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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그날처럼…10월 1일, 다시 울리는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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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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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 영화 ‘아리랑’ 개봉 100주년 기념작 ‘나운규 아리랑’ 시사회…사라진 필름 대신 노래로 100년의 기억 되살려

10월 1일, 마침내 다시 만난다.

 

100년 전인 1926년 10월 1일 서울 단성사에서 처음 관객을 만났던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꼭 한 세기를 건너 2026년 10월 1일 다시 스크린에 오른다.

 

영화 ‘나운규 아리랑’ 주요 장면. 아리랑연합회 제공
영화 ‘나운규 아리랑’ 주요 장면. 아리랑연합회 제공

아리랑연합회,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만담보존회 등 민간문화단체에서 영화 ‘아리랑’ 개봉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나운규 아리랑’이 이날 오후 3시 서울 성북구 아리랑시네센터에서 시사회를 갖는다. 1926년 원작 영화는 현재 온전한 필름이 남아 있지 않다. 이번 작품은 사라진 영화를 그대로 복원하는 대신 나운규가 왜 ‘아리랑’을 만들었고, 어떻게 영화의 주제가로 ‘아리랑’을 선택했는지를 따라가며 한 영화와 한 노래가 한국인의 기억 속에 남은 과정을 되살린다.

 

1926년 10월 1일은 조선총독부 신청사 낙성식이 열린 날이기도 했다. 그날 단성사에서 개봉한 ‘아리랑’은 일제강점기 민족의 아픔과 저항을 담아내며 관객들에게 강렬한 울림을 줬다. 국가기록원은 당시 ‘아리랑’이 개봉 첫날부터 유례없는 인기를 끌었으며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고 노래를 함께 부르는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고 소개한다.

 

100년 뒤인 2026년 10월 1일에는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다양한 행사가 이어진다. 정오에는 100년 전 ‘아리랑’이 처음 상영됐던 단성사에서 아리랑 선포식이 열린다. 이어 당시 영화 전단을 재현한 자료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단성사에서 옛 조선총독부 터인 광화문까지 시가행진을 진행한다. 오후 3시에는 아리랑시네센터에서 ‘나운규 아리랑’ 시사회가 열린다.

 

영화 ‘나운규 아리랑’ 포스터. 아리랑연합회 제공
영화 ‘나운규 아리랑’ 포스터. 아리랑연합회 제공

이번 작품의 특징은 영화와 연극, 악극을 결합한 독특한 형식이다. 100년 전 무성영화 상영 방식이었던 ‘연쇄극’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했다. 스크린에 극 중 배경이 펼쳐지고 배우들이 무대에서 연기를 한다. 소리꾼은 ‘아리랑’을 부르고 변사는 장면을 설명한다. 영화와 무대, 음악과 해설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100년 전 관객들이 만났던 ‘활동사진’의 풍경을 오늘의 영화 언어로 되살린다.

 

내용 역시 1926년 영화 ‘아리랑’을 단순히 재현한 것이 아니다. 작품은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나운규가 항일투쟁의 무기를 영화로 바꾸게 된 과정에서 출발한다. 회령에서 3·1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른 나운규가 친구 윤봉춘과 함께 영화의 길로 들어선 뒤 부산 조선키네마에서 ‘아리랑’을 구상하고, 김영환과 함께 영화의 주제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극영화 형식으로 담았다.

 

영화 ‘나운규 아리랑’ 주요 장면. 아리랑연합회 제공
영화 ‘나운규 아리랑’ 주요 장면. 아리랑연합회 제공

영화 속에는 당시 일제의 검열을 피해가기 위한 다양한 상징과 장치도 등장한다. 개와 원숭이를 통해 일본과의 관계를 은유하고, 사막에서 물을 구하는 영희에게 몸을 요구하는 아라비아 상인을 통해 권력의 폭력성과 교활함을 암시한다. 일본 앞잡이를 낫으로 응징하는 주인공 영진을 ‘광인’으로 설정한 것도 검열을 비켜가기 위한 장치로 그려진다.

 

주인공 영진과 나운규 역은 1인 뮤지컬 배우 김필이 맡았다. 정은수, 윤동환, 김명중, 신성우 등 개성 있는 배우들이 출연한다. 만담가 장광팔은 신불출과 변사 역을 맡아 작품에 해학과 긴장감을 더한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출연도 눈길을 끈다.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 명예관장, 표재순 연출가, 최진용 전 국립극장장, 최성 전 고양시장 등이 작품에 참여해 ‘숨은 인물 찾기’ 같은 재미도 선사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장면이다.

 

지난달 27일 대학로 한예극장에서 진행된 마지막 촬영에는 국민 소리꾼 장사익과 명창 김영임을 비롯해 이장학, 양은희 등 국악인과 서울·왕십리·군포·진천·동두천 등 전국 각지의 아리랑보존회 회원들이 함께했다. 참여 인원만 40~50여 명에 이르렀다.

 

극 중 영진은 일본 순사들에게 끌려가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말한다.

 

“여러분, 다 함께 아리랑을 불러주십시오.”

 

영진의 목소리가 끝나자 장사익과 김영임이 아리랑을 선창한다. 전국에서 모인 아리랑보존회 회원들이 하나둘 노래를 이어간다. 오주연의 아코디언 연주가 더해지면서 화면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아리랑이 울려 퍼진다. 100년 전 나운규가 스크린에 심었던 노래를 2026년 사람들이 다시 함께 부르는 순간이다. 사라진 필름을 되살리는 대신 노래를 통해 영화를 되살린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아리랑’은 지역마다 서로 다른 가락과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서울우리소리박물관도 올해 영화 ‘아리랑’ 개봉 100주년을 맞아 ‘다시, 아리랑’ 기획전을 열고 영화의 주제가였던 ‘본조아리랑’을 중심으로 아리랑의 역사와 의미를 조명하고 있다.

영화 ‘나운규 아리랑’ 주요 장면. 아리랑연합회 제공
영화 ‘나운규 아리랑’ 주요 장면. 아리랑연합회 제공

‘아리랑’ 100주년은 한국 영화사만의 사건도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7일 프랑스 생폴드방스에서 열린 뤼미에르 서밋 개막연설에서 2026년을 영화사적으로 특별한 해라고 소개하며 ‘돈 주앙’과 ‘아흐메드 왕자의 모험’, 그리고 나운규의 ‘아리랑’이 각각 100주년을 맞는다고 언급했다. 그는 나운규의 ‘아리랑’이 한국 민족영화의 시작이자 한국 영화사에 선구적인 발자취를 남긴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나운규 아리랑’ 제작진은 오늘날 세계무대에서 한국문화를 알리는 K팝의 흐름과 100년 전 나운규가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아리랑’을 대중에게 전했던 시도를 연결해 바라본다.

 

결국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한 편의 영화가 아니다. 한 사람의 꿈이 어떻게 모두의 노래가 됐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나운규가 100년 전 스크린에 심었던 작은 씨앗은 영화가 사라진 뒤에도 노래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2026년 10월 1일, 장사익과 김영임, 국악인들과 전국의 아리랑보존회 회원들이 한자리에서 그 노래를 다시 부른다. 한 세기를 건너온 ‘아리랑’이 다시 스크린에 오른다.

 

그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은 확인하게 된다. 영화는 사라져도 노래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100년 전 나운규가 남긴 ‘아리랑’은 그렇게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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