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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알고도 은폐?…일본 공문서 분석서 드러난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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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 온라인뉴스 기자 hibou512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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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가나가와현 보고서 분석…조선인 피살·부상 사건 80건 기록
사건 용의자 특정 10건·검거 3건 그쳐…일본 정부는 “관련 기록 없어” 입장
간토대지진 당시 거리 모습을 담은 엽서. 독립기념관
간토대지진 당시 거리 모습을 담은 엽서. 독립기념관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에서 발생한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 일본 당국이 피해 실태를 조사하고도 가해자 처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사실상 은폐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작성된 공문서에는 조선인이 살해되거나 다친 사건이 다수 기록돼 있지만, 가해자 검거와 처벌은 극히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간토대지진 관련 연구자인 고토 아마네 씨는 최근 당시 공문서를 분석한 결과, 일본 당국이 조선인 학살 등 유언비어에 따른 폭력 사태를 파악하고도 가해자 검거와 처벌을 제한한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고토 씨가 분석한 문서는 당시 가나가와현 지사가 지진 이후 현내 조선인과 중국인의 범죄 및 보호 상황을 조사해 작성한 50쪽 분량의 보고서인 ‘선고비수(鮮高秘收) 제22호’다. 조선인 학살을 연구한 재일 역사학자 고(故) 강덕상 교수가 고서점에서 입수해 2023년 공개한 자료로, 고토 씨가 내용을 세부적으로 검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진 당시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한 지역이자 학살이 심각했던 요코하마에서 조선인이 저지른 것으로 기록된 범죄는 모두 14건이었다. 이 가운데 9건은 용의자가 일본인 군중에게 살해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신원이 확인된 용의자는 5명에 그쳤다. 

 

범죄 내용이 명확하게 기록된 사례도 절도 4건뿐이었고, 집단적인 범죄나 폭동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게 고토 씨의 분석이다.

 

반면 조선인이 범죄자로 오인돼 살해되거나 다친 사건은 80건에 달했다. 이들 사건으로 조선인 170명이 숨지고 14명이 다친 것으로 파악됐다. 가해자는 모두 군중으로 기록됐으며, 용의자가 특정된 사건은 80건 가운데 10건이었다.

 

용의자가 특정된 10건 중 경찰에 검거된 사건은 살인 2건과 상해 1건 등 3건에 불과했다. 고토 씨는 이 같은 기록이 당시 일본 당국이 학살 실태를 파악하고도 가해자 처벌에 소극적으로 대응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간토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도쿄와 요코하마 등 일본 간토 지역을 강타한 규모 7.9의 지진이다.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졌다. 이후 일본 자경단과 경찰, 군인 등에 의해 조선인 수천 명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분석은 당시 일본 당국이 관련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보유하고 있었는지를 둘러싼 논란과도 맞닿아 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을 찾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마쓰노 히로카즈 당시 일본 관방장관은 2023년 8월 30일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토 씨는 내무성·사법성·계엄사령부·조선총독부와 각 지방자치단체 및 경찰 등이 작성한 관련 보고서가 여러 종류 존재한다고 반박했다.

 

이번에 분석된 문서 역시 당시 당국이 조선인 관련 사건과 피해 상황을 조사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학살에 관한 자료의 존재와 정부의 공식 설명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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