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당시 주월(駐越) 한국군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육군 중장의 회고록 ‘베트남 전쟁과 나’(2006)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1965년 박정희정부가 월남전 파병을 결정했을 당시 채 장군은 소장 계급으로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을 맡고 있었다. 참모총장은 채 장군에게 “박정희 대통령의 의중”이라며 파월 전투부대 지휘관 자리를 제안했다. 이에 채 장군은 이병형 장군을 적임자로 천거하며 “6·25 전쟁 영웅이고 전략·전술에 능한 장군”이란 이유를 들었다. 결국 청와대와 육본의 뜻대로 채 장군이 파병 부대를 맡았고, 이로써 그는 우리 현대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게 됐다.
어쩌면 주월 한국군 사령관이 될 뻔했던 이병형 장군은 어떤 인물인가.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난 그는 월남한 뒤 1949년 육군사관학교(4기)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다. 이듬해인 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자 대대장, 연대장으로 최일선에서 싸웠다. 특히 연대장 시절 130회의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불패의 명장’으로 알려졌다. 채명신 장군이 그를 ‘전쟁 영웅’이라고 부른 까닭이다. 이 장군이 쓴 연대 전투 전략서는 후배 육군 장교들 사이에서 필독서가 되었다. 5군단장을 거쳐 1976년 2군사령관(중장)을 끝으로 전역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병형 장군이 군단장이던 시절 5군단 예하 부대의 지휘관으로 일하며 이 장군의 지략과 리더십을 귀감으로 삼았다고 한다. 노태우정부 출범 이듬해인 1989년 6·25 전쟁 유산을 보존하고 참전용사들을 선양할 목적으로 전쟁기념사업회가 발족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장군에게 “사업회 초대 회장을 맡아 달라”고 직접 부탁했다. 지금의 용산 국방부 맞은편에 있던 옛 육본 청사 부지에 사업회가 운영하는 전쟁기념관이 들어섰다. 백승주 전 사업회장(2023년 4월∼2026년 3월 재임)은 “이 장군이 오늘날 기념관의 건물, 콘텐츠 등을 꼼꼼히 다 챙겼다”며 “역사에 남을 기념관의 토대를 만든 분”이라고 말했다. 기념관 1층의 대강당은 지난 2003년 77세를 일기로 별세한 이 장군을 기리는 뜻에서 ‘이병형홀’로 명명(命名)됐다.
지난 16일 전쟁기념관 이병형홀에서 김현종 제13대 전쟁기념사업회장 취임식이 열렸다. 이재명정부 들어 국가안보실 1차장을 지낸 김 신임 사업회장은 육사(44기) 기수로 따져 이병형 초대 사업회장의 까마득한 후배다. 육군에서 중장까지 진급하고 특히 서부전선 최전방 5군단장을 역임한 점도 공통적이다. 그는 취임사에서 전쟁의 역사를 기록하고 헌신한 이들의 뜻을 기리며, 전쟁의 교훈과 평화의 소중함을 전해야 할 책무를 강조했다. 김 사업회장 임기 동안 사업회와 기념관 모두 한 단계 더 발전하고 도약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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