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5개 계좌 정밀 추적 최상위 공급망 적발
72명 검거·19명 구속... 사이트 188개 중단
국내외 범죄 플랫폼·자금 유통망 수사 성과
국외 도피 공범 12명 적색수배·송환 등 추진
23조원. 충남경찰이 검거한 국내 최대 규모 불법 도박사이트 조직이 만들어낸 천문학적인 도박판의 규모다. 대기업 출신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이 도박사이트를 만들고, 조직폭력배들이 운영에 가담했다. 범죄조직은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거점을 마련하고 국내외를 넘나들며 거대한 불법 도박 생태계를 구축했다.
이처럼 치밀하게 움직인 기업형 범죄조직의 최상위 공급망을 충남경찰이 추적 끝에 적발했다.
충남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2023년 3월부터 올해 7월까지 국내외에서 188개 도박사이트를 제작·분양하고 약 23조원 규모의 불법 도박공간을 개설한 조직을 적발해 72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19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번 수사의 가장 큰 성과는 개별 도박사이트 운영자를 검거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수백 개 사이트에 프로그램과 게임머니를 공급하는 최상위 조직을 무너뜨렸다는 점이다.
수사의 출발점은 지난해 11월 적발한 한 도박사이트였다. 충남경찰은 단순히 사이트 운영자들을 검거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범행에 이용된 금융계좌 795개와 해외 메신저 사용 내역 등을 정밀 분석해 조직의 자금 흐름과 지휘체계를 추적했다.
그 결과 불법 도박산업의 최상단에 해외 카지노 영상과 게임머니를 공급하는 '벤더사', 그 아래 도박사이트를 제작·분양하는 '솔루션 업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조직은 벤더사에서 솔루션 업체로, 다시 도박사이트 운영진과 도박자 모집책으로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하부 조직이 늘어날수록 최상위 공급조직의 게임머니 유통 수익도 커지는 피라미드형 범죄사업이었다.
솔루션 조직은 대기업 IT 출신 전문가 등을 영입해 도박사이트 제작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했다. 이를 이용해 만든 사이트를 하부 운영자들에게 분양하고 매월 300만원의 유지관리비를 받았다. 게임머니를 재판매하는 방식으로도 수익을 챙겼다.
조직폭력배들을 운영에 끌어들이는 한편,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국내와 동남아에 사무실을 분산하고 수시로 거점을 옮겼다. 해외 서버와 메신저, 대포통장 등도 동원했다.
하지만 복잡한 조직 구조와 국경을 넘나드는 은폐 전략도 충남경찰의 추적을 피하지 못했다.
경찰은 최상위 공급망 관련자 21명을 검거해 16명을 구속하고, 도박사이트 운영자 27명과 대포통장 모집책 5명, 도박자 19명 등 모두 72명을 붙잡았다. 솔루션 조직원 20명에게는 범죄집단 조직·가입·활동 혐의도 적용했다.
특히 개발자 검거를 계기로 이들이 제작한 도박사이트 188개의 운영을 모두 중단시키고, 관련 인터넷주소 408개도 차단했다.
범죄수익 환수에도 나섰다. 조직 운영진의 범죄수익 60억원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기소 전 추징보전 인용 결정을 받았고, 추가 36억원에 대해서도 추징보전을 추진하고 있다.
국외 도피 중인 공범 12명에 대해서는 인터폴 적색수배와 강제 송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수사는 충남경찰이 개별 범죄자를 검거하는 수준을 넘어 범죄 플랫폼과 자금 유통망을 동시에 겨냥하는 수사로 영역을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충남경찰의 수사 역량은 이번 사건에서만 드러난 것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보이스피싱과 로맨스스캠 등 국제 범죄조직을 상대로 잇따라 대규모 검거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10월에는 캄보디아에서 송환된 피의자 45명을 포함해 모두 55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보이스피싱과 투자사기 등으로 피해자 110명에게 93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았다. 올해 1월에는 캄보디아 시아누크빌과 포이펫 등지에서 활동한 로맨스스캠 조직원 17명을 구속 송치했다. 수사 과정에서는 현지 범죄단지에 대한 국제 공조작전을 통해 조직원 27명을 검거한 사실도 확인됐다.
지난 4월에는 한층 더 큰 규모의 국제 공조수사 성과가 나왔다.
충남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는 범정부 초국가범죄 특별대응 태스크포스(TF), 캄보디아 코리아전담반과 협력해 현지에 수사관을 파견하고 보이스피싱과 투자사기, 노쇼사기 조직을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캄보디아 현지에서 피의자 53명을 확보해 국내로 송환하거나 추방 절차를 거쳐 입국시켰다. 국내 가담자까지 포함해 59명을 검거하고 57명을 구속 송치했다.
특히 검거된 조직 가운데 이른바 '송민호파'는 검사와 금융감독원 등을 사칭해 368명으로부터 516억여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았다.
충남경찰이 국내에서 금융계좌와 디지털 증거를 추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외 현지 수사기관과 협력해 범죄조직의 실체를 규명하고 국내 사법처리로 연결하는 수사 경험을 쌓아왔다는 평가가 가능한 대목이다.
이번 23조원대 도박사이트 조직 검거 역시 이러한 수사 역량의 연장선에서 주목된다.
보이스피싱과 로맨스스캠, 불법 도박은 범죄 수법은 다르지만 해외 거점과 온라인 플랫폼, 차명 금융계좌, 조직적인 역할 분담을 이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조직의 말단 가담자만 검거해서는 범죄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충남경찰은 이번 수사에서 최상위 공급조직을 추적하고 도박사이트 제작 프로그램과 게임머니 유통망을 차단함으로써 범죄조직의 재생산 구조를 겨냥했다.
다만 해외 거점 조직의 총책 검거와 범죄수익의 실질적인 환수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도박사이트 운영 중단 이후 다른 플랫폼으로 조직이 이동하거나 유사 사이트가 다시 개설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충남경찰청 관계자는 “단속에도 불구하고 도박사이트가 지속적으로 개설되는 점에 주목해 원점 차단에 주안점을 두고 수사했다”며 “최상위 공급망을 와해시켜 수백 개의 도박사이트가 고사하는 효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최상위 공급망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단속 활동을 펼치고 국제 공조를 통해 해외 도피 공범들의 검거와 송환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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