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훈 기자]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일본(FIVB 랭킹 6위), 중국(7위)뿐만 아니라 태국(13위)도 여자배구에서 우리보다는 한 수, 아니 두 세 수는 위라는 것을.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28위)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4위로 마무리했다.
차상현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22일 일본 아이치현 파크 아레나 고마키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동메달 결정전에서 태국에 공수에서 모두 압도당하며 세트 스코어 0-3(20-25 19-25 23-25) 셧아웃 패배를 당했다. 이로써 한국 여자배구는 5위에 그친 2022 항저우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아시안게임에서 2연속 메달 실패는 처음이다.
이번 한국 여자배구가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준 행보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용두사미’였다. 조별리그에서 2022 항저우에서 굴욕을 안겨준 베트남을 3-1로 꺾었고, 8강에선 신체조건에서 월등한 카자흐스탄을 3-0 셧아웃으로 꺾으며 준결승에 진출할 때까진 좋았다.
거기까지였다. 지난 21일 준결승에서 아시아 최강 일본에 0-3으로 패했다. ‘배구여제’ 김연경이 태극마크를 달고 뛴 마지막 대회였던 2020 도쿄 올림픽 조별리그에서 일본을 3-2로 이긴 이후 7경기 연속 일본에 단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하는 0-3 셧아웃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동메달 결정전 상대인 태국도 이제는 더이상 한국의 경쟁 상대가 아님이 입증됐다. 아시아선수권에서도 0-3으로 완패를 당한 바 있다. 아시아선수권에서 일본과 중국을 연달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기세를 탔던 태국은 또 한 번 한국을 무릎 꿇렸다.
가장 큰 차이는 경기를 조율하고 운영하는 세터의 역량에서 갈렸다. V리그 아시아쿼터 선수로도 뛰었던 태국의 주전 세터 폰푼은 리시브가 되어 올라온 볼을 외발 이동공격, 속공, 시간차 등 다양한 세트 플레이로 한국 코트를 폭격했다. 반면 V리그 토종 세터 중 최고라 꼽히는 김다인은 양질의 리시브를 제공받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리시브가 잘 올라와도 주로 전위 레프트 퀵오픈, 외발 이동공격 등 공격 루트가 단순했다. 세트 플레이의 세밀함과 질적 차이에서 이날 경기가 갈린 셈이다. 공격 성공률 35%-47%, 블로킹 5-10에서 큰 열세를 보이면서 세트마다 접전 상황에서 차고 나갈 힘이 한국에겐 없았다.
아시아에서도 잘해야 4강권에 머무르게 된 건 예견된 결과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쓴 ‘4강 신화’가 마지막 불꽃이었다. 아니 불세출의 슈퍼스타인 김연경에게만 의존했던 국제경쟁력이 그가 태극마크를 내려놓자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신체조건의 불리함을 디테일로 극복해낸 일본과 탁월한 신체조건을 앞세운 중국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호령하고, 태국이 짜임새 있는 조직력으로 이들을 넘어설 수 있는 전력을 키우는 동안 한국 여자배구는 제자리 걸음은커녕 뒷걸음질쳤다. 아시아 3강인 이들에겐 상대가 되질 못하고,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등도 쉽게 이길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V리그 여자부가 겨울 프로스포츠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선수들의 몸값은 폭등했지만, 경쟁력은 자신들의 몸값의 반에 반도 되지 않는 선수들에게 패배하는 게 당연해져버린 지경에 이르렀다.
V리그에서 지나치게 외인에 의존하는 게 문제라고 하지만, 이제 V리그에서 외인 비중은 더 커질 전망이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최근 이사회를 통해 2027~2028시즌부터 각 구단의 외국인선수 보유를 늘리기로 했다. 여자부는 외국인 선수 1명과 아시아쿼터 선수 2명이 나선다. 왠만한 기량이 아니면 주전으로 뛰는 선수가 더 적어지게 될 것란 얘기다.
차상현 대표팀 감독도 이런 상황을 우려했다. 이날 패배 후 믹스트존에 들어선 차감독은“V리그는 대표팀 선수들이 각 소속 팀에서 외국인 선수들에 밀리는 환경”이라며 “우리 선수들은 이제 소속 팀으로 돌아가는데, 좀 더 많은 공격 기회와 출전기회를 얻어야 성장한다. 이런 환경이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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