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 반하다
2021년 4월 삼성가에서 기증한 이건희컬렉션은 역대급의 규모(1만1023건·약 2만3000점) 뿐만 아니라 개별 수집품이 워낙 뛰어나 큰 주목을 받았다. 단연 화제가 된 건 진경산수 최고 걸작 ‘인왕제색도’였다. 현전 작품이 드문 고려불화 ‘천수관음보살도’, 초기 철기시대의 권력의 상징인 ‘청동방울’ 등 국가지정문화재만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이었다. 근대미술품으로는 이중섭, 이상범, 모네, 피카소 등 미술에 관심이 없어도 이름은 들어봤음직한 국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이 포함됐다.
이러니 컬렉션에 작은 밥상, 즉 소반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면 ‘이런 것도 있었어’ 싶을 수도 있다. 모두 83점. 꽤 관심을 두고 수집을 했음을 짐작해 볼 만한 숫자다.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들의 밥상’ 특별전에 이건희컬렉션의 소반 수집품 중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전시회 취지에 똑떨어지는 유물인데다, 도입부에 배치되어 있어 손님을 맞는 주인같다. 최고의 작품으로 자신의 컬렉션을 채운 이건희는 작고 소박하며, 대개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룬 일상의 물건인 소반의 무엇에 반했을까.
아사카와 다쿠미(1891∼1931)는 조선 소반의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본 인물이다. 조선총독부 임업연구소에서 근무하며 산림녹화에 애썼던 그는 출장, 여행 등으로 조선 곳곳을 다니며 보았던 소반을 연구, 정리했다. 그에게 소반은 사용할수록 품위를 더해가는 ‘올바른 공예품’의 표본이자 뛰어난 예술품이었다.
이건희컬렉션으로 한 켠을 꾸민 중박 특별전을 감상하며 조선인의 일상에 주목해 소반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한 일본인의 심미안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다. 또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인처럼 살며, 조선의 아름다움을 드높이고 미래를 걱정했던 그의 짧은 일생을 되짚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쓸수록 더 좋아진다
‘조선의 소반’은 1929년 3월에 출판된 다쿠미의 책이다. 소반의 역사와 종류, 지역별 특징, 쓰임새 등을 정리했다. 책 앞자리에 자신이 생각하는 소반의 가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조선의 소반은 순박한 아름다움에 단정한 모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친숙하게 봉사하며 세월이 흐를수록 아취를 더해가니 올바른 공예의 표본이라 부를 수 있다.”
소반의 순박함은 태생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이다. 산에서 임의로 고른 큰 나무를 베어다 적당한 부분을 잘라 말리고, 짬이 날 때 느긋하게 만들었다. 만듦새에 특별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었다. 생활용품으로 만든 것이라 화려하게 조각하거나, 무늬를 넣을 것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한 실용적 미의식 정도만 반영하면 충분했다.
소반의 아름다움이 재료인 잡목에서 비롯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은행나무, 느티나무, 오리나무, 물푸레나무 등 재질이 단단한 나무가 주로 쓰였다. 그는 “조선의 소반이 갖는 면(面)의 온화한 멋은 이런 잡목에서 우러나는 것”이라며 “대개 나뭇결이 복잡하고 변화가 다채로우며 튼튼하고 쓰면 쓸수록 온화한 광택이 난다”고 했다. 자단이나 흑단 같은 질좋은 ‘양목’(良木)은 “나뭇결이 고르기 때문에 별로 재미가 없다”면서 “말리다 뒤틀림이 생기기 쉬울 뿐더러 색도 잡목에 미치지 못하는 등의 결점을 갖고 있다”는 평가했다.
다쿠미가 소반을 소재로 펼친 공예론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이 만든 사람이 아닌 사용하는 사람을 ‘공예의 완성자’로 본 것이다. 사용자의 손에서 특징적인 아름다움을 발휘한다며 소반이 “세월이 흐를수록 더해가는 아취”, “쓰면 쓸수록 드러나는 온화한 광택”를 가졌다고 했다. 좋은 공예품은 사용하는 횟수에 비례해 품위를 더한다는 주장은 오늘날 사람들이 명품을 애호하는 이유와 비슷한 게 아닌가 싶다.
◆“조선 사람 같았던” 일본인
다쿠미는 누구보다 조선을 사랑했다. 약 17년 동안 조선에서 생활한 다쿠미는 모든 면에서 조선인과 다름없었다. 한복을 자주 입었다. 늘 흰 옷을 입고 다녀 “얼핏 보면 조선 사람 같았다”고 한다. 조선 음식을 즐겼다. 조선말도 유창했다. 1931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망우리에 묻혀 ‘조선의 흙’이 되었다.
누구보다 조선미를 애호했다. ‘조선의 소반’과 또 다른 저서 ‘조선도자명고’가 증거다. 조선도자명고는 조선 도자기의 고유한 명칭을 정리한 책이다. 다쿠미는 조선인들 스스로 도자기를 등한시하고, 본래 명칭과 사용법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것이 조선의 역사, 생활, 풍습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책을 통해 조선의 역사, 문화를 보존하고, 도자기의 올바른 명칭 사용법을 정리해 “그릇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붙여진 이름으로 그것들을 부른다면 기꺼이 지난 옛날을 이야기하며 더욱 친근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이런 사람인지라 강점기 일제가 조선에서 벌이는 난장판을 비판했다. 조선총독부 부지로 정해져 크게 망가진 경복궁을 몹시 안타까워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산 위에서 바라본 경복궁 내의 신축 청사는 정말로 어이가 없어 화가 난다. 백악산(북악산)과 근정전과 경회루와 광화문 사이를 무리하게 비집고 들어가 자리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뻔뻔스러워 보인다. 게다가 그들 건물들과의 조화를 깨트리고 너무나도 심술맞아 보인다. 백악산이 존재하는 한 영구히 일본인의 수치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야나기 무네요시와 함께 조선민족미술관을 설립하고, 일상적인 관리는 도맡다시피한 건 조선미를 깊이 애호하고, 그것이 미래에도 이어지길 바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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