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치가 로베르 슈만(1886∼1963)은 흔히 ‘슈망’으로 불리곤 한다. 그의 국적을 의식해 성(姓)인 ‘Schuman’을 프랑스식 어법으로 발음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독일이 낳은 유명한 작곡자 슈만과 철자가 같다. 로베르 슈만 본인이 독일계 프랑스인이란 점을 감안하면 ‘슈만’이 올바른 표현이라고 하겠다. 그는 프랑스 외교부 장관 시절인 1950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창설에 관한 이른바 ‘슈만 플랜’을 제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기구가 유럽공동체(EC)를 거쳐 오늘날 유럽연합(EU)으로 성장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슈만에게 ‘유럽 통합의 아버지’란 수식어가 따라 붙는 이유다.
슈만의 개인사는 참으로 독특하다. 그는 프랑스 로렌 출신인 독일인 아버지와 룩셈부르크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로렌은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진 프랑스가 알사스와 함께 신생 독일 제국에 빼앗긴 땅이다. 당시 알사스·로렌 지역에 계속 남은 프랑스인들은 국적이 독일인으로 바뀌었다. 슈만의 아버지 집안도 그런 경우에 해당했다. 이처럼 독일인으로 자란 슈만은 1차대전(1914∼1918) 당시 독일군 일원으로 참전해 프랑스군과 싸웠다. 전쟁이 독일의 패배로 끝나며 알사스·로렌은 프랑스로 반환됐다. 그에 따라 슈만도 프랑스인이 되었으니 보통 기구한 운명이 아닐 수 없다.
2차대전 때 다시 적으로 싸운 프랑스와 독일은 1945년 종전 후 한동안 원수지간처럼 지냈다. 프랑스 정계의 거물로 부상한 슈만은 이런 현실이 달갑지 않았다. 독일어가 유창하고 옛 조국인 독일에 애정도 있었던 그는 프랑스·독일 양국의 화해에 평생을 바쳤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슈만은 역시 가톨릭 신앙심이 두터운 콘라트 아네나워 독일 총리와 마음이 통했다. “유럽 국가들이 석탄과 철강 산업을 공유하면 전쟁의 원천 차단도 가능하다”는 그의 ECSC 구상이 유럽 국가 정상들의 공감을 얻은 이유다. 애초 ‘프랑스·독일 화해’에서 출발한 슈만의 꿈은 한층 원대한 ‘유럽 통합’으로 커졌다.
레오 14세 교황이 오는 27일 프랑스 북동부 도시 메스를 방문한다. 로렌 지역의 중심지인 메스는 슈만의 정치적 고향에 해당한다. 그곳에서 교황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슈만의 생애를 추모할 예정이다. 또 ‘평화와 통합을 위한 유럽의 뿌리’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해 전쟁에 반대하고 통합을 추구한 슈만의 정신을 되살릴 것을 촉구할 계획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에 맞춰 EU 회원국 정상들 전원을 메스로 초청한 상태다. 교황의 영적 권위를 앞세워 EU 내에서 마크롱 그리고 프랑스 정부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그래도 교황이 내놓을 메시지에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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