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럴당 170弗 넘어 연 최고치 근접
중국도 석유제품 사실상 수출 중단
반도체처럼 초호황 도래 전망까지
국내 생산 경유 60% 수출 정유업계
규제로 인해 ‘대박’ 기회 놓칠 우려
“국내 잉여 제품 수출길 열어줘야”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과 미국·이란 전쟁으로 중동 일대 정유산업단지가 기능을 멈추면서 산업 필수 연료인 경유값이 나날이 치솟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유가격 안정화를 위해 러시아와 경유 거래를 시도할 정도다. 하지만 세계 경유시장 강자인 국내 정유업계는 속이 쓰린 표정이다. 반도체 품귀 현상에 다른 초호황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역대 최대 실적을 올리듯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는데 정부의 수출 제한 조치에 묶여 모처럼 찾아온 특수를 제대로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우선 공급에 차질이 없는 수준의 경유 물량은 수출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5일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지난달 국제 경유 가격은 미국·이란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3월 수준에 근접했다. 당시 배럴당 195.52달러까지 오른 자동차용 경유 가격은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휴전 논의가 진행되던 6월에 배럴당 126달러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 협상이 틀어진 후 전쟁이 길어지고,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인 러시아의 정유시설을 타격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전쟁 직전 세계 해상 경유 교역량의 45%가량을 차지하던 러시아와 중동의 경유 수출이 막히자 가격이 다시 폭등한 것이다. 지난달 배럴당 177달러까지 올랐고 이달 들어서도 현재 171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당분간 쉽게 내려갈 것 같지도 않다. 주요 석유제품 수출국인 중국마저 이달 석유제품 수출을 사실상 중단했고, 곧 난방용 경유 수요가 집중되는 겨울로 접어든다. 시장에선 반도체처럼 경유 초호황이 올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국내 정유사에 많은 돈을 벌 기회가 온 것이다. 한국은 석유제품 생산량의 약 27.6%가 경유이고, 생산한 경유의 58.8%를 해외에 판다. 국제 경유가격이 치솟을수록 곳간을 두둑이 채울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가 중동 전쟁으로 주요 원유 운송로인 호르무즈해협이 막히자 수급 안정화 조치를 취하면서 그럴 수 없는 처지다. 정부는 정유사의 월별 석유제품 수출량이 전년 동월의 100%를 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전년 동월 생산량의 90%를 국내에 의무 공급하도록 했다. 정유사들이 해외 판매에 열을 올릴 경우 국내 경유가격이 껑충 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정유업계는 국내 공급물량이 충분하다면 남는 물량은 수출길을 열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호소한다. 예를 들어 생산량의 90%를 국내용으로 준비했을 때, 국내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석유량이 80%에 그치면 나머지 10%는 ‘재고’가 된다. 이런 재고 물량을 해외에 수출하면 국내 가격을 자극하지 않고도 높은 실적을 쌓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월별 원유 수급량에 따라 생산량이 달라지는데, 특정 달은 생산량이 많아 국내 의무 공급물량을 채우고도 석유제품이 남아돌 때가 있다”며 “이런 제품이라도 팔 수 있도록 제도를 유연하게 적용했으면 한다”고 했다.
정유업계는 수출 제한을 받지 않는 항공유나 윤활기유 중심으로 판매량을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원유를 정제한 뒤 추출하는 석유제품은 특정 제품만 골라서 생산하는 게 어렵다”며 “상황에 따라 국내에서도 소화가 안 되는 경유제품이 생길 수 있는데, 이런 제품은 충분히 수출로 돌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유 수출 제한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시선도 변수다. 러시아와 중동의 공급이 줄고 중국까지 빠지면서 아시아에서 즉시 추가 물량을 내놓을 수 있는 대형 정제국은 한국·인도·싱가포르 정도로 좁혀졌다. 한국석유공사는 지난 13일 발간한 ‘왜 경유만 난리인가?’ 보고서에서 “경유 부족이 장기화하면 한국처럼 정제능력이 크고 수출 여력이 있는 나라를 상대로 ‘국내에 물량을 묶어두지 말고 세계시장에 공급하라’는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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