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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의 자조가 정치권의 언어로…‘문송’ 넘어 ‘문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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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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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 10여년 전 취업시장의 ‘신조어’로
김승원 “저는 문과다” 논란…비판 쏟아져
최민희·김부겸도 과거 ‘문과 출신’ 언급해

10여년 전 취업시장에 신조어로 등장했던 ‘문송(문과라서 죄송)’이 정치권에서 비슷한 뉘앙스로 다시 소환되고 있다. 이공계에 비해 홀대받는 문과 출신의 아픔을 담았던 취업준비생들의 자조적 표현이었지만, 정치인들이 과학·기술 분야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문과 출신’이라는 점을 함께 꺼내는 모습이 잇따른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9회 국회(정기회)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안경을 벗고 있다. 뉴시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9회 국회(정기회)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안경을 벗고 있다. 뉴시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이 제넨셀의 동물실험 조작 논란 관련 법원 판결을 묻자, “저는 문과다”라며 “치료제에 대한 성능이라든가 그런 것을 제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제넨셀 측으로부터 코로나19 치료제 관련 민원을 전달받은 경위 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치료제 실제 효능이나 실험자료의 진위를 알 수 없었다는 취지로 풀이됐다.

 

이를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는 “문과의 수치”라거나 “문과, 이과의 문제가 아니다” 등 강한 비판이 쏟아졌다. 한 누리꾼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라는 사람의 답변이 ‘문송’이라니”라며 어이없어했다.

 

책임 회피성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김 후보자 측은 “취지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문과’ 표현만 부각한 언론 보도라면서다. 후보자 측은 “의약품 효능과 제출 자료의 진위는 전문기관인 식약처가 판단할 사안”이라며 “후보자가 기업 내부의 실험자료 조작 사실을 알 수 없었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김 후보자도 “앞서 ‘문과’라고 말씀드린 것은 결코 책임을 회피하려는 취지가 아니다”라며 “해당 분야 전문성이 부족해 내용을 더욱 신중하게 살펴보지 못했다는 뜻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유를 불문하고 미흡한 표현으로 오해를 드린 점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2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제1차 KB굿잡 우수기업 취업박람회’에서 한 취업준비생이 채용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지난 4월2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제1차 KB굿잡 우수기업 취업박람회’에서 한 취업준비생이 채용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문과 출신을 앞세우는 발언이 정치권에서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최민희 당시 과방위원장이 딸의 국회 결혼식 논란을 해명하면서 “문과 출신인 제가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거의 밤에 잠을 못 잘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매일매일 양자역학 공부하고 내성 암호 공부하고, 암호 통신을 거의 외우다시피 한다”며 딸의 결혼식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도 ‘문송’ 표현을 사용한 적 있다. 김 전 총리는 2021년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10주년 기념식에서 “제가 사실 ‘문송하다’”며 “제가 문과라서 벤처생태계, 스타트업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자체가 과거에 많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문과 출신 배경을 벤처·스타트업 분야 이해 부족으로 연결하고 스스로 돌아본 것으로 해석됐다.

 

이처럼 전문 분야 이해 부족을 설명하거나 해당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과거의 부족한 이해를 돌아보는 말까지 정치인들의 문과 언급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쓰였다. 하지만 해당 표현의 출발점에는 이공계에 밀려 취업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청년들의 좌절과 자조가 있다.

 

지난 4월2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제1차 KB굿잡 우수기업 취업박람회’에서 한 취업준비생이 채용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지난 4월2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제1차 KB굿잡 우수기업 취업박람회’에서 한 취업준비생이 채용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앞서 2015년 취업시장에서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뜻의 ‘문송합니다’가 취업준비생들이 겪는 현실을 담은 신조어로 등장했다. 잡코리아 등 각종 취업 포털도 얼어붙은 채용 시장에서 취업준비생의 마음을 담은 새로운 표현들이 쏟아졌다며 ‘문송’을 비롯해 ‘광탈(빛의 속도로 탈락)’, ‘인구론(인문계의 90%가 논다)’ 등 단어를 소개했다.

 

이후에도 ‘문송’은 인문계 취업난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남았고, ‘인문계라 죄송하다’는 자조는 취업시장에 놓인 청년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말로 이어졌다. 취업시장에서 느낀 청년들의 자조를 정치권이 전문 분야 이해와 한계 등을 설명하는 표현으로 확장해 쓰는 셈이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16일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문과 출신이라 전문적인 내용을 몰랐다면 더 신중했어야 한다”며, “몰랐다는 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고 김 후보자를 겨냥했다. 김 후보자가 ‘문송합니다’식 해명 뒤에 숨지 말아야 한다면서, 그는 관련 의혹을 김 후보자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후보직에서 물러나는 게 마땅하다고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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