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자격 기준 개정 없이 상담 권한 부여... 국민 피해"
정부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심리상담 사업에 임상심리사뿐 아니라 정신건강 분야 사회복지사∙간호사 등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임상심리사들이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이번 반발이 단순한 직역 간 이권 다툼이 아닌 체계적인 심리치료∙상담 수련 과정 정비의 부재가 원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다학제적 협력 현장을 혼란에 빠뜨리지 말라”며 이번 정부의 개정안을 국민 정신건강 문제에 ‘못을 박는 행위’로 규정하고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한국임상심리학회 등 임상심리사들은 16일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가 진행 중인 개정안의 즉각적인 철회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날 학회의 전국 지회들도 세종 보건복지부 청사와 대구∙경북 등에서 릴레이 집회를 개최했다.
보건복지부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오는 19일까지 입법 예고 중이다. 개정안은 정신건강전문요원의 공통업무에 ‘국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시행하는 심리상담 및 재난심리지원 사업의 수행’을 추가하는 게 핵심이다. 대상은 정신건강임상심리사·정신건강간호사·정신건강사회복지사·정신건강작업치료사 등 4개 직역이다. 민간 심리상담이 아닌 공공사업의 업무 범위를 명시하는 것이다. 정신건강전문요원은 사회복지사 1급 자격 소지자나 간호사 면허를 가진 자 등이 정신건강전문요원 수련기관에서 별도로 1년의 수련을 마쳐야 부여되는 국가전문자격이다.
이들은 이번 정부의 개정안이 심리상담 관련 전문 수련 체계를 무력화한다며 이는 국민의 정신건강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배성만 한국임상심리학회장은 “국가·지자체 심리상담은 자살 고위험군 등을 다루는 전문 보건의료 행위로, 다년간의 대학원 심화 교육과 수천 시간의 임상수련, 정밀 심리평가 역량이 필수적”이라면서 “그러나 복지부는 심리평가·치료 실습이 전무한 직역에 자격 기준 개정도 없이 상담 권한만 부여했다. 이런 조치는 조기 치료 지연과 치료 이탈을 불러 그 피해는 국민이 부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학회는 성명서를 통해 “복지부는 정밀 심리평가 및 심리치료 수련 실습이 전무한 타 직역에 문구 개정만으로 심리상담 권한을 부여하면서도, 정작 상응하는 자격 기준이나 수련과정은 단 1시간도 개정하지 않는 구조적 모순을 야기했다”며 “검증되지 않은 인력의 상담 개입은 조기 치료의 지연과 치료 이탈을 초래해 온전한 전문 치료를 받아야 할 국민에게 직접적인 피해로 귀결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청와대 앞에서 열린 집회에는 임상심리사 300여명이 모여 “복지부는 정신건강에 못 박지 말라”, “국민을 사지로 내모는 법제화 철회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복지부가 개정안의 필요성으로 언급한 ‘심리상담 바우처 사업’에서의 정신건강전문요원 역할 비중에 대한 반박도 제기됐다. 복지부는 최근 “지난 2024년 시작한 심리상담 바우처 사업에도 직역을 구분하지 않고 핵심 인력으로 정신건강전문요원이 참여하고 있다”며 이번 개정안은 공공영역에서 이미 정신건강요원들이 수행 중인 상담 업무의 근거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도진아 단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심리전문가는 “등록된 바우처 사업의 전체 상담사 중 정신건강전문요원은 모두 합해도 7.6%에 불과하다. 핵심축은 수년간 수천 시간의 엄격한 상담 수련을 쌓아온 공인 민간 학회의 1급 전문가들”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환자의 생명과 마음을 다루는 정신건강 영역은 의사, 임상심리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작업치료사가 각자 전문성을 바탕으로 환자를 입체적으로 돌보는 ‘다학제적 팀 접근’이 생명과도 같다. 우리는 타 직역이 가진 고유하고 빛나는 전문성을 깊이 존중한다”면서 “그러나 이번 복지부의 시행령 개정안은 이런 전문성의 본질과 다학제적 협력 체계를 완전히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는 심리상담을 받는 내담자가 직접 나와 목소리를 냈다. 자신을 정신장애 당사자라고 소개한 A씨는 “수평하고 평등한 도움을 바라는 정신장애인들은 동료지원서비스와 동료지원쉼터 확대를 대안으로 생각해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면서 “임상심리전문가들도 결국 동료라는 측면에서 넓은 의미의 동료지원가라고 생각한다. 내가 필요한 건 전문 수련과정을 거친 전문가의 심리상담이다. 앞으로 현장에서 이뤄지는 상담을 수요자가 거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통합돌봄 서비스에서도 심리상담이 전문적 서비스로 제공 받는 제도적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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