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분기 영업이익 100조원이라는 사상 초유의 기록을 발표한 지난 8일, 쭉쭉 오를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기대가 무색하게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 하락으로 마감했다. 한국 기업사를 넘어 세계 기업사의 신기원을 열고도 주가가 맥을 쓰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른바 ‘감동이 없어서’였다. 이미 기대치가 주가에 선반영 된 탓에,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어야만 주가가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증권가나 투자자들의 높아진 기대치에 고무됐던 기업들도, 눈높이가 지나치게 오르자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12일 증권가에 따르면 최근 투자자 사이에선 ‘주가 상승에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는 유행어가 돌고 있다. 한 기업이 실적 발표를 할 때 시장 예상치보다 월등히 높은 이른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해, 투자자들에게 감동을 줘야만 주가가 함께 오른다는 것이다. 일부 주식커뮤니티에선 PER(주가수익비율)과 PBR(주가순자산비율)을 패러디한 PGR(주가감동비율)라는 유행어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8일 발표된 삼성전자 분기 영업이익이 발표될 때도, 투자자 커뮤니티는 오히려 실망감이 감돌았다. 시장 전망치와 비슷하게 들어맞았다는 이유에서다. 글마다 ‘실적에 감동이 없어서 큰일’이라는 표현이 쏟아졌다.
◆결국에는 ‘선반영’ 심리, 외부 상황도 고려한 표현
감동이란 말이 새로 등장한 표현이긴 하지만, 결국에는 주식시장의 오랜 개념인 '선반영'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선반영이란 앞으로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호재나 악재가 실제로 발생하기 전에 미리 주가에 반영되는 현상을 말한다. 주가는 기업의 현재가 아닌 미래 가치를 사고파는 것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실적 개선이 예상되면 발표일을 기다리지 않고 미리 주식을 사들인다. 이 과정에서 기대감은 이미 주가에 녹아들고, 정작 실적이 발표되는 날에는 새로운 정보가 없어 주가가 오를 동력을 잃게 된다.
삼성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AI) 수요 확대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호황 기대감에 증권가는 실적 발표 전부터 잇따라 목표주가와 실적 전망치를 끌어올렸고, 주가 역시 이를 먼저 반영하며 상승해 왔다. 영업이익 100조원이라는 숫자는 놀라웠지만, 시장 입장에서는 ‘이미 알고 있던 숫자’였던 셈이다.
◆높아진 눈높이, 기업들도 부담
시장의 눈높이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속내는 복잡해지고 있다. 시장과 투자자들의 기대가 기업 가치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되지만, 기업이 바라보는 시각과 간극이 생기면 오히려 역풍이 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측면도 있다. 환율과 국제 경기 침체, 원가 상승이란 어려운 대외환경을 이겨내고 꽤 괜찮은 실적을 기록했는데, 시장 기대치에 못 미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가가 하락하는 탓이다. 재계 관계자는 “주주 기대치가 높아진 점을 잘못이라 보긴 어렵다”며 “실적 외에도 주가를 부양할 수 있는 주주환원책을 고심하는 기업들도 꽤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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