의 신화에 머물러 있다.

뉴욕타임스 과학 기자를 역임한 데이바 소벨은 과학사를 스토리텔링을 통해 소개하는 데 정평이 난 인물이다. 소벨은 신간 ‘마리 퀴리의 원소들’을 통해 퀴리의 신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더 확장한다. 책은 한 여성 과학자의 성취가 다른 젊은 여성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으며, 그 여성들이 다시 과학의 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이야기한다.

데이바 소벨 지음/김병순 옮김/돌베개/2만6000원
데이바 소벨 지음/김병순 옮김/돌베개/2만6000원

저자는 퀴리의 일생과 업적에 더해 그녀가 길러낸 젊은 여성 과학자들의 도전과 성장, 독립의 서사를 엮어 연대기적 이야기로 꾸렸다. 즉 퀴리라는 익숙하고 저명한 인물을 통해 과학사의 뒤안길에 숨겨진 여성 과학자들의 생애를 기록하고, 새 원소들의 발견과 초기 방사능 연구의 세계를 소개한다.

퀴리의 성취는 여성 과학자들에겐 하나의 가능성이자 어두운 바다를 비추는 등대 같은 존재였다. 책의 부제 ‘라듐의 불빛’은 물질의 비밀을 드러낸 과학적 발견이면서 동시에 퀴리가 거둔 성과가 여성 연구자들의 희망이었다는 점을 뜻한다. 퀴리 연구실은 방사능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탐구하는 장소이자, 기회를 얻기 어려웠던 여성들이 과학 연구를 직업으로 삼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희망의 공간이었다. 책은 퀴리 연구실 구성원들을 조명하면서 이들 여성들의 단순한 과학적 성취가 아닌 보통의 인간으로서 살아낸 삶을 읽을 수 있게 소개한다.

책의 제목 ‘마리 퀴리의 원소들’도 두 가지 의미를 담는다. 과학적 성취로서 퀴리가 발견한 폴로늄과 라듐 등을 의미하는 동시에, 퀴리와 함께 일하며 과학자로 성장한 동료 및 후배 여성 과학자들을 뜻한다. 마리 퀴리가 발견한 원소들만큼 중요한 유산으로서 그녀의 연구실에서 함께한 여성 과학자들의 존재를 제시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책 각 챕터의 제목에 ‘마냐(수소)’, ‘마리(철)’과 같이 인물 이름과 원소명(또는 당시 방사성물질)을 병기했다. 과학과 삶을 동시에 재현하기 위함이다.

퀴리 본인의 삶을 다루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위인’으로서 고난과 성공 외에도 퀴리와 제자들이 겪은 연구에 대한 열정, 실패에 따른 좌절은 물론 생활비 걱정, 결혼과 커리어 간 갈등 등 일상의 소재도 함께 적었다. 또 퀴리가 제자들에게 연구를 맡기고, 장학금과 자리를 마련해 주는 등 스승으로서 도왔던 일화들도 소개한다.

‘은사’ 퀴리를 통해 성장한 연구자들이 서로를 돕고 교류해 이어지는 연대의 역사도 함께 담겼다. 노르웨이 엘렌 글레디치, 스웨덴 에바 람스테트, 캐나다 해리엇 브룩스 등은 귀국 후에도 여성 유학과 전문직 진출을 지원하는 국제대학여성연맹 활동에 참여한다. 퀴리 연구실에서 생겨난 불씨를 전 세계로 퍼뜨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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