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공식 출범한 것은 2차대전이 끝난 뒤인 1945년 10월24일이다. 하지만 유엔 설립 논의는 대부분 2차대전 도중에 이뤄졌다. 나치 독일, 군국주의 일본 등 추축국을 상대로 선전 포고를 한 연합국 51개국 대표가 ‘유엔 헌장’을 채택한 것이 전쟁 말기인 1945년 6월의 일이다. 유엔이 원래 세계 모든 나라가 아니고 2차대전 연합국들을 중심으로 창설됐다는 점은 아직까지도 유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엔 헌장 제53조에는 ‘적국’(enemy state)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유엔 창립을 주도한 연합국들의 적이란 뜻이다.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독일의 강요를 견디다 못해 독일과 동맹을 맺고 소련(현 러시아)을 상대로 전쟁에 뛰어든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몇몇 동유럽 국가들이 있다. 지금은 모두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세계에 편입돼 ‘적’으로 부르는 것이 어색하게 들린다. 그래도 유엔 헌장은 아직 그렇게 돼 있다. 다만 사실상 사문화했다는 뜻에서 보통 ‘구(舊)적국 조항’으로 불린다.
연합국들이 유엔 헌장에 굳이 이 조문을 삽입한 것은 적국들의 재침략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유엔이 특정국에 무력을 행사하려면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결의가 필요한데,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 간의 견해차로 결의가 지연되는 상황을 가정했다.
이 경우 안보리 결의 없이도 유엔 회원국이 독자적으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가한 것이 바로 유엔 헌장 53조의 핵심이다. 물론 나치 독일도, 군국주의 일본도 ‘무조건 항복’을 선언할 만큼 완전히 망해 버렸기에 재침략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22일 취임 후 첫 유엔 총회 연설에서 유엔 헌장에 명시된 구적국 조항의 조속한 삭제를 촉구했다. 다카이치는 “70년간 유엔의 활동에 크게 기여해 온 일본의 자부심과 명예가 걸린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는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 중 하나인 중국의 입장과 관련이 있다. 중국 외교부는 중·일 관계가 얼어붙기 시작한 2025년 11월 이래 ‘유엔 헌장 53조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2차대전 당시 적국이던 일본이 도발을 일삼는 경우 안보리 결의가 없어도 중국 혼자 무력 조치를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유럽의 우크라이나와 중동을 넘어 이젠 아시아마저 군사적 충돌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영화 ‘실미도’, 23년 만의 자막 수정](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9/24/128/20260924505894.jpg
)
![[세계포럼] 강신철 시험대는 지금부터](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8/05/128/20260805523556.jpg
)
![[세계타워] 추석 밥상머리 민심의 경고](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9/23/128/20260923513398.jpg
)
![[김형배의공정과효율] 정원과 정글 사이, 경제분석의 섬세한 손](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9/02/128/20260902520076.jpg
)


![개에 쫓기던 20대 여성 사망…홍콩서 한 달 새 2명 참변 [차이나우]](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9/22/300/20260922519846.jpg
)
![[아시안게임] 北응원단 앞에 나타난 '짝퉁' 김정은 "北 세뇌 깨부수려"](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9/22/300/20260922503463.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