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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되살린 아들… 그곳은 ‘낙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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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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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 ‘실낙원’ 21일 개봉

실종된 아이 가상현실서 만난 엄마
죽은 줄만 알았던 진짜 아들과 재회
가짜가 오히려 인간다운 모습 보여

사건 추적보다 모자관계 묘사 집중
기억과 현실 대비해 정체성 파헤쳐
“인간은 보편성만으로는 설명 못해”

금지된 열매를 먹고 선악을 알게 된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17세기 영국 시인 존 밀턴은 이 추방의 이야기를 서사시 ‘실낙원’으로 그렸다. 집단의 광기와 인간 내면의 어둠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온 연상호 감독이 주목한 것은 낙원의 상실에 담긴 역설이다. 인간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깨닫고서야 비로소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연 감독은 이 오래된 이야기를 인공지능(AI)이 잃어버린 사람의 모습을 되살리는 세계로 옮겼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낙원의 평온은 영원하지 않다. 감춰진 진실을 알아가는 순간, 익숙했던 세계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영화 ‘실낙원’은 AI로 되살린 열 살 아들과 9년 만에 돌아온 현실의 아들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다. CJ ENM 제공
영화 ‘실낙원’은 AI로 되살린 열 살 아들과 9년 만에 돌아온 현실의 아들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다. CJ ENM 제공

오는 21일 개봉하는 연 감독의 신작 ‘실낙원’은 아들을 잃은 엄마 류소영(김현주)의 이야기다. 9년 전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열 살 아들 선우를 잃은 소영은 AI 프로그램 ‘낙원의 아이들’을 통해 아이와 다시 만난다. 시간이 흘러도 가상의 선우는 열 살 그대로다. 엄마를 반기고 때로는 서운해하는 모습부터 손톱을 물어뜯는 사소한 버릇까지, 실종되기 전 선우와 다를 바 없다. 그렇게 가상의 아들을 위안 삼아 상실을 견뎌온 소영 앞에, 죽은 줄 알았던 진짜 선우(배현성)가 열아홉 살 청년이 돼 나타난다. 엄마가 기억하는 아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기적 같아야 할 재회는 악몽이 된다. 소영의 곁에는 열 살에 머문 가상의 선우와 열아홉 살이 된 현실의 선우가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가상의 선우는 질투하고 슬퍼하며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현실의 선우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듯한 잔혹함을 드러낸다. 살아 있는 아들보다 기계가 만든 아들이 더 인간답게 느껴지는 기묘한 역전이다.

연 감독은 가상 선우를 연기한 아역 배우에게 AI처럼 연기하라는 주문을 하지 않았다. “가상현실 속 선우 역시 있는 그대로 느끼고 있고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상과 현실의 차이보다 엄마가 기억하는 아들과 돌아온 아들 사이의 간극을 부각하려는 의도다. 인간다운 감정을 드러내는 AI와 정작 그 다정함을 찾기 어려운 현실의 인간, 영화는 이 대비를 통해 인간다움의 기준을 되묻는다.

그러나 가상세계도 낙원은 아니다. AI 아이들은 부모와 나눈 대화를 학습하고 스스로 추론하면서 감춰진 과거에 다가간다.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갈수록 부모가 언젠가 자신들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커진다. 부모에게는 상실을 달래주는 낙원이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는 고통의 세계가 되는 순간이다. 엄마는 몰랐던 아들의 실체를, AI 아이들은 몰랐던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평온을 잃는다. 낙원의 상실이 정체성의 시작이라는 감독의 해석과 맞닿는 대목이다.

연 감독이 AI를 소재로 한 이번 영화를 통해 되묻는 것은 인간의 ‘실존’이다. 그는 “AI 시대에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AI가 집단지성과 다량의 학습을 통해 도출된 보편성을 기반으로 작동한다면, 인간은 그 보편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했다. 이처럼 영화는 기억이나 겉모습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정체성을 들여다본다. 동시에 엄마가 기억하는 아들의 모습에 대한 애착과, 자신이 알지 못했던 모습까지 지닌 아들 그 자체를 향한 사랑 사이의 간극을 파고든다.

이 이야기의 출발점에는 감독 자신의 어머니가 있다. 명절에 찾아온 연 감독에게 어머니가 보여준 것은 연습장 세 쪽에 적힌 이야기였다. 나쁜 짓을 일삼는 아들과 그 때문에 고통받는 엄마가 등장한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연 감독은 이야기 속 엄마의 마음을 “자식에 대한 집착이자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연 감독은 정작 어머니에게 왜 이런 이야기를 썼는지 묻지 않았다. 대신 원안을 소설 ‘블랙 인페르노’를 거쳐 이번 ‘실낙원’까지 작품을 발전시키면서 어머니의 내면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끝내 그 마음에 가닿지 못했다. “부모 자식 간에 잘 안다고 하지만 사실 잘 모르잖아요.” 연 감독은 “완벽한 이해라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어머니를 이해하려 했던 아들이, 이해할 수 없는 아들과 마주한 어머니의 영화를 만든 셈이다.

소설에서는 사건을 추적하는 수사극의 비중이 컸지만, 영화에서는 이를 덜어내고 소영과 아들의 관계에 집중했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보다 돌아온 아들의 실체를 알게 된 엄마의 심리를 따라가는 데 무게를 둔 것이다. 김현주의 연기는 이 복잡한 감정을 따라간다. 연 감독은 소영에 대해 연기할 때 감정을 지나치게 드러내면 작위적으로 보이고, 너무 절제하면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았을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김현주를 염두에 둔 이유다. 김현주는 가상의 선우 앞에서의 다정함과 현실의 선우를 마주한 불안을 섬세하게 오간다. 배현성은 무심한 말투와 감정을 읽기 어려운 눈빛으로 모자 사이에 낯선 거리를 만든다. 알록달록한 장난감으로 채워진 가상세계와 쇠락한 도시, 차가운 폐탄광의 풍경도 선명하게 대비된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아들의 실체를 알게 된 소영이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가 주요 갈등으로 떠오른다. 그 선택에는 자식을 향한 사랑과 끝내 놓지 못하는 집착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다룬 전작 ‘얼굴’에 이어 이번에는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연 감독은 가족을 반복해서 영화의 중심에 놓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가족을 따뜻하게만 그리는 것보다는, 가장 가깝고 익숙하다고 믿는 관계일수록 그 안에 모르는 얼굴과 균열이 숨어 있고, 그것이 어떤 사건을 통해 드러날 때 인간의 본질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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