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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문화의 언어… 태국 ‘길거리 식당’ 정직하게 번역 [유한나가 만난 셰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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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폼’ 이현종

무역업 하며 오가던 태국 시장 맛에 매료
현지 셰프 합류 늦자 손수 주방일하며 개업
손님 없던 시절부터 고수해 온 ‘현지의 맛’
당시 생소했던 렝샙·카오카무 대표 메뉴로
소스·식재료 아우른 태국 전문 F&B 꿈꿔
까폼의 이현종 대표를 만났다. 2017년 서울 압구정의 작은 지하 매장에서 시작한 ‘까폼(KRAPPOM)’은 한국에서 태국 음식을 경험하는 방식을 조금씩 바꿔왔다. 당시만 해도 팟타이와 똠얌꿍, 뿌팟퐁커리 정도가 익숙했지만, 까폼은 태국 사람들이 시장과 골목에서 일상적으로 즐기는 음식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까폼 이현종 대표
까폼 이현종 대표

현재 까폼 압구정 본점을 비롯해 까폼 63빌딩점, 까폼 리저브, 딸랏 등을 운영하는 이 대표는 정통적인 셰프의 이력을 밟은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그를 단순한 경영자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까폼의 시작부터 직접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만들었고, 태국인 셰프들과 메뉴를 개발하며 맛의 기준을 세워왔다. 지금도 메뉴의 방향과 매장마다 동일한 맛을 구현하기 위한 기준을 관리한다. 직함은 대표지만 그가 해온 일은 분명 셰프의 역할과 맞닿아 있다.

까폼을 시작하기 전 이 대표는 5년 이상 무역업에 종사하며 태국을 자주 오갔다. 유명 레스토랑보다 현지 사람들이 찾는 시장과 길거리 식당에 관심이 많았다. 쌀국수와 카오카무, 똠얌, 솜땀처럼 태국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에 매력을 느꼈고 ‘한국에서도 태국 현지의 맛을 제대로 소개해보자’는 생각으로 까폼을 시작했다. 까폼을 준비하며 태국에서 직접 요리를 배웠지만 개업을 앞두고 함께하기로 한 태국 셰프의 취업비자가 3개월가량 늦어졌다. 이미 매장은 계약한 상황. 결국 이 대표가 직접 주방에 들어가 태국에서 배운 요리로 까폼의 문을 열었다. 당시 메뉴는 네 가지 정도였다.

태국 셰프가 합류한 뒤에도 그는 주방에서 완전히 물러나지 않았다. 함께 요리하며 재료와 향신채를 다루는 법, 맛의 균형을 익혔고 까폼만의 기준을 만들어갔다. 그에게 조리학교는 태국 현지와 까폼의 주방이었던 셈이다.

 

시작은 쉽지 않았다. 손님을 보기 힘든 날도 있었지만 음식의 방향을 한국식으로 바꾸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입소문이 났고 당시 한국에서는 생소했던 렝샙과 카오카무가 까폼의 대표 메뉴로 자리 잡았다. “초기에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맛을 한국식으로 바꿨다면 지금의 까폼은 없었을 거예요. 새로운 음식 문화가 자리 잡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버틸 확신과 일관성이 중요합니다.”

렝샙
렝샙

까폼의 첫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렝샙이다. 지금은 국내 여러 태국 음식점에서 만날 수 있지만 2017년만 해도 한국에서는 이름조차 생소했다. 돼지 등뼈를 부드럽게 삶아 산처럼 높이 쌓고 라임과 피시소스, 마늘, 태국 고추 등을 사용한 새콤하고 매콤한 소스를 풍성하게 끼얹는다.

강렬한 비주얼로 빠르게 알려졌지만 핵심은 맛의 균형이다. 등뼈는 고기가 쉽게 떨어질 만큼 부드러우면서도 육향과 식감이 살아 있어야 한다. 여기에 라임의 선명한 산미, 피시소스의 짠맛과 감칠맛, 태국 고추의 매운맛, 마늘의 알싸한 향이 어우러진다. 첫입은 강렬하지만 먹을수록 등뼈의 깊은 맛과 소스가 조화를 이룬다. 커다란 접시를 가운데 두고 여러 사람이 등뼈를 나눠 먹는 방식 역시 렝샙의 매력이다. 강렬한 맛과 활기찬 분위기, 함께 음식을 나누는 태국의 식문화까지, 렝샙은 까폼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카오카무
카오카무

두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카오카무다. 렝샙이 까폼의 강렬한 인상을 보여준다면 카오카무는 태국의 일상을 담고 있다. 태국 간장과 여러 향신료를 넣고 돼지 족발을 3시간 이상 천천히 졸여 밥과 함께 먹는 태국식 족발덮밥으로, 현지 시장과 길거리 식당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일상식이다.

오랜 시간 졸인 족발은 부드러우면서도 고기의 형태와 식감이 살아 있어야 한다. 태국 간장과 향신료, 돼지고기에서 나온 맛이 겹쳐지며 짠맛과 단맛, 깊은 향을 만들고 이 소스가 따뜻한 밥에 스며들며 한 그릇이 완성된다. 한국 손님에게는 익숙한 돼지고기와 밥으로 새로운 태국의 맛을 경험하게 하고, 태국 손님에게는 고향의 한 끼를 떠올리게 한다. 렝샙과 카오카무 모두 본래의 맛을 크게 변형하지 않고 태국 음식의 맛과 문화를 전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대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직함과 일관성, 그리고 태국 음식 문화에 대한 존중이다. “매운맛의 정도를 선택할 수 있게 하고 메뉴를 자세히 설명할 수는 있지만, 음식의 정체성까지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정통성은 무조건 맵고 짜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신맛과 짠맛, 단맛과 매운맛, 향신채의 향이 제 역할을 하며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낯선 맛을 한국식으로 바꾸기보다 손님이 그 맛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까폼의 방식이다.

이 대표의 목표는 단순히 매장 수를 늘리는 데 있지 않다. 그는 처음 압구정에서 만들었던 맛과 문화를 지키면서 레스토랑을 넘어 소스와 식품, 태국 식재료 유통, 협업과 해외 진출까지 아우르는 태국 전문 F&B 회사로 까폼을 키워 가려 한다. 그는 요리를 ‘한 나라의 문화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가장 직접적인 언어’라고 말한다. “다른 나라의 음식을 다룬다는 것은 단순히 레시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까지 정확하게 번역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이 대표는 스스로를 셰프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경영자인 동시에 오랫동안 셰프의 역할을 해온 사람이다. 직접 한 접시를 만드는 데서 출발한 이 대표는 이제 여러 주방에서 같은 맛과 철학이 구현되도록 설계하고 있다. 그는 까폼이 한국 사람들이 태국 음식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고, 태국 사람들도 한국에서 믿고 찾을 수 있는 브랜드로 자리 잡기를 꿈꾼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hannah@food-fantas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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