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격차 넘어 GPU·데이터까지… 최전선 AI 연구도 기업 중심으로
2013년 3월 구글은 토론토대 컴퓨터과학 교수였던 제프리 힌턴이 대학원생 알렉스 크리제프스키·일리야 수츠케버와 함께 세운 AI 업체 DNN리서치를 인수했다. 설립된 지 1년도 안 된 회사로 구성원은 세 명뿐이었고 내놓은 제품도 없었다. 구글이 사들인 것은 사실상 토론토대 연구실에서 나온 딥러닝 기술과 이를 만든 연구자들이었다. 이들은 2012년 국제 이미지 인식대회에서 기존 기술의 성능을 크게 뛰어넘은 딥러닝 기반 이미지 인식 모델 ‘알렉스넷’을 선보였고, 이는 딥러닝 열풍의 기폭제가 됐다. 알렉스넷의 상위 5개 오답률은 15.3%로 2위 모델의 26.2%를 크게 앞섰다. 알렉스넷의 성과가 알려지자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바이두, 딥마인드가 DNN리서치 인수 경쟁에 뛰어들었다. 힌턴은 이들 기업을 상대로 인수 제안 경쟁을 붙였고, 제안액은 4400만달러까지 올라갔다.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힌턴과 제자들은 연구를 이어갈 곳으로 구글을 택해 경쟁을 끝냈다. 실제 인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인수 뒤 크리제프스키와 수츠케버는 구글로 옮겼고 힌턴은 토론토대 교수직을 유지하며 구글과 대학을 오갔다. 힌턴은 당시 “토론토에서 연구를 계속하면서 동시에 구글이 새로운 딥러닝 기술을 적용하도록 도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수츠케버는 2년 뒤 오픈AI를 공동창업해 수석과학자가 됐고, 힌턴은 구글에서 딥러닝 연구를 이어간 뒤 202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DNN리서치 인수는 대학 연구실에서 탄생한 AI 기술과 연구자가 빅테크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여준 상징적인 초기 사례였다. 이후 AI 연구의 무게중심은 사람뿐 아니라 이들의 연구를 뒷받침하는 자본과 연산자원까지 갖춘 기업 쪽으로 빠르게 기울었다.
◆대학 연구실서 기업으로… 산업계 비중 48%→68%
DNN리서치만의 일이 아니었다. 2014년 구글 딥마인드는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세운 다크블루랩스와 비전팩토리의 창업자 7명을 모두 영입했다. 이 가운데 교수 3명은 옥스퍼드대와 딥마인드에 공동으로 소속돼 양쪽에서 연구를 이어갔다.
애플은 2016년 워싱턴대의 오픈소스 머신러닝 프로젝트 ‘그래프랩’에서 출발한 스타트업 투리(Turi)를 인수했다. 창업자인 카를로스 게스트린 워싱턴대 교수는 애플의 머신러닝 책임자가 돼 시애틀 AI·머신러닝 연구거점 구축을 맡았다.
개별 사례를 넘어 AI 연구자 고용의 무게중심 자체가 기업 쪽으로 기울었다. 미국 시카고대와 연방인구조사국 등의 연구진이 2001∼2021년 AI 연구자 4만2000명의 직장과 소득, 논문·특허 실적을 추적한 결과 산업계에서 일하는 비중은 2001년 48%에서 2019년 68%로 높아졌다. 특히 젊은 연구자의 산업계 이동은 신생기업보다 직원 1000명 이상, 업력 20년 이상인 기존 대기업에 집중됐다.
기업과 대학의 보상 격차도 벌어졌다. 산업계 AI 연구자 중 소득 상위 1%의 연간 소득은 2015년 물가 기준 2001년 59만5000달러에서 2021년 194만달러로 약 226% 늘었다. 같은 기간 대학 연구자의 상위 소득은 30만1000달러에서 39만2000달러로 약 30% 증가하는 데 그쳤다. 대학에서 산업계로 완전히 옮긴 연구자의 소득은 대학 안에서 직장을 옮긴 유사한 연구자보다 평균 63% 높아졌다.
◆연봉 넘어 GPU·데이터까지… 연구환경도 기업에 집중
연구자가 기업으로 향하는 이유는 보상만이 아니다. 딥러닝 이후 최첨단 AI 연구에는 대규모 데이터와 고성능반도체(GPU), 클라우드 컴퓨팅 등 막대한 연산자원이 필요해졌다. 개인 연구실이나 대학이 감당해야 할 실험 비용도 함께 커졌다.
페이페이 리와 크리스토퍼 매닝 등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 연구진은 최전선 AI 연구가 대규모 연구자·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조직과 연산자원, 데이터를 동시에 요구하면서 대학이 기업과 같은 규모의 연구환경을 갖추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연구자를 붙잡기 위한 연봉 경쟁뿐 아니라 연구자가 원하는 규모의 실험을 어디에서 할 수 있느냐가 인재 확보의 또 다른 조건이 된 것이다.
인재 이동은 연구 성과의 형태도 바꿨다. 4만2000명을 추적한 연구에서 대학을 떠나 산업계로 완전히 이동한 연구자는 유사한 대학 연구자보다 논문을 연간 65% 적게 쓴 반면 특허는 530% 더 많이 냈다. 연구진은 AI 연구 성과가 논문으로 공개되기보다 기업 내부의 기술과 특허로 쌓이는 흐름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분석했다.
최전선 AI 모델에서도 기업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스탠퍼드대의 ‘2026 AI 인덱스’에 따르면 2025년 주목할 만한 최전선 AI 모델의 90% 이상이 기업에서 나왔다. 대학은 기초 연구와 인재 양성에서 여전히 핵심 역할을 맡고 있지만, 막대한 연산자원과 자본이 필요한 대형 모델 개발에서는 기업이 사실상 중심에 선 것이다.
다만 대학과 기업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대학은 수동적인 방관자가 아니다”라며 교수 겸직과 지식재산권, 기업 공동연구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인재 배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DNN리서치를 인수한 구글은 발표 직전 힌턴의 토론토대 연구그룹에 60만달러를 기부했다. 구글 딥마인드는 옥스퍼드대 연구진 7명을 영입하면서 대학에 수백만달러 규모의 연구비를 지원했고, 교수 3명은 대학 겸직을 유지했다. 애플이 투리를 인수한 뒤 워싱턴대에는 게스트린의 이름을 붙인 100만달러 규모의 AI·머신러닝 석좌교수직 기금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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