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전 바닷길, 신안선에 실린 세계
1323년 음력 6월의 어느날, 배는 중국 경원(지금의 닝보)을 출발했다. 일본 하카타로 갈 것이었다. 그러나 끝내 이르지 못했다. 거센 풍랑을 만난 것일까. 한반도 남부의 바다에서 침몰했다.
배는 1976년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무려 600여 년, 깊은 바닷 속에서의 긴 잠을 깨고 세상으로 다시 나온 것이다. 중국 원나라의 배이나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되어 ‘신안선’이란 이름을 가지게 됐다. 꼭 50년 전 신안선 발굴은 한국 수중고고학의 시작이었다.
신안선에 실린 엄청난 규모의 화물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청자, 백자, 흑유·잡유 등 도자기가 약 2만6000점이었다. 약 800만 개에 달하는 동전은 28t에 달했다. 원나라의 것이 많고, 앞선 왕조 당·송·요 등의 것도 있었다. 인도·동남아시아 계통의 고급 목재인 자단목이 1017개나 확인됐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이 자단목을 소재로 한 ‘바다를 건넌 나무, 자단’ 특별전을 지난 15일 시작했다. 자단목에 새겨진 글자를 분석해 “동아시아 물류 체계를 생생하게 담아낸 ‘기록 매체’로 새롭게 조명한 자리”라고 한다. 이 외에 금속제품 약 700~1000점, 벼루·연석 등 석제품 약 40점, 칠기·목기 등 목제품 등이 함께 나왔다.
◆7점 고려청자, 바다를 건너다
원나라 무역선이니 화물은 대부분 중국 물건이었다. 그리고 양이 엄청나다. 동전이 대표적이다. 약 800만 개에 이르는 신안선 동전 덕분에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중국 고대·중세 화폐의 보고가 됐다. 특히 원나라 시대 화폐 연구에서도 매우 중요한 자료를 보유하게 됐다. 2만6000여 점인 도자기 역시 중국산이 대부분이다.
수많은 중국제 화물 속에 고려청자 7점이 섞여 있었다. 연꽃무늬 매병, 학무늬 완, 모란무늬 잔받침 등으로 12~1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에서 원나라로 수출됐다가 일본으로 향하는 신안선의 화물 중 하나가 된 것으로 보인다.
신안선의 고려청자는 당대에 고려청자가 중국, 일본에서 인기를 끌어 국제적 유통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7점 중 하나인 학무늬 베개를 보자. 남아 있는 게 많지 않아 사료적 가치가 큰 고려청자 베개는 지금까지 일본에서 12점이 출토됐다.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의 유적 두 곳과 가마쿠라시의 유적 두 곳, 후쿠이현의 유적 등에서 발견됐다. 출토지가 도시 유적이나 사원 터, 무사의 저택이다. 청자베개가 귀족이나 유력 무사, 승려 등 당시의 특정 계층이 사용했던 고급품으로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한국, 중국 도자기의 세계적 소장처라고 해도 좋은 오사카시립동양도자 미술관 소장 청자양각쌍학문침이 비슷한 작품이다.
신안선 고려청자는 고려청자가 고려 안에서만 소비되지 않고 ‘국제성’을 확보했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흔적이다. 고려청자의 기원은 중국이다. 중국의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여 탄생했다. 그러나 고려는 선진기술의 ‘수용’에만 머물지 않았다. 독자적 아름다움을 ‘창조’해 냈다. 그렇게 중국으로 수출됐고, 일본에서도 애호되었다.
◆‘천하제일’…중국 왕조의 고려청자 찬사
고려청자가 국제적 명성을 가졌음은 도자기의 원조 중국의 각종 문헌이 증명한다. 1123년 고려에 사신으로 다녀갔던 송나라 서긍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은 잘 알려져 있다. 서긍은 고려청자의 ‘비색’(翡色)이 중국 최고의 도요지로서 황실 도자기를 만들었던 여요의 비색(秘色)과 닮았다고 했다. 고려청자를 중국 황실청자와 같은 급에 놓은 것이니 당시로서는 최대의 찬사다. 남송(1127~1279)의 태평노인은 ‘수중금’에서 비색을 ‘천하제일’이라고 했다. 골동품 지침서의 선구로 평가받은 ‘백보총진집’은 “여요가 고려신요와 비슷하다”고 해 고려도경과 비슷한 평가를 담고 있다.
높은 평가는 후대 왕조로도 이어졌다.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에 따르면 고대 문물과 예술품의 진위·가치에 대해 서술한 명나라 초기 저술 ‘격고요론’은 ‘고려요’를 중국의 자요, 여요, 관요 등에 이어 7번째에 올렸다. 언급된 순서가 도자기의 품질에 대한 평가다. 중국 주요 도요지 중 하나인 용천요를 12번째에 두었으니 고려 도자기를 얼마나 귀하게 봤는지 알 수 있다.
중국이 고려청자 애호는 발굴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남송의 수도였던 저장성 항저우, 당시 무역의 중심지였던 닝보에서 다수의 고려청자가 출토됐다. 궁궐 유적에서 전각 이름이 새겨진 도편이 나오는 건 특히 눈길을 끈다. 최상위 계층이 폭넓게 사용한 물품이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이 중국에서는 왕조를 이어가며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한국에서는 조선시대에 접어들며 단절되었다고 짚은 것은 종주국의 무심함을 애석해 하는 것처럼 들려 몹시 흥미롭다.
“송나라 이래 고려청자는 북송 여요나 남송 관요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이런 평가는 명나라 초기 고도자 감상과 감정에서 하나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격고요론에서도 재차 결정적으로 작용해, 외국 도자임에도 ‘고고려요’(古高麗窯)는 이후 고도자 감상, 수집의 분야에서 그 이름이 오랫동안 회자되었던 것이다. 이런 점은 조선왕조에 들어 고려청자의 전승이나 그 평가의 계승이 거의 단절되는 상황에 이른 한반도와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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