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과 닮은 비극 또 되풀이
지원 체계 전반 이주여성 중심
유학생 임신·출산 사각지대 여전
상담 가능해도 지원 연계 어려워
베이비박스 찾는 외국인 더 늘어
입양·일시보호 등 선택지는 전무
“구성원으로서의 정책 지원 시급”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506호 피고인석에서 옥색 수감복을 입은 응우옌 짱(가명·21)은 차오르는 울음을 참듯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짱은 아동학대살해(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3월10일 처음 법정에 섰다.
그는 지난해 12월14일 오후 1시30분쯤 서울 동국대 유학생 기숙사 여자화장실에서 홀로 아기를 낳았다. 1년여 동안 준비한 한국 유학 3일째 아침이었다. 짱은 복통을 느꼈지만 ‘환경과 음식이 바뀌어 배가 아픈 줄 알았다’고 했다. 2시간여 뒤 아기가 나온 화장실 용변 칸 바닥과 벽에는 혈흔이 어지럽게 남았다.
짱이 도움을 청한 건 또 다른 외국인 유학생 동료였다.
베트남 유학생 응우옌 타오(가명·19)는 피고인석에 서서 “아기를 병원에 데려가려 했는데 언니가 두세 걸음을 걷다 힘이 없어서 갈 수 없었다”며 “(산모가) 아기 아빠에게 아기를 전달하기 위해 바깥에 놔달라고 부탁해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패딩에 감싼 아기를 종이 가방에 넣어 기숙사 밖 주차장에 뒀다. 영하의 날씨에 아기는 4시간여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타오는 작은 목소리로 “아기를 낳으며 피투성이가 된 짱의 뒤처리를 한 뒤 ‘병원을 찾았냐’, ‘아기는 병원으로 이송됐나’를 물었다”며 “짱을 구급차에 태워 보낸 후에야 아기가 병원에 가지 못한 사실을 알게 돼 한국인 교직원과 함께 아기를 확인하러 갔다”고 말했다.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112나 119에 신고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고 했다.
◆10년 전에도… 되풀이된 비극
이들은 한국어로 소통이 어려워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타오는 “한국어를 하지 못해 어떻게 부탁해야 할지 몰랐다”며 기숙사 1층 사무실에 방문한 건 입소 때 이불과 베개를 받으러 갔을 때뿐이었다고 했다. 이어 “구속된 산모를 대신해 아기 장례를 치르며 자책을 많이 했다”며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을 마쳤다.
짱이 누구에게도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은 점은 ‘아이를 살해할 미필적 고의’로 여겨졌다.
검사는 “피고인이 적극적으로 출산 사실을 숨겼고, 거짓말까지 해서 피해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 역시 “영아를 죽이려는 확정적 고의는 없었다고 보이나, 본인의 유학 생활을 위해 ‘영아가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은 있었다고 보인다”며 책임을 물었다. 아동학대살해 혐의로 짱에게는 징역 10년이, 타오에게는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10년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2016년 4월 베트남 국적 여성 2명이 영아유기치사 및 시체유기 혐의로 검거됐다. 당시 어학연수를 위해 한국 대학에 입학한 산모는 유학에 ‘불이익을 받을까’ 임신 사실을 숨겼고, 예정일보다 일찍 출산하면서 기숙사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았으나 3시간 만에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산모와 함께 기숙사에 있던 동갑내기 친구는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역 지하상가 출입구 계단에 숨진 아기를 담은 봉투를 버렸다.
10년 새 위기임산부 지원 제도는 생겼지만 외국인 유학생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민경 변호사는 “언어도 안 되고 외국인 유학생이라는 불안정한 상황에 부닥쳐 있던 산모에게 출산 직후 보호자 지위가 생긴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영아살해죄 폐지 당시 제기됐던 우려가 현실화한 사건”이라고 했다. 분만 직후 산모의 심리·신체적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아동학대에 따른 결과라고 본다면 과도한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 변호사는 “위기 임산부에 도움을 주는 체계는 모자보건법에 따르고 있어 외국인은 결혼 이민자까지만 포함된다”고 짚었다.
◆보호출산제 밖에 놓인 외국인
전문가들은 외국인 유학생 정책에 빈틈이 많다고 진단한다.
김도혜 덕성여대 문화인류학 교수는 “외국인 정책은 다문화 가족 중심의 결혼 이주 여성과 외국인 노동자라는 두 갈래뿐”이라며 “유학생들은 공부만 하러 온 게 아니라 일도 하고 연애도 하는 사람인데 이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변수가 정책에 고려되지 않는다”고 했다.
학교 측에서 인지하고 임신·출산 때 대처 방법을 안내했더라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전 변호사는 “임신을 중지하거나 아기를 입양 보낼 수 있는 제도가 하나도 없는데, 아이가 출산했으니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가 부여된 것”이라며 “드러나지 않은 외국인 미혼모 사례는 더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위기임신 보호출산제가 2024년 7월 시행되면서 사회적 안전망은 두꺼워지고 있지만 외국인은 여전히 제도 바깥에 있다.
보호출산제는 임산부가 의료기관에서 신원을 밝히지 않고 출산할 수 있게 보장하는 제도다. 보건복지부는 이 제도로 유기 아동 수가 줄고 있다고 홍보한다. 실제 2023년 88명이었던 유기아동 수는 2024년 30명, 지난해 19명이었다. 2년간 보호출산제로 전국 17개 지역상담기관에서 상담받은 인원은 총 764명, 보호출산을 신청한 임산부는 266명이다.
266명 중 외국인 임산부는 0명이다. 외국인도 상담은 가능하지만 병원 진료·출산과 원가정 양육을 위한 지원 체계로의 편입이 어려워 제도 대상에서는 제외된다.
이 때문에 베이비박스를 찾는 외국인은 오히려 늘었다.
베이비박스를 운영 중인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 따르면 보호출산제 도입(2024년 7월)을 기준으로 외국인 사례는 보호출산 이전 3개년 동안 7명이었지만 제도 시행 뒤에는 올해 6월까지 12명으로 늘었다. 외국인 중 유학생도 1명에서 4명으로 증가했다. 류은민 주사랑공동체 팀장은 “외국인 산모에게 입양이나 일시 보호 시스템 등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며 “대사관을 통해 출생 등록을 해야 하는데 이게 불가능한 여성에겐 보호출산이나 입양 등 어떠한 대안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관련기사> [심층기획-외국인유학 30만 시대의 그늘]
<1회> 캠퍼스의 두 얼굴
① [단독] 캠퍼스 대신 일터로… 불법취업 범칙금 50% 급증 [심층기획-외국인유학 30만 시대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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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주1회 수업·일할 시간 보장”… 대학이 취업통로 자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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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유학생 수 전국 1위 경산… 주민들 “밤길 무서워요”
https://www.segye.com/newsView/20260920509641
④ 기댈 곳 없는 한국살이… 보호출산제 ‘있으나 마나’
https://www.segye.com/newsView/20260920509686
⑤ [단독] ‘사기’ 범죄 내몰린 유학생들… 피해 당해도 신고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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