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망원렌즈로 본 가을의 북녘, ‘볏단 실은 소달구지’가 있었다 [유희태 기자의 ‘있었다’]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유희태 기자의 ‘있었다’ , 세계뉴스룸

입력 :
유희태 기자 joyking@segye.com

인쇄 메일 url 공유 - +

구글 선호 매체 등록
물건은 말이 없다. 대신 흔적이 말한다. 게중 엉뚱한 자리에 있는 물건은 눈길을 붙잡는다. 왜 이것이 여기 있을까. 그 자리에 앉아 오래 바라보고, 쥐어 보고, 냄새도 맡아 본다. 그래도 모르는 것은 내력을 아는 사람을 찾아 묻고 듣는다. 물건 뒤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연이 있다. 그 사연 속에 우리 시대의 모습이 있다. 사건에 가려 보이지 않던 풍경을 줍는다. 거기, 그것이 있었다.

 

22일 경기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에서 북한 주민들이 농사일을 하고 있다. 논 위로 짐을 끌고 가는 소의 모습도 보인다.
22일 경기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에서 북한 주민들이 농사일을 하고 있다. 논 위로 짐을 끌고 가는 소의 모습도 보인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해발 118m 산 위에서 1200mm 망원렌즈를 꺼냈다. 북한 개풍군 들녘이 뷰파인더로 들어왔다. 누렇게 익은 논과 푸른 기가 남은 논이 번갈아 포개졌다. 벼를 베어 낸 띠 하나를 따라 열 명 남짓이 한 줄로 허리를 숙였다. 굽은 등들이 쉼표처럼 이어졌다. 지난 달 22일 강 건너의 가을은 굽은 허리 위로 분주하게 거둬지고 있었다.

 

벼를 걷어 낸 자리는 흙빛이었다. 붉은 윗옷과 파란 윗옷, 흰 수건을 두른 머리가 그 위에 점처럼 찍혔다. 사람들은 허리를 폈다가 다시 굽혔다. 줄 끝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렌즈가 당겨 온 것은 옷 색깔과 몸짓이었다. 논과 논 사이는 짙은 풀이 띠를 이뤄 층을 냈다.

 

22일 경기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에서 북한 주민들이 농사일을 하고 있다.
22일 경기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에서 북한 주민들이 농사일을 하고 있다.
22일 경기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에서 북한 주민들이 트랙터를 이용해 농사일을 하고 있다.
22일 경기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에서 북한 주민들이 트랙터를 이용해 농사일을 하고 있다.

 

개풍군 논 위에서 농기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렌즈에 들어온 트랙터는 한 대였다. 붉은 몸체에 초록 운전석을 얹었고, 바퀴 휠도 붉었다. 꽁무니에는 초록 짐칸을 매달았다. 옆 논에는 베어 눕힌 벼가 비스듬한 줄을 그었다. 그 줄 끝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아래 논둑에서는 또 한 사람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나머지는 소가 끌었다. 볏단을 둥글게 쌓아 올린 달구지 두 대가 논두렁 길 위에 있었다. 달구지마다 앞머리에 사람이 하나씩 올라 앉았다. 흰 옷 차림의 한 명이 그 곁에 섰다. 화면 오른쪽 끝에는 세 번째 달구지가 걸렸다. 돌로 쌓은 둑 끝 시멘트 기둥 아래에는 흰 옷을 입은 세 사람이 모여 있었다. 한 명은 파란 짐을 들었다.

 

22일 경기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에서 북한 주민들이 농사일을 하고 있다.
22일 경기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에서 북한 주민들이 농사일을 하고 있다.
22일 경기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군 초소에 대남방송 확성기가 설치돼 있다.
22일 경기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군 초소에 대남방송 확성기가 설치돼 있다.
22일 경기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건물에 선전 문구가 적혀 있다.
22일 경기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건물에 선전 문구가 적혀 있다.

 

흰 모자와 수건을 쓴 너덧 명이 무리 지어 논 사이를 걸었다. 흰 옷 차림 한 명은 무리에서 몇 걸음 떨어져 따랐다. 붉은 옷과 흰 옷이 섞인 또 다른 무리는 논둑을 따라 한 줄로 지나갔다. 둑길 위로는 한 사람이 혼자 걸었다. 그 아래 흙길은 논을 비스듬히 가르며 흰 단층 건물 앞까지 이어졌다.

 

들판 사이사이에는 드물게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였다. 강가 숲 위로 2층짜리 초소가 솟았다. 지붕에는 흰 공 모양의 장비가 얹혔고, 벽은 넝쿨이 타고 올랐다. 그 아래로 철조망을 받친 말뚝이 늘어섰다. 초소 너머 논에서는 사람들이 줄지어 걸었다. 논 가운데 낮은 시멘트 건물은 담쟁이에 반쯤 덮였다. 담쟁이 잎 끝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곁에서도 농부가 허리를 숙였다.

 

전망대 앞마당에는 ‘망배단’이 있다. 명절이면 실향민들이 이곳에서 강 건너 고향을 향해 제사를 지낸다.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으로 소리는 들을 수 없다. 들판의 말소리도, 달구지 바퀴 소리도 화면에는 없다. 다만 추수하는 부지런한 동작으로 이들의 하루를 가늠한다. 강 하나 너머, 허리로 거두는 가을이 있었다.


오피니언

포토

솔라, 몸 뒤로 젖히고 날씨 만끽…탄탄 허벅지
  • 솔라, 몸 뒤로 젖히고 날씨 만끽…탄탄 허벅지
  • 박보검 '훈훈한 미소'
  • 성숙해진 김유정, 프랑스 파리에서 화보 같은 일상
  • 장원영, ‘파티걸 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