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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주세요” 창문 내다보니…장모 살해 뒤 아내 납치한 20대 [사건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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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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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지난 11일 새벽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한 주택가, 한 여성의 다급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주민 이모(54)씨는 잠을 자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근처에 학교가 있어 학생들이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평소 듣던 소리와는 다르단 걸 깨달았다.

지난 11일 새벽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한 주택가에서 장모를 살해한 20대 남성이 아내를 끌고 가는 모습. 오른쪽은 사건 현장. 연합뉴스TV 보도화면 캡처·김수연 기자
지난 11일 새벽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한 주택가에서 장모를 살해한 20대 남성이 아내를 끌고 가는 모습. 오른쪽은 사건 현장. 연합뉴스TV 보도화면 캡처·김수연 기자

 

이씨는 세계일보에 “창문을 열어 보니 한 남자가 여성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고 있었다”며 “처음에는 그냥 다투는 줄 알았는데 너무 무자비하게 끌고 갔다. 신고하려 했는데 맞은편 건물에 있던 다른 여성 주민이 먼저 신고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골목길로 내려간 이씨는 더 처참한 현장을 마주했다. 흉기에 찔린 중년 여성이 길 한복판에 쓰러져 있었고, ‘일방통행’ 글자는 피로 물들어있었다. 이씨는 “또 다른 딸이 어머니의 손을 붙들고 계속 흐느끼고 있었다. 아버지는 멍한 모습이었다”며 “경찰이 오자 딸이 끌려갔으니 빨리 쫓아가 달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골목에 쓰러져 있던 여성은 앞서 남성에게 끌려간 여성의 어머니였고, 이 남성은 그의 사위였다.

 

◆ 딸 마중 나왔다가 참변…20대 사위 구속영장 신청

 

13일 송파경찰서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존속살해 및 특수감금 혐의로 20대 남성 김모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서울동부지검에 신청했다. 김씨는 지난 11일 오전 5시38분쯤 별거 중이던 20대 아내 A씨가 피신해 있던 송파구 문정동의 처가를 찾아가 50대 장모 B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고, 아내를 강제로 차량에 태워 달아난 혐의를 받는다.

12일 장모 살해 및 아내 납치 사건이 발생한 서울 송파구 사건 현장. 김수연 기자
12일 장모 살해 및 아내 납치 사건이 발생한 서울 송파구 사건 현장. 김수연 기자

 

당시 “남자가 여자를 끌고 가려고 한다. 여자 한 명이 쓰러져 있다”는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흉기에 찔린 장모를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숨졌다. B씨는 사위의 폭력으로 신변에 위협을 느끼던 딸 A씨를 마중 나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씨는 범행 직후 아내를 태우고 강원도 방면으로 도주했으나, 범행 7시간 만인 오후 12시35분쯤 강원도 양양군 야산에서 체포됐다. 아내 A씨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로 구조됐다. 현장에서는 흉기로 쓰인 과도도 함께 발견됐다.

 

◆ “아내 찾아달라”던 남편…알고 보니 가정폭력 피의자

 

당초 김씨는 지난 8월 아내를 상습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었다. 당시 김씨는 별거 중 연락이 닿지 않는 아내를 찾아달라며 실종 신고를 접수했다. 그러나 A씨는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했다며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지 말아 달라고 경찰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경찰은 김씨를 가정폭력 혐의로 입건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사건을 이첩받은 수원권선서는 남편으로부터 여러 차례 폭행당했다는 아내의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일 신변 보호용 스마트워치를 지급했다. 경찰은 증거 확보를 위해 김씨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으나, 사회복무요원인 김씨는 당시 근무지에 며칠째 출근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경찰은 김씨의 신병을 확보하고자 지난 10일로 조사 일정을 잡고 출석을 요구했다. 그러나 김씨가 응하지 않아 13일로 조사를 연기했고, 예정된 조사일 이틀 전 범행이 발생했다.

장모 살해 및 아내를 납치한 20대 남성 김모씨가 지난 11일 서울 송파경찰서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장모 살해 및 아내를 납치한 20대 남성 김모씨가 지난 11일 서울 송파경찰서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 “우발적 범행” 주장…아내는 “미리 준비” 진술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혼 소송 중이던 아내가 강압에 의한 혼인이었다는 취지로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하려 하자 감정이 상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혐의를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장모를 살해할 계획은 없었으며, 우발적 범행 직후 자신도 당황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은 계획범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은 김씨가 평소 흉기를 소지하고 다녔다는 점과 아내 측 진술 등을 토대로 범행을 사전에 준비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특히 A씨는 경찰에 차량에 감금돼 이동하는 동안 남편이 범행을 미리 준비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인근 폐쇄회로(CC)TV 등을 토대로 김씨의 범행 전후 동선과 계획범죄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보복범죄 가능성도 살피고 있다.

 

◆ 접근금지 만료 뒤 공백…“가해자 통제 강화해야”

 

이번 사건은 가정폭력 재발 위험이 높은 피의자를 경찰이 관리하고 있었음에도 피해자 보호조치에 공백이 발생해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김씨가 경찰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압수수색도 여러 차례 불발된 상황에서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씨는 사건을 처음 접수한 용산경찰서로부터 피해자 주거지에서의 퇴거와 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등의 임시조치를 받은 상태였다. 해당 조치는 지난달 30일 종료됐으나, 수원권선서가 추가 피해 가능성을 고려해 지난 6일 접근금지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조치를 다시 신청했다. 다만 해당 신청에 대한 법원 결정이 내려지기 전 김씨가 범행을 저질렀다. 기존 조치가 만료된 뒤 범행일까지 11일 동안 접근금지 조치가 적용되지 않았던 셈이다.

 

피해자에게 지급된 스마트워치도 작동하지 않았다. A씨의 스마트워치는 김씨 범행 당시 전원이 꺼져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장모 살해 및 아내를 납치한 20대 남성 김모씨가 지난 11일 서울 송파경찰서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장모 살해 및 아내를 납치한 20대 남성 김모씨가 지난 11일 서울 송파경찰서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관계성 범죄 피해자 보호 제도의 실효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는 방식만으로는 강력범죄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며 “위험을 느낀 피해자가 직접 신고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가해자의 접근을 사전에 감지하고 차단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접근금지 조치가 만료되거나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백에 대해서도 “위험성 평가를 수시로 실시하고 위험 수위가 높다고 판단되면 즉각적인 격리와 보호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며 “필요하면 가해자의 신병을 확보하고 구금하는 조치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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