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여성 대상화 비중이 ‘사랑’ 첫 추월
2023∼2025년엔 세 곡 중 한 곡 넘어
한국힙합에서 여성은 사랑과 이별의 상대인 동시에 욕망과 소비의 대상으로 등장했다. 올해에도 래퍼 ‘리치 이기’의 가사에 논란이 일었다. 여성을 함부로 대한다는 표현과 미성년자를 성적 대상으로 묘사한 가사가 주목 받았다.
세계일보가 1990년 이후 발매된 주요 한국힙합 4008곡을 분석한 결과, 여성을 향한 사랑·연애 감정이 가사에서 차지한 비중은 평균 7.4%였다. 여성을 신체나 성적 정복·소비의 대상으로 묘사한 ‘여성 대상화’는 4.1%였다.
평균 비중만 보면 여성을 향한 사랑이 여성 대상화보다 컸다. 그러나 그런 표현이 등장한 노래의 수는 반대였다. 여성을 향한 사랑이 조금이라도 포함된 곡은 508곡으로 전체의 12.7%였다. 여성 대상화가 등장한 곡은 743곡, 18.5%였다. 여성 대상화 표현이 더 많은 노래에 퍼져 있었던 것이다.
이번 분석에서는 기존에 ‘사랑’으로 분류했던 가사를 다시 들여다봤다. 연애·짝사랑·이별의 상대가 가사에서 ‘그녀’, ‘girl’, ‘여자’ 등 여성으로 확인되는 경우만 ‘여성을 향한 사랑’으로 별도 분류했다. ‘너’, ‘그대’, ‘baby’처럼 성별을 확인할 수 없으면 임의로 추정하지 않았다. 전체 사랑 비중은 17.0%였다. 이 가운데 사랑의 상대가 여성으로 확인된 비중은 7.4%, 상대의 성별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는 9.2%, 남성으로 확인된 경우는 0.4%였다.
시기별로 보면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성장한 1999∼2011년 2209곡에서 여성을 향한 사랑은 평균 9.4%, 여성 대상화는 2.9%였다. 여성을 향한 사랑이 등장한 곡은 14.8%, 여성 대상화 표현이 등장한 곡은 12.5%였다.
흐름은 2010년대 중반부터 달라졌다. 2012∼2022년 1307곡에서는 여성을 향한 사랑의 비중이 4.8%로 낮아진 반면 여성 대상화는 5.3%로 높아졌다. 여성을 향한 사랑이 등장한 곡은 9.8%에 그쳤지만 여성 대상화가 담긴 곡은 25.9%였다. 네 곡 중 한 곡꼴이다.
연도별로는 2015년 처음 여성 대상화 비중이 여성을 향한 사랑의 비중을 넘어섰다. 그해 여성을 향한 사랑은 3.1%, 여성 대상화는 5.1%였다. 2016년에는 여성 대상화가 10.3%까지 치솟아 여성을 향한 사랑(7.1%)을 웃돌았다. 2019년에는 격차가 더 벌어져 여성을 향한 사랑은 3.3%, 여성 대상화는 8.6%였다.
최근에도 이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2023∼2025년 294곡에서 여성을 향한 사랑의 평균 비중은 6.0%, 여성 대상화는 7.5%였다. 여성을 향한 사랑이 등장한 곡은 12.6%였지만 여성 대상화가 들어간 곡은 37.1%였다. 세 곡 중 한 곡이 넘는다. 2025년에는 여성을 향한 사랑이 3.0%, 여성 대상화가 7.7%로 여성 대상화 비중이 두 배를 넘었다.
두 표현은 한 곡 안에 동시에 존재하기도 했다. 4008곡 가운데 여성을 향한 사랑과 여성 대상화가 함께 나타난 곡은 158곡이었다. 1999∼2011년 여성 대상화가 등장한 277곡 가운데 85곡(30.7%)에는 여성을 향한 사랑도 함께 있었다. 2012∼2022년에는 여성 대상화가 등장한 338곡 가운데 두 표현이 함께 담긴 곡이 48곡(14.2%)이었다. 2023∼2025년에는 109곡 가운데 18곡(16.5%)이었다. 과거에는 여성을 향한 사랑과 여성의 외모·신체를 소비적으로 바라보는 표현이 한 곡에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다면, 이후에는 여성을 향한 사랑 표현을 동반하지 않는 여성 대상화가 더 많은 곡에서 나타났다.
물론 여성 대상화 표현이 있는 곡이라고 해서 노래 전체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그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두 구절에서 여성 대상화가 나타난 경우도 포함됐다. 여성 대상화가 들어간 곡만 따로 보면, 그 표현이 한 곡에서 차지하는 평균 비중은 1999∼2011년 23.2%에서 2012∼2022년 20.6%, 2023∼2025년 20.2%로 조금 낮아졌다.
여성 대상화가 등장한 곡에서 해당 표현이 차지하는 평균 비중은 다소 줄었지만, 그런 표현이 등장하는 곡의 비율은 높아진 것이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여성혐오를 비롯한 거친 표현을 힙합의 문법 자체로만 볼 수 없다고 했다. 현실의 삶과 분리된 온라인 집단성이 혐오 표현과 결합하는 방식과, 그런 표현을 소비하고 확산하는 커뮤니티의 구조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 평론가는 “여성혐오를 하는 래퍼라고 낙인을 찍기보다 왜 이런 표현을 사용하고, 이런 메시지를 통해 결집시키려는 집단은 누구인지 봐야 한다”며 “왜 이런 음악이 발생하는지를 파고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성 관련 가사는 ‘사랑’과 ‘대상화’를 구분해 분석했다. 기존 ‘사랑’으로 분류된 가사를 사랑의 상대가 여성·남성·성별 불명인지 2차 분류했고, 여성의 신체를 소비적으로 묘사하거나 성적 정복·소유의 대상으로 다룬 내용을 ‘여성 대상화’로 분류했다. 주제별 정의·분류 기준, 분석에 사용한 프롬프트는 인터랙티브 페이지에서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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