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합중국’(USE·United States of Europe)이란 개념을 처음 창안한 이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다. 미합중국(USA)을 연상케 하는 이 문구 속에는 2차대전 이후 세계의 중심 지위를 미국·소련(현 러시아)에 헌납하고 내려앉은 유럽의 상실감이 담겨 있다. 처칠은 유럽 국가들이 옛 위상과 역할을 되찾으려면 서로 뭉쳐 단일 정부, 단일 시장을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여겼다. 오늘날의 유럽연합(EU)에 해당하는 셈이다. 단 처칠이 말한 USE가 진짜 연방국가인지, 아니면 느슨한 국가연합인지는 불분명했다. 영국이 USE 일원인지 여부도 마찬가지였다.
1950년대 들어 프랑스와 독일(당시 서독)을 중심으로 ‘유럽 통합’ 운동이 한창일 때 섬나라 영국은 이를 외면했다. 당시만 해도 영국은 전 세계에 광활한 식민지와 자치령을 거느렸다. 영국이 주도하는 영연방 회원국들은 그 자체로 거대한 시장이었다. 영국은 프랑스·독일의 화해와 그에 기반한 통합 유럽의 비전은 적극 지지하되 굳이 영국이 그 일부가 될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이렇게 영국이 주저하는 사이 프랑스·독일 양국이 주도하는 유럽공동체(EC)가 단단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영국이 EC 회원국들의 높은 경제 성장률에 부러움과 조바심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극심한 경기 침체에 시달리던 영국이 1973년 ‘늦깎이’로 EC에 가입한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 하나 옛 ‘대영제국’의 향수(鄕愁)가 여전했던 영국인들에게 EC와 그 후예인 EU는 여러 모로 불만스러웠다. 영국은 역내 ‘빅3’ 경제 대국으로 EU에 막대한 재정적 기여를 했지만, 정작 영국이 EU에서 받는 수혜는 충분치 않아 보였다. 이의를 제기하려 해도 진작 프랑스·독일 중심의 의사 결정 구조가 굳어진 EU에선 도무지 먹혀들지가 않았다. 여기에 민족주의자들은 “영국의 국익은 지역(유럽)을 넘어 대양(대서양) 그리고 전 세계에 있다”고 외쳤다. 결국 2020년 1월 영국은 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를 단행했다.
호기롭게 EU를 뛰쳐나온 뒤 6년여 만에 영국에서 EU 재가입, 이름하여 ‘리조인’(Rejoin)이 거론되고 있다. 3일 영국 언론이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49%가 재가입을 희망한 반면 부정적 답변자의 비율은 28.5%에 그쳤다.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를 되레 악화시켰다는 인식 때문이다. 영국을 구성하는 여러 지역 단위 중 스코틀랜드, 북(北)아일랜드, 웨일스에서 특히 찬성률이 높았다. 이들은 여차하면 영국에서 독립해 EU의 품에 안길 태세다. 급기야 앤디 버넘 영국 총리가 “유럽 파트너들과의 장기적 관계를 위해 여러 옵션을 제시하겠다”고 밝혀 EU 재가입도 옵션들 중 하나임을 내비쳤다. 정말 돌고 도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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