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하이페리온 레코드는 훌륭하나 낯선 음악을 발굴하는 데 공을 들여온 클래식 명문 음반사다. 특히 앙드레 아믈랭, 스티븐 허프, 스티븐 오스본 등 개성 강한 피아니스트들의 음반을 꾸준히 내놓아 ‘피아노 음반의 명가’로 통한다.
7일 목프로덕션에 따르면 피아니스트 손민수가 한국인 연주자로는 처음으로 하이페리온과 전속 계약을 맺고 첫 음반으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을 최근 발매했다. 하이페리온측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번 녹음을 통해 손민수를 하이페리온의 새로운 아티스트로 맞이하게 됐다”며 “이번 음반은 앞으로 이어질 ‘피아노 레퍼토리의 기둥’과도 같은 작품들을 녹음하는 시리즈의 첫 번째 음반”이라고 밝혔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건반음악 역사의 정점에 자리잡은 작품이다. 1722년 완성된 1권은 다장조부터 나단조까지 24개 장·단조마다 전주곡과 푸가 한 곡씩을 배치한 48곡으로 구성됐다. 약 20년 뒤 완성한 2권까지 합하면 전주곡과 푸가 48쌍, 모두 96곡이다. 대위법과 건반 작곡기법의 교과서이면서 각각의 곡이 독립된 예술 작품으로 후대 작곡가와 연주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한스 폰 뷜로는 이 작품을 피아노 음악의 ‘구약성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신약성서’로 비유했을 정도다. 베토벤 역시 어린 시절부터 평균율을 집중적으로 공부했고 슈만도 젊은 음악가들에게 이를 ‘일용할 양식’으로 삼으라고 권했다. 연주자에게는 각 성부를 독립적으로 살리면서도 전체 구조를 하나로 엮어야 하는 어려운 작품이다. 화려한 기교보다 음악가의 해석력과 사고를 고스란히 드러내야한다.
손민수에게 바흐는 오랫동안 음악세계의 중심에 자리해 왔다. 2011년 발표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은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그해 최고의 클래식 음반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2020년에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 음반을 내는 등 바흐와 베토벤을 중심으로 묵직한 레퍼토리를 쌓아왔다.
이번 평균율은 그의 스승인 미국 피아니스트 러셀 셔먼에게 바치는 음반이기도 하다. 셔먼은 평균율을 ‘인간 정신이 이룰 수 있는 가장 높은 차원의 표현’ 가운데 하나로 여겼지만 생전에 이를 녹음으로 남기지는 않았다. 셔먼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아내이자 손민수의 또 다른 스승인 피아니스트 변화경은 셔먼이 직접 메모하고 표시한 평균율 악보를 손민수에게 건넸다. 손민수는 이 악보를 공부하며 이번 녹음을 준비했다. 하이페리온 측은 이번 연주에 대해 손민수가 러셀 셔먼에게 배운 시절부터 이어진 수십 년의 음악적 여정이 담겼다며 ‘보기 드문 깊이와 기쁨을 지닌 해석’이라고 소개했다.
손민수는 2022년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만 18세로 우승한 임윤찬의 스승이다. 임윤찬을 어린 시절부터 지도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현재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하이페리온은 이번 음반을 손민수와의 장기적인 예술적 협업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에 이어 2권 녹음을 진행할 예정이다. 연주 일정도 빼곡하다. 손민수는 캐나다와 대만, 싱가포르에 이어 16일부터 국내 투어를 시작해 2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한다. 다음달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순회 연주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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