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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놓지 않은 붓…임직순의 미완성 유작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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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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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술관, 작고 30주기 특별전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
유화 약 80점과 드로잉·수채화, 화구·유품 등 선보여

1996년 7월 화가 임직순(1921∼1996)이 세상을 떠난 뒤, 가족들은 그의 작업실에서 한 점의 미완성 그림을 마주했다. 작고하기 전해 미국에서 본 풍경을 담던 작품이었다. 오랜 신장병 투병에도 붓을 놓지 않았지만, 그 풍경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화가의 마지막 작업이 작고 30주기를 맞아 처음 관람객 앞에 나왔다.

 

서울미술관은 임직순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특별전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를 지난 7일 개막했다. 유화 약 80점을 중심으로 드로잉과 수채화, 판화 등을 선보이고, 화구와 가구, 생활용품 등 유품 30여 점도 공개한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작품세계의 변화를 연대기 순으로 살펴보는 전시다.

 

전시 제목은 임직순이 남긴 말에서 가져왔다. ‘꽃과 여인의 화가’로 알려진 그는 소녀와 꽃, 산과 바다처럼 익숙한 대상을 즐겨 그렸다. 그가 담으려 한 것은 대상의 겉모습뿐 아니라 그 안에서 발견한 생명의 힘과 아름다움, 이를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에 일어나는 감정이었다.

‘꽃과 여인’(1980). 서울미술관 제공
‘꽃과 여인’(1980). 서울미술관 제공

충북 괴산에서 태어난 임직순은 일본미술학교 유화과를 졸업한 뒤 미술교사로 일했다. 1957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고, 1961년 조선대학교 미술학과장 겸 주임교수로 부임했다. 광주에 정착하면서 무등산과 남도의 풍경으로 시선을 넓혔다. 탄탄한 화면 구성에 힘찬 붓질과 따뜻하면서도 강렬한 색채를 더하며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일궜다.

 

1973년 파리 개인전을 위해 약 1년간 현지에 머문 시기의 자료도 소개한다. 파리의 거리를 담은 스케치와 판화, 전시 포스터, 자화상과 드로잉, 작품 ‘사념’ 등을 만날 수 있다. 빛에 따라 달라지는 색을 탐구하던 그의 그림은 점차 형태를 단순화하고 대담한 붓질로 감정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말년에는 설명적인 요소를 덜어내고 선과 색에 더욱 집중했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그림과 함께 그 그림이 만들어진 일상의 흔적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임직순은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1980년대에 오전에는 여성 모델을 보며 인물화를, 점심 식사 뒤에는 꽃병이나 항아리에 꽃을 꽂아 정물화를 그렸다. 아내는 그의 작업을 위해 늘 꽃을 준비했다.

‘사념’(1973). 서울미술관 제공
‘사념’(1973). 서울미술관 제공

전시장에는 인물 좌상을 그릴 때 즐겨 사용한 라탄 안락의자와 그 의자에 앉은 여성 모델을 그린 작품을 함께 놓았다. 꽃 정물화 곁에는 실제 작업에 사용한 화병을 선보인다. 물감이 굳어버린 팔레트와 붓, 이젤도 화가의 작업 시간을 전한다. 미완성 유작 역시 생전 사용한 이젤과 함께 공개한다.

 

완성된 회화에 이르기까지의 탐구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를 준비하며 모은 1000여 점의 스케치 가운데 작가의 시선과 화면 구성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를 골랐다. 임직순은 1980년대 후반부터 작고 직전까지 서로 맞닿아 선 두 그루의 나무를 반복해서 그리며 구도와 색채를 달리했다.

 

가족의 기억에 따르면 처음에는 소나무 뒤에 구름 등 배경을 그렸지만, 어느 순간 노란색 물감으로 배경을 덮고 나무만 남긴 구성에 큰 만족을 느꼈다고 한다. 관련 드로잉과 수채화, 유화를 함께 전시해 같은 소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 전경. 서울미술관 제공
전시 전경. 서울미술관 제공

풍경화에서도 현장 관찰과 반복적인 작업이 중요했다. 여행지에서 산과 바다, 항구를 마주하며 받은 인상을 스케치와 수채화로 기록한 뒤 화실에서 유화로 발전시켰다. 1986년 울릉도와 1991년 소래포구에서 본 정박한 배를 여러 시선으로 그린 자료들은 현장의 감흥이 회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생애 약 25회의 개인전을 열고 교육과 집필, 신문 연재, 삽화와 표지화 제작 등으로도 활동한 그의 행적은 도록과 전시 사진, 기사 등으로 돌아본다. 화실 풍경을 그려 손녀에게 보낸 편지와 스케치북에 적은 글, 1980년 출간한 화문집 ‘꽃과 태양의 마을’도 소개한다. 작품과 습작, 화구와 기록을 함께 펼쳐 평생 그림을 그린 화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자리다. 전시는 내년 2월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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