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장률은 2024년 기준 94%에 이른다. 사망자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이 화장을 선택하는 시대다. 국토교통부의 지난해 지적통계에 따르면 지목이 묘지로 분류된 토지는 283.3㎢에 달한다. 서울시 전체 면적의 46.8%로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지목상 공원 341.6㎢, 학교용지 317.0㎢와 비교해도 적지 않은 규모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성묘와 묘제 등 조상 묘소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고민을 소장 기록자료와 오늘날 안동 종가의 사례를 통해 짚어봤다.
◆남은 묘소는 누가 관리하나
최근 화장을 선택하는 가정이 크게 늘었지만 조부모와 그 윗대 조상의 묘소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장묘 방식을 선택하더라도 이미 조성된 묘소를 누가 어디까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는 문제다.
특히 가족 규모가 작아지고 후손이 도시로 이동하면서 벌초와 성묘를 위해 여러 묘소를 찾아다니는 일이 과거보다 어려워졌다. 고령의 후손에게 산길을 오르내리는 일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흥미로운 점은 ‘묘제를 반드시 묘소에서 지내야 하는가’라는 고민이 오늘날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퇴계가 답한 ‘묘제는 꼭 묘소에서 지내야 하나’
퇴계선생언행록에 따르면 퇴계 이황에게 제자 김부륜이 “성묘할 때 여러 묘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려고 하면 오르내리느라 지쳐 정성과 공경이 해이해질까 염려되고 제물도 새것과 이미 올린 것이 섞이게 될까 걱정입니다”라며 재실에서 지방을 써서 함께 제사 지내는 것은 어떠냐고 묻자 퇴계는 “무방하다”고 답했다.
이어 정결한 곳에 제단을 마련해 함께 제사를 지내는 것은 어떠냐는 질문에는 “더욱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퇴계는 “지금 사람들은 묘제를 지낼 때 반드시 묘소에 가지만 이는 원래의 예법이 아니다”면서 “옛사람들은 정성이 깃든 곳에 신이 내린다고 여겼다”고 했다. 묘제를 반드시 묘소에서 지내야 하는지를 둘러싼 고민이 500여년 전에도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늘날 경북 안동의 종가에서도 묘제를 지내는 공간을 달리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안동김씨 보백당종가에서는 20여년 전부터 산에 흩어진 묘소를 일일이 찾아가는 대신 재실에서 여러 조상을 함께 모셔 묘제를 지내고 있다.
진성이씨 퇴계종가에서도 종택 제청에서 위패를 모시고 합동으로 묘제를 지낸다. 퇴계의 조부인 노송정종가에서도 10여년 전부터 종택 제청에서 묘제를 올리고 있다.
◆합동 묘제에서 자연 환원까지
이들 종가처럼 젊은 후손들의 참여가 줄고 고령의 제관이 산길을 오르내리기도 힘들어지면서 묘제를 지내는 공간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진성이씨 주촌종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묘소 관리 방식의 새로운 사례를 보여준다.
주촌종가에서는 2016년 종택 뒤편에 추모제단을 마련해 여러 조상의 묘제를 함께 지내고 있으며, 현재 50여 위를 모시고 있다. 묘소를 일일이 찾아가야 하는 부담을 덜고 산을 오르내려야 하는 어려움도 해결한 셈이다.
종손 이세준씨는 고조부까지는 벌초를 이어가되 그 윗대의 묘소는 벌초하지 않고 자연으로 돌려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벌초를 하지 않고 무덤이 서서히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후손들에게 좋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한다. 기존 묘소를 파묘해 봉안시설로 옮기는 대신 묘소를 그대로 두고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묘제를 묘소에서 지내야 할지, 묘소를 남겨야 한다면 어디까지 관리해야 할지 그 실마리는 퇴계의 기록과 안동 지역 종가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면서 “올해 추석에는 조상의 묘소를 찾아 성묘하는 것과 함께 남아 있는 묘소를 앞으로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도 가족과 함께 생각해 볼 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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