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세계는 중동 전쟁과 갈등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3월 미국 주도의 이라크전쟁이 발발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는 제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로 유혈 충돌이 이어지고 있었다. 국제사회가 ‘중동평화 로드맵’을 내놓으며 해법을 모색하던 그해 12월 22일, 예루살렘에 세계 각국의 종교인들이 모였다.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추진한 중동평화프로젝트(MEPI)의 일환으로 열린 이스라엘 평화대행진이었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지도자를 비롯해 정치인과 시민, 세계 84개국에서 온 참가자 등 약 2만 명이 함께했다.
왜 예루살렘이었나
서로 다른 종교인들이 한자리에서 평화를 외쳤다고 중동의 오랜 갈등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는 없다. 그러나 이날의 행진에는 종교가 갈등의 한 원인이 되어왔다면, 이제 그 갈등을 치유하는 일에도 앞장서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가 모두 중요하게 여기는 성지를 품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영토와 국가, 난민과 안보, 민족 정체성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단순한 종교분쟁으로 볼 수 없지만, 종교적 전통과 성지 문제 역시 갈등의 한 축이었다.
문 총재는 협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지만 오랜 세월 쌓인 불신과 증오까지 정치적 합의만으로 없애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서로의 신앙과 고통을 이해할 때 정치적 평화를 뒷받침하는 마음의 평화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2003년 들어 중동평화프로젝트가 본격화됐다. 그 해 2월 말 미국 워싱턴에서 중동평화를 위한 국제협의가 열렸고, 5월에는 미국의 기독교 성직자들이 예루살렘을 찾아 유대교 지도자들과 마주 앉았다. 5월 18일에는 기독교와 유대교 지도자들이 과거의 반목과 상처를 돌아보고 화해를 다짐하는 ‘예루살렘 선언’을 채택했다. 이후 9월에는 북미지역 참가자 122명이 예루살렘과 서안지구, 가자지구를 찾았고, 10월에도 평화사절단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을 방문했다. 마침내 12월 예루살렘 평화대행진으로 종교 간 화해운동은 절정에 이르렀다.
평화운동, 세계로 이어지다
평화대행진 이후에도 중동평화프로젝트는 계속됐다. 2004년 5월에는 세계 41개국 526명의 여성 지도자들이 참여한 ‘Women of Peace’ 평화사절단이 이스라엘과 서안지구, 가자지구를 찾았다. 7월에는 중남미와 카리브 지역 33개국 307명, 8월에는 오세아니아와 아프리카 34개국 300명이 잇따라 참여했다. 이후에도 평화사절단과 종교 간 회의, 청년활동과 봉사·문화교류 등이 이어지며 종교지도자 중심의 운동이 여성과 청년, 시민사회로 확대됐다.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추진한 중동평화운동은 정부 간 협상을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정치와 외교가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종교와 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평화의 출발점을 가정에서 찾다
종교평화운동은 중동에만 머물지 않았다.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세계평화의 가장 작은 단위를 가정에서 찾았다. 2003년 미국에서 진행된 초종교·초교파 성직자 축복결혼식도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에 있었다. 서로 다른 교단과 인종적 배경을 가진 성직자 부부들이 한자리에 모여 부부의 사랑과 가정의 평화, 성직자의 도덕적 책임을 다짐했다. 성직자가 사랑과 용서를 가르치기에 앞서 자신의 가정에서 이를 실천하고, 평화 역시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중동평화프로젝트와 성직자 축복운동은 방식은 달랐지만, 자신부터 화해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같은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다.
종교는 평화의 중재자가 될 수 있는가
종교가 현실의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간단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 중동에서는 국제사회의 수많은 중재에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교파와 종교의 벽을 넘어온 종교평화운동은 2000년대 들어 분쟁의 현장으로 들어갔다. 회의장에서 서로의 종교를 이해하는 데 머물지 않고 예루살렘의 거리에서 함께 걸었다. 종교 간 ‘대화’가 종교 간 ‘행동’으로 옮겨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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