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선정 단계부터 접점 못 찾아
靑 김민기 선호에 曺 대법원장 난색
양측 인선 갈등 결국 수면위 표출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을 둘러싼 청와대와 조희대 대법원장의 정면충돌은 올해 초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인선 때부터 누적된 불신과 이견이 결국 표면화한 결과다. 후보 선정 단계부터 청와대와 대법원이 끝내 접점을 찾지 못했고, 조 대법원장이 기존 관행을 깨고 청와대와 합의되지 않은 손 후보자를 서면 제청한 뒤 청와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갈등은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을 둘러싼 헌법기관 간 권한 충돌로 번졌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1월21일 노 전 대법관 후임 후보로 김민기 수원고법 고법판사, 박순영 서울고법 고법판사,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 4명을 추천했다. 청와대는 김 고법판사를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조 대법원장은 이에 난색을 보였고, 양측은 최종 후보를 놓고 장기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김 고법판사는 이재명정부에서 대통령 몫으로 지명된 오영준 헌법재판관의 배우자다.
노 전 대법관이 3월3일 퇴임한 뒤에도 후임 제청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법관 공석이 장기화하자 후보추천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는 방안까지 검토됐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이흥구 대법관의 퇴임 시점까지 다가오면서 두 대법관 후임 인선을 동시에 풀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결국 조 대법원장은 지난달 18일 손 부장판사를 노 전 대법관 후임으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동시에 제청했다. 김 후보자에 대해서는 청와대와 의견이 모였지만 손 후보자는 최종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조 대법원장은 통상 대통령과 조율한 뒤 직접 후보자를 제청해온 관행과 달리 손 후보자를 서면으로 제청했다. 장기간 물밑에서 이어지던 양측의 인선 갈등이 이때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났다.
청와대는 열흘 뒤 손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조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구했다. “실질적 협의 없는 일방적 서면 제청”은 절차적 완결성이 부족하고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통령의 실질적 임명권을 무력화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반면 김성수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은 국회에 제출해 두 후보자의 인선 절차를 분리했다.
조 대법원장은 재제청 요구를 받은 뒤 공개 답변을 미뤄왔지만 22일 “재제청 요청을 정당화할 구체적인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다”며 “응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전날 이 대통령과 김성수 대법관 임명식 뒤 차담까지 했지만 양측은 끝내 접점을 찾지 못했다. 후보자를 둘러싼 인사 협의 문제가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 가운데 어디까지 상대방이 관여할 수 있느냐는 헌법적 권한 다툼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번 충돌의 밑바닥에는 이 대통령과 여권, 조 대법원장 사이에 쌓여온 정치적 불신도 자리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5월1일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민주당은 당시 판결의 속도와 내용을 강하게 비판하며 조 대법원장 책임론을 제기했고, 이후 사법개혁 입법과 대법원장의 국회 출석 문제 등을 놓고도 충돌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손 후보자 서면 제청과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가 맞부딪치며 잠복해 있던 불신까지 다시 전면화했다. 조 대법원장이 재제청을 공식 거부하면서 노 전 대법관 후임 인선은 다시 출구를 찾기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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