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김병수의마음치유] 요요 마는 왜 결혼·추모식서 같은 곡을 연주했을까

관련이슈 김병수의 마음치유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인쇄 메일 url 공유 - +

구글 선호 매체 등록
축복과 애도의 자리서 들려준 바흐 ‘사라반드’
한때의 환희는 훗날의 슬픔을 위로하는 울림

어릴 적 공부할 때면 늘 곁에 음악이 있었다. 라디오를 틀어놓기도 했고, 좋아하는 음반을 반복해 듣기도 했다. 음이 흐르면 지루한 공부도 견딜 만해졌다. 돌이켜 보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음악은 중요한 순간에 늘 내 곁을 지켜 준 친구였다. 그때 많이 들었던 곡 중 하나가 바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자주 들은 것은 요요 마의 연주다. 울적한 날에는 카살스의 선율이 더 와 닿았고, 낙담한 날에는 재클린 뒤 프레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로스트로포비치가 최고 아니냐고 말하는 이도 있을 테고, 미샤 마이스키의 연주는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같은 악보인데도 누가 연주하는지, 내가 어떤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에 따라 다르게 다가왔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이 제작하는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라는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는데, 여기서 요요 마가 들려준 사연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아 있다. 그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6번 D장조의 사라반드를 연주하기에 앞서, 이 곡을 친구들의 결혼식에서 들려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친구들을 추모하는 자리에서도 같은 곡을 연주했다고 이야기했다. 축복과 애도의 자리에서 똑같은 곡을 골라 첼로를 켰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 요요 마는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곡을 듣고 있으면 그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왜 사라반드에 끌렸는지도 알 것 같았다.

바흐는 1717년부터 1723년까지 독일 쾨텐의 궁정에서 악장으로 일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여섯 곡도 이 시기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각 모음곡은 프렐류드로 문을 열고 여러 춤곡을 거쳐 지그로 끝난다. 그 흐름의 중심에 사라반드가 놓여 있다.

사라반드는 느리고 장중한 3박자 춤곡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경쾌한 춤과는 다르다. 첫 번째 박에서 내디딘 리듬이 두 번째 박에 길게 머물고, 세 번째 박은 조용히 다음 마디로 이어진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첼로의 긴 호흡과 겹음이 더해져 여러 가지 목소리가 서로에게 응답하듯 울려 퍼진다.

특히 6번의 사라반드는 화려하게 노래하지도, 슬픔에 젖어들지도 않는다. 서늘한 어둠이 깃들어 있지만, 그 안에서 곧 밝아 올 새벽의 기운이 번진다. 절제된 선율 안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본질적 감정들이 응축돼 있다.

같은 곡을 연주했어도 정반대의 장면에서 그 울림이 같았을 리 없다. 결혼식에서의 연주가 추모식에서 다시 울려 퍼질 때, 그 안에는 함께한 시간들이 겹겹이 포개져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한때의 환희는 훗날의 슬픔을 위로하고, 이별의 슬픔은 서로가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를 일깨워 주었을 것이다.

그래 맞다, 오직 슬프기만 한 슬픔은 없다. 슬픔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가만히 머물러 있다 보면, 그 안에 깃들어 있던 사랑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사는 게 고달프다고 느껴지는 날에는 사라반드를 들어보자. 그 음악은 우울을 금세 없애 주지 않는다. 곧 괜찮아질 거라고 쉽게 약속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픔 곁에도 위로와 사랑이 함께 앉을 자리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그것만으로도 고달픈 하루가 조금은 견딜 만해진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오피니언

포토

아이브 리즈, 청순한 미모
  • 아이브 리즈, 청순한 미모
  • 솔라, 몸 뒤로 젖히고 날씨 만끽…탄탄 허벅지
  • 박보검 '훈훈한 미소'
  • 성숙해진 김유정, 프랑스 파리에서 화보 같은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