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 시절인 2024년 9월30일 당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정부세종청사를 찾아갔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현 재정경제부) 장관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현직 한은 총재의 기재부 방문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그간 한은 총재들은 정부 부처를 드나드는 일을 삼갔다. 두 사람의 회동은 마침 한은의 통화 정책 결정을 열흘가량 앞둔 시점이라 금리에 관한 논의가 있었는지에 언론의 이목이 쏠렸다. 금리 인하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최 부총리는 “(한은의) 고유 영역”이라며 언급을 회피했다.
한국은행법 제3조는 “한국은행의 통화 신용 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도록 하여야 하며, 한국은행의 자주성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데 한은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 같은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문이다. 당장 경제 부처 고위 관료를 지낸 인사들이 ‘낙하산’처럼 한은 총재로 보내진 사례가 많았다.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 조순(2022년 별세) 전 서울대 명예교수는 1992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한은 총재로 임명됐다. 하지만 이듬해인 1993년 취임한 김영삼(YS) 대통령은 법률에 정해진 4년 임기도 무시하고 조 총재의 사퇴를 밀어붙였다. 그가 경기 부양에 나서려는 YS정부의 경제 정책에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기 때문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미국의 중앙은행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4년 9월 연준이 기준 금리를 0.5%P 내리는 이른바 ‘빅컷’을 단행했다. 예나 지금이나 금리 인하는 정부·여당에 호재다. 바이든 대통령도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므로 내가 보기엔 경제 전반에 희소식”이라고 반겼다. 다만 ‘미 대선을 앞두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민주당 정권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세간의 의구심이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바이든은 “나는 연준의 독립성을 존중한다”며 “대통령이 된 뒤 연준 의장과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파월은 2018년 4년 임기의 연준 의장에 취임한 뒤 한 차례 연임했다. 공화당의 대선 승리로 2025년 1월 재집권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를 인하하라”는 자신의 당부를 듣지 않는 파월을 눈엣가시로 여겨 그 자리에서 내몰려고 애썼다. 그러나 파월은 트럼프의 전방위 압박에도 소신을 꺾지 않은 채 임기를 끝까지 채웠다. 트럼프가 파월 후임으로 임명한 이가 케빈 워시 현 연준 의장이다. 트럼프로선 워시가 당연히 금리를 내리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연준은 지난 16일 물가 상승 우려를 들어 되레 기준 금리를 0.25%P 인상했다. 이를 두고 미 언론은 워시가 트럼프에게 ‘반기’를 든 것으로, 트럼프가 믿었던 워시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미국이 많이 망가졌다고 하는데, 다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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