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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로서 잠들지 못한 밤… 클래식은 ‘★의 순간’이 되었다 [나의 삶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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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직 선임기자 repo2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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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교양서 펴낸 유인재 前 감사원 국장

반평생 우직하게 감사관 한길
낡은 세상 바꾸려는 꿈 안고 공직 투신
주머니 사직서 품고 다닐 정도로 강직
남의 약점 들춰야 하는 업무에 한계도

열정의 공직 생활 ‘방패’가 되다
우연히 간 용산상가서 클래식 ‘신세계’
“심장이 박동하고 영혼 진동하는 느낌”
치열한 감사 현장 균형 잡아준 나침반

삶의 방향타 역할 한 클래식
4대강 사업 감사·졸음쉼터 조성 제안…
좌고우면 않게 해 준 나만의 ‘피뢰침’
음악평론가·작가로 제2의 인생 펼쳐
“고전음악은 ‘감사(監査)’ 때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커다란 도움을 줬어요. 특히 일과 삶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방향타 역할을 했습니다.”
2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난 유인재 전 감사원 국장은 “클래식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기존에 살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어 클래식음악과 연관된 책을 썼고 강의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남정탁 기자
2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난 유인재 전 감사원 국장은 “클래식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기존에 살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어 클래식음악과 연관된 책을 썼고 강의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남정탁 기자

유인재(62) 전 감사원 국장은 공직 대부분을 감사원에서 근무했다. 반평생 동안 우직하게 감사관 한길을 걸었다. 최근 정년퇴임한 유 전 국장은 클래식 음악 관련 책을 펴냈다. 공무원 출신이 쓴 책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수준 높은 교양서를 받아 들고 그가 클래식에 빠지게 된 사연이 궁금해졌다.

최근 만난 유 전 국장에게 대뜸 왜 공직에 몸담게 됐느냐고 물었다. 그는 “낡은 세상을 바꾸고 멋진 세계를 만들겠다는 꿈을 안고 공직에 투신했다”고 답했다. 유 전 국장은 공직에 들어선 뒤 부모를 포함한 주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매사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감사원 직원으로서 주어진 미션을 하나씩 완수할 때마다 성취감을 느꼈다고 했다. 열정과 사명, 보람만을 생각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주어진 감사가 정치적 논쟁에 휘말려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거나 유혹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양복 주머니에 사직서를 갖고 다닐 정도로 강직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감사 업무는 보람만큼 부담도 컸다. 현실이 녹록지 않을 때는 일개 공무원의 한계도 절감했다. ‘남의 약점을 들춰야 하는 평범하지 않은 업무’ 때문에 본인 안팎의 ‘괴물’과 싸워야 했다. 괴물이라는 직접적 비판을 듣기 전 이미 괴물로 변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상당해 몸을 뒤척이며 잠들지 못한 밤도 많았다.

전 감사원 유인재 국장(현 작가) 나의 삶 인터뷰 /2026.10.02 남정탁 기자
전 감사원 유인재 국장(현 작가) 나의 삶 인터뷰 /2026.10.02 남정탁 기자

당시 우연히 들렀던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접한 클래식음악은 그에게 ‘별의 순간’이었다. 곡목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음악을 듣는 순간 유 전 국장은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표현대로 “대기권의 전기가 피뢰침 꼭대기로 빨려 들어가듯이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정수리로 들어와 심장이 박동하고 영혼이 진동”하는 느낌을 받았다. 클래식이 본인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겠다는 것을 직감했다.

유 전 국장에게 클래식음악은 조직에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질주할 때마다 삶의 의미를 일깨워 주었다. 목표를 성취하지 못했을 때 허무와 좌절감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중용을 지킬 수 있도록 힘을 준 것도 클래식이었다. 그는 “고전음악이라는 예술세계를 접했기 때문에 숱한 논쟁에 빠지거나 부조리에 연루되지 않고 명예롭게 박수받으며 퇴직할 수 있었다”고 자신했다.

“고전음악이라는 나만의 세계가 있는 데다 이걸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하게 업무를 추진하는 일을 지양하게 됐어요. (이명박정부 시절) 4대강 사업 등 국가적으로 큰 관심 사항이었던 주요 사업의 감사를 당당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클래식음악을 통해 신세계를 접한 그는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음악을 듣고 탐구했다. 출장 등으로 바쁠 때는 별도로 시간을 내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현장 감사를 끝내고 혼자 사무실에서 정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할 때는 이어폰을 이용해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유 전 국장은 허공을 바라봤다.

전 감사원 유인재 국장(현 작가) 나의 삶 인터뷰 /2026.10.02 남정탁 기자
전 감사원 유인재 국장(현 작가) 나의 삶 인터뷰 /2026.10.02 남정탁 기자

그는 2003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고전음악 감상 동호회 ‘클래식 바움’에 가입해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우고 감상했다. 매주 월요일 오후 7시부터 2시간30분 동안 음악을 듣는 시간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행복했다. 두세 달에 한 번씩 감상한 곡의 탄생 배경과 구조, 곡에 담긴 이야기 등을 발표하는 시간을 통해 고전음악에 대한 식견도 넓혔다. 유 전 국장은 “발표내용이 엉성하거나 섣부르게 준비했다가는 회원들의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없었다”며 웃었다.

하나에 빠지면 끝까지 몰입하는 성격을 가진 유 전 국장은 동호회 활동에 ‘진심’을 다했다고 했다. 동호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을 즈음 고전음악의 저변 확대를 위해 강의하고 책을 쓰는 음악평론가로서 입지도 굳히게 됐다.

“클래식음악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들어야 해요. 차를 타고 가거나 쉴 때 클래식음악을 배경 음악처럼 켜 놓고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다 귀에 쏙 들어오거나 마음에 와 닿는 음악의 곡목과 작곡가, 곡에 얽힌 내용 등을 찾아 읽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클래식음악에 빠져 있을 겁니다.”

유 전 국장은 “가사가 없는 소리를 단박에 알 수 없으니까 지루한 것은 당연하다”며 “클래식음악과 익숙해지는 환경을 만들고 자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클래식음악과 관련됐거나 클래식 음악이 인용된 영화를 본 뒤 곡을 찾아서 다시 들어보는 방법도 추천했다.

전 감사원 유인재 국장(현 작가) 나의 삶 인터뷰 /2026.10.02 남정탁 기자
전 감사원 유인재 국장(현 작가) 나의 삶 인터뷰 /2026.10.02 남정탁 기자

그는 무엇보다 클래식음악을 주요 소재로 삼아 글을 쓰는 작가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클래식에 심취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밀란 쿤데라를 소개했다.

클래식음악에서 별의 순간을 느낀 유 전 국장에게도 클래식 음악이 벽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고 한다. 음악을 들을수록 궁금증이 켜켜이 쌓였다.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은 왜 운명이라고 불리는지,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은 왜 완성하지 못했는지 등 물음표가 꼬리를 물었다.

답답함에 전문 서적과 논문을 들춰봐도 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유 전 국장이 직접 클래식음악 관련 책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다. 봉준호 영화감독이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아무도 만들지 않아 영화감독이 됐다’고 말한 것처럼 유 전 국장은 고전음악의 지적 호기심을 고전문학에서 찾는 노력을 시작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그가 평생 동안 꼼꼼하게 읽고 메모한 내용에서 클래식음악의 궁금증을 찾아내는 도전이었다.

4년여 동안 준비한 끝에 고전문학에서 얻은 영감과 상상력으로 음악의 미스터리를 풀어낸 ‘문학이 음악이 되는 순간’이라는 제목의 책이 지난 8월 세상에 나왔다. 고전문학으로 풀어낸 클래식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 책의 구성은 국내에서는 첫 시도여서 음악 애호가와 책 읽기를 좋아하는 독자들로부터 커다란 관심을 받고 있다.

전 감사원 유인재 국장(현 작가) 나의 삶 인터뷰 /2026.10.02 남정탁 기자
전 감사원 유인재 국장(현 작가) 나의 삶 인터뷰 /2026.10.02 남정탁 기자

“이 책은 음악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한 평범한 애호가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또 다른 나를 위해 쓴 익숙하면서도 낯선 음악 이야기입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음악이 들리고, 음악을 듣다 보면 문장이 보이는 순간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 순간을 경험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책을 썼습니다.”

그는 책을 읽다가 가슴을 울리는 문장이 나오면 꼭 메모를 한다. 평생 독서 습관이다. 그의 독서 파일은 A4 용지 7000쪽 분량에 이른다. 꼼꼼한 성격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독서와 메모가 책 출판의 두려움을 없애는 데 도움을 줬다.

독서는 제2의 인생을 음악평론가와 작가로 활동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다독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됐다. 집 근처 교회에 새로 부임한 전도사가 갖고 온 족히 1000여권에 이르는 책은 그에게는 처음 맞는 ‘별의 순간’이었다. 이때 손에 잡히는 대로 읽은 독서의 힘은 훗날 기술고시 2차 필수과목인 국민윤리에서 고득점을 맞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그는 “국민윤리에서 다른 응시생들보다 월등히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면 아마 불합격했을 것”이라며 “풍족하지 않은 시골에서의 생활이었지만 그 때문에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클래식 전문가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만큼 감사원 근무 때 큰 족적을 남겼다. 개인 비리를 밝히고 책임을 묻는 것보다는 비리나 문제가 발생하는 근원을 찾아내 제도를 개선하거나 부조리가 발생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감사를 벌였다. 사업의 타당성과 효율성 등을 분석해 예산을 절감하고 긍정적인 효과가 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을 전환시키는 데 주안점을 뒀다.

전 감사원 유인재 국장(현 작가) 나의 삶 인터뷰 /2026.10.02 남정탁 기자
전 감사원 유인재 국장(현 작가) 나의 삶 인터뷰 /2026.10.02 남정탁 기자

기억에 남는 감사로는 2007년 한국도로공사 감사 당시 고속도로 졸음쉼터 조성을 제안한 것이다. 도로공사와 휴게소 상인들 반대가 심했는데 졸음쉼터가 들어설 경우 휴게소 수입이 감소할 것을 우려해서였다. 유 전 국장은 휴게소 간 거리가 멀수록 갓길 정차 등으로 교통사고가 빈발한다는 통계와 졸음쉼터를 만들더라도 이용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휴게소 매출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했다.

유 전 국장은 “클래식음악 감상이 취미라고 얘기를 하면 대부분 오디오 장비 갖추느라 돈을 많이 썼을 것이라고 오해하지만, 소리의 세계보다는 동호회 활동을 통해 음악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큰 지출은 없었다”며 웃었다.

그는 클래식음악 가운데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추천했다. 여섯 곡 가운데 첫 번째 곡은 들을 때마다 영혼이 진동하는 느낌을 받아 특히 좋아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평생을 들어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유인재 전 감사원 국장은…

 

●1964년 충북 제천 출생 ●성균관대 건축학과 학·석사 ●영국 런던대 도시계획학 석사 ●연세대 기술정책학 박사과정 수료●감사원 SOC감사단장, 지방행정감사국장, 국방감사단장, 국토해양감사국장 ●국가철도공단 상임감사 ●미래도시성장연구소 소장 ●음악평론가 ●‘문학이 음악이 되는 순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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