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훈 기자] “우리 쪽에 공간이 많이 나서 센터백인 (이)한범이와 내가 많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어 재미있었다. 우리 선수들 대부분이 소속팀에서 포백을 쓰기 때문에 더 편안하게 플레이했다”
2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에콰도르와의 A매치 평가전을 3-0 완승으로 마친 뒤 ‘철기둥’ 김민재(바이에른 뮌헨)이 남긴 말이다. 김민재의 한 마디만으로 홍명보 전 감독의 스리백 전술 고수, 이른바 ‘스리백강점기’가 얼마나 틀렸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제 딱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감독 하나가 바뀌면 얼마나 많은 게 바뀔 수 있는지를 여실히 체감할 수 있는 한 판이었다. 로베르트 모레노(스페인) 감독의 한국 축구 사령탑 데뷔전은 지난 2년 간 홍명보 전 감독과 동행이 사실상 시간 낭비이자 실패였음을 증명했다.
지난 14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기본 포메이션을 4-4-2로 쓰겠노라 천명했던 모레노 감독. K리그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포메이션이자 여전히 국제 무대에서도 유용하다는 이유를 댔다. 그 안에는 전임인 스리백 전술로 한국 축구가 당한 ‘탈락 엔딩’의 그림자를 지우겠다는 뜻이 분명했다. 그리고 포백을 기반으로 한 4-4-2는 일단 대성공이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의 스리백과 비교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건 공수 간격이었다. 4-4-2 대형으로 선 우리 선수들은 수비 시에 최전방부터 중원, 수비진까지 간격을 좁히면서 에콰도르가 쉽게 전진하지 못하도록 압박했다. 그리고 공을 뺏으면 공을 뒤로 돌리는 ‘소극적인 빌드업’이 아닌 패스 하나 두 개로 바로 전방으로 역습을 전개하는 기민한 움직임도 돋보였다. 지공 시에도 포백과 미드필드진이 크게 벌리지 않고 전체적인 대형을 유지하는 모습이었다. ‘간격’이라는 키워드를 모티브로 한 전술이 팀 전술의 기본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물론 전반전엔 공격 작업이 매끄럽지 않았다. 점유율 55%를 기록하며 공을 더 많이 가졌지만, 유효슈팅은 1개에 불과했다. 지난 21일에야 처음으로 소집돼 모레노 감독이 전술적 색채를 채우기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기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대표팀 공격진의 핵심인 이강인(아틀레티코 마드리드)과 ‘중원 사령관’ 황인범(포르투)는 소속팀 일정으로 대표팀 합류가 늦었기에 휴식 차원에서 선발 명단에서 빠졌고, 끝내 그라운드를 밟지 않았다. 두 선수가 합류할 다음 경기부터는 전반부터 원활한 공격이 예상된다.
홍명보 전 감독의 가장 취약점 중 하나는 인게임 조정능력이었다. 경기가 예상했던 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 사령탑의 전술적 기지와 센스, 평소 분석력을 통해 경기 중에 선수들의 움직임과 대형 등을 수정하는 능력이 제로에 가까웠다.
그러나 모레노 감독은 달랐다. 모레노 감독은 하프타임 시간을 이용해 변화를 줬다. 압박과 빌드업 과정에서 선수들의 위치와 움직임을 조정했고, 후반 들어 한국의 공격 전개는 한층 빨라졌다.
후반 9분 터진 오현규의 선제골이 그 증거였다. 후방에서 공을 잡은 김민재가 곧바로 전방으로 직선 패스를 내줬고, 송민규는 볼을 끌지 않고 논스톱 패스를 오현규에게 건넸다. 이를 받은 오현규는 오현규가 페널티아크 정면 부근에서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다. 상대 수비를 맞고 살짝 굴절된 공은 에콰도르 골망을 흔드는 선취골이 됐다. 이날 경기를 치른 수원월드컵경기장은 ‘수원의 아들’이자 수원 삼성에서 뛰었던 오현규에게 더없이 친숙한 곳. ‘빅버드’라 불리는 이곳에도 1426일 만에 골을 터뜨린 오현규는 코너 플래그 포스트를 거침없이 차버리며 모레노호 첫 골의 기쁨을 만끽했다.
후반 14분 터진 손흥민의 프리킥 골은 선수 개개인의 역량에 의한 골이었다. 후반 41분엔 후반 41분에는 교체 투입된 이동경이 김봉수의 패스를 받아 쐐기골을 넣었다. 이동경의 득점은 상대 수비가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짧고 정확한 패스 연결을 통해 터졌다. 공격 루트의 다양화도 인상적이었다.
이제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이라는 것을 모레노 감독도 잘 알고 있다. 그는 경기 후 “가족과 함께하는 뜻깊은 휴일에 이런 경기 결과 선물할 수 있어서 기쁘다. 하지만, 한 경기 치렀을 뿐이다. 3-0으로 이긴 다음에 평가하는 건 조심해야 한다. 이런 결과가 나오면 좋은 것만 보게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 경기를 잘 준비하겠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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