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훈 기자]역시 승리 만한 보약은 없었다. “OOO 나가” 등의 야유도 듣지 않아도 됐다. 추석 연휴 첫날임에도 3만3953명의 관중들이 들어찼고, 한국 축구의 새 출발을 향한 희망을 볼 수 있는 한 판이었다.
홍명보 전 감독의 사퇴로 공석이 된 한국 축구 대표팀의 임시 감독직을 맡은 로베르트 모레노(49·스페인) 감독의 데뷔전으로 관심을 모았던 A매치 에콰도르전의 결과는 완승이었다. 모레노 감독의 ‘포백 전술’은 무실점에 멀티골을 기록하며 데뷔전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모레노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FIFA 랭킹 32위)은 2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에콰도르(25위)와 9~10월 A매치 4연전의 첫 경기에서 오현규(베식타시)-손흥민(LAFC)-이동경(울산)의 연속골이 이어지며 3-0 완승을 거뒀다.
모레노 감독은 지난 14일 천안 코리안 풋볼 파크에서 열린 취임 및 엔트리 발표 기자회견에서 대표팀의 기본 전술을 ‘4-4-2’를 쓰겠노라 천명했다. K리그에서 가장 만힝 사용되는 포메이션이자 여전히 국제 무대에서도 유용하다는 이유에서다. 그 속뜻에는 전임인 홍명보 전 감독의 스리백 전술로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충격의 조별리그 탈락을 했던 그림자를 지우겠다는 뜻도 보였다.
손흥민(LAFC)과 오현규(베식타시)가 투톱 스트라이커로 나섰고, 중원에는 이재성(마인츠)과 박진섭(저장)이 배치됐다. 좌우 날개에는 송민규(나시오날)와 정승원(서울)이 나섰다. 포백은 김민재(뮌헨)-이한범(브루게) 조합이 중앙을 맡고 좌우 풀백에 조현택(울산)과 설영우(아우크스부르크)가 나선 가운데 골키퍼는 김승규(도쿄)가 맡았다. 대표팀 공격진의 핵심인 이강인(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중원 사령관’ 황인범(포르투)는 소속팀 일정으로 대표팀 합류가 늦었기에 휴식 차원에서 선발 명단에서 빠졌고, 끝내 그라운드를 밟지 않았다. 대표팀 두 핵심 자원이 빠졌음에도 모레노 감독의 축구는 단단했다.
모레노 감독이 가동한 포백 전술의 핵심 요소는 간격 유지·강한 압박·왕성한 체력의 3가지 요소로 압축된다. 전반전 킥오프 휘슬이 울리자 태극전사들은 3선부터 최전방까지 좁은 간격을 유지하며 강한 전방 압박으로 에콰도르를 상대로 기선 제압에 나섰다. 모레노호는 공격과 수비 때도 4-4-2 대형을 깨지 않고 촘촘한 간격 유지에 집중하며 균형을 맞추는 데 애를 썼다.
상대 역시 포백 대형으로 나서면서 수비벽을 강하게 세우면서 대표팀은 중원에서 빠르게 좌우로 공격을 전환하며 속도감 있게 에콰도르를 공략했다. 오현규가 오른쪽으로 빠지면, 그 자리에 정승원이 파고들며 수비수를 교란하는 위치 변화도 눈에 띄었다.
다만 지난 21일에야 대표팀이 소집돼 모레노 감독의 전술적 색채를 입히기엔 절대적 시간이 부족했고, 현재 대표팀 내에서 가장 창의적인 플레이에 능한 이강인의 공백으로 인해 전반전엔 공격 작업에선 다소 아쉬운 장면이 여러 차례 연출됐다. 결국 전반은 득점 없이 0-0으로 마쳐야했다.
그러나 대표팀은 후반 들어 180도 달라진 경기력으로 무장하고 나왔다. 전반전이 끝나고 라커룸 미팅에서 모레노 감독은 전반전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선수들과 공유하며 득점 기회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고, 태극전사들은 곧바로 그라운드에서 실천으로 옮겼다.
공을 뺏으면 공을 빙빙 돌리며 빌드업에 집중하기 보다 직선적인 움직임으로 재빠르게 빌드업을 거친 뒤 곧바로 공격 작업에 나서는 모레노 감독의 축구가 후반 9분에 빛을 발했다. 김민재가 후방에서 전방으로 찔러준 패스를 송민규가 볼을 끌지 않고, 논스톱 패스를 오현규에게 건넸다. 이를 받은 오현규는 오현규가 페널티아크 정면 부근에서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다. 상대 수비를 맞고 살짝 굴절된 공은 에콰도르 골망을 흔드는 선취골이 됐다. 이날 경기를 치른 수원월드컵경기장은 ‘수원의 아들’이자 수원 삼성에서 뛰었던 오현규에게 더없이 친숙한 곳. ‘빅버드’라 불리는 이곳에도 1426일 만에 골을 터뜨린 오현규는 코너 플래그 포스트를 거침없이 차버리며 모레노호 첫 골의 기쁨을 만끽했다.
4분 뒤엔 주장 손흥민이 나섰다. 엔드 라인에 가까운, 슈팅 각도가 거의 나오지 않는 왼쪽 측면에서 프리킥 키커로 나선 손흥민은 크로스가 아닌 오른발 감아차기로 슈팅을 시도했고, 아름답게 휘어져 들어간 공은 반대편 그물에 꽂혔다. 환상적인 프리킥 골이었다. 손흥민은 자신의 시그니처 무브인 ‘찰칵 세리머니’로 기쁨을 표현했다. A매치 통산 57호골을 터트린 손흥민은 차범근 전 감독이 보유한 한국 선수 A매치 최다골(58골) 기록에 한 골 차로 다가섰다.
2골에 만족하지 못한 대표팀은 교체로 투입된 이동경이 후반 41분 쐐기골을 작성하며 3골을 완성했다. 특히 쐐기골은 상대 수비진이 모두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정확하고 간결한 패스연결로 완성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만했다.
빌드업을 통한 조직력이 빛난 득점과 개인 능력을 앞세운 추가골, 유기적인 패스로 만들어낸 쐐기골까지 모레노호는 북중미 월드컵에서 답답함을 느꼈던 팬들의 '득점 갈증'을 깔끔하게 해소했다.
데뷔전을 기분 좋게 승리로 장식한 모레노 감독은 28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를 상대로 9월 두 번째 A매치 평가전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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