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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사르트르의 철학을 야구에 접목한 ‘마운드의 철학자‘ 임찬규, 트윈스 유니폼 입고 100승 올린 최초의 남자가 됐다 [남정훈의 비욘드 더 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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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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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훈 기자]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가 제시한 실존주의 핵심 명제다. 인간은 미리 정해진 목적이나 본질 없이 먼저 실존한 뒤에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다.

 

스포츠 기사에 갑자기 왠 뜬금없는 실존주의 철학의 명제가 나오냐고? 1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과의 원정경기에서 7이닝 7피안타 6탈삼진 4실점(4자책) 호투로 LG의 13-5 대승을 이끈 임찬규가 경기 뒤 방송사(KBSN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꺼냈기 때문이다.

 

1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6 신한은행 SOL KBO리그'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LG 선발 임찬규가 역투하고 있다. 뉴스1
1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6 신한은행 SOL KBO리그'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LG 선발 임찬규가 역투하고 있다. 뉴스1

이날 승리투수가 되며 시즌 14승(5패)째를 신고한 임찬규는 KBO역대 34번째로 개인 통산 100승 고지를 밟았다. 2011년 1라운드 순위로 LG 유니폼을 입은 이후 16시즌이 지나서 쌓은 대위업이다.

 

임찬규의 100승은 개인에게는 물론 LG라는 팀에게도 큰 의미를 지닌 기록이다. 프로 출범 원년인 1982년부터 1989년까지는 MBC 청룡으로 프로야구에 참가하던 팀이 1990년에 LG 트윈스로 이름을 바꿨다. LG 트윈스 이름으로만 100승을 따낸 건 임찬규가 처음이다. LG 역사상 최다승(126승)을 보유한 ‘노송’ 김용수는 MBC 소속으로 27승, LG 소속으로 99승을 따냈다. LG 역대 2위인 정삼흠(통산 106승) 역시 MBC 소속으로 26승, LG 소속으로 80승을 따낸 바 있다. LG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고 가장 많은 승수를 올린 선수는 임찬규인 셈이다.

 

임찬규는 시속 150km가 넘는 공이 흔해진 ‘구속 혁명 시대’를 역행하는 선수다. 규정이닝을 채운 19명의 투수 중 포심을 아예 던지지 않는 최민석(두산)을 빼고, 사이드암인 고영표(135.5km)를 빼면 임찬규의 포심 평균 구속은 140.6km로 전체 17위다. 정통파+스리쿼터 투수를 통틀면 꼴찌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임찬규가 14승으로 다승 공동 선두에 올라있고, 4.19라는 수준급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할 수 있는 건, 그가 끊임없는 공부를 통해 자신의 느린 포심을 보완할 수 있는 피칭 디자인과 구종 연구, 코스 연구를 하기 때문이다.

 

1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6 신한 SOL뱅크 KBO리그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1회말 LG 선발 임찬규가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6 신한 SOL뱅크 KBO리그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1회말 LG 선발 임찬규가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도 임찬규는 방송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최형우, 디아즈 등 삼성의 좌타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주무기 중 하나인 커브를 바깥쪽 높은 코스에 던지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밝혔다. 이날 임찬규의 7이닝 4실점 피칭이 더욱 빛났던 건 직전 등판이었던 지난 6일 삼성전에서 5.1이닝 7실점으로 크게 무너진 뒤 낙담하지 않고, 자신이 보유한 구종과 코스 연구를 통해 이겨냈기 때문이었다.

 

임찬규는 ‘LG 입단 당시 세웠던 목표들이 있지 않느냐’는 장성호 해설위원의 질문에 “입단 때는 LG의 레전드가 되자, 다승왕이 되자, 100승 투수가 되자 등의 목표를 세우긴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느낀 게 있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제가 어떤 기록을 향해, 결과물을 위해 마운드에 서는 게 아니라 타자와의 승부에서 무엇을 던질 것인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오늘도 승리를 위해 마운드에 선 게 아니라 타자들과 어떻게 승부하고, 어떤 공을 던질지가 더 중요해서 그 부분에 집중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타자들과의 승부에 집중해야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이에 장 위원화 이호근 캐스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1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6 신한은행 SOL KBO리그'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13대 5 승리를 거둔 LG 선수들이 시즌 14승과 통산 100승을 달성한 임찬규에 물과 케이크 등을 쏟아부으며 축하하고 있다. 뉴스1
1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6 신한은행 SOL KBO리그'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13대 5 승리를 거둔 LG 선수들이 시즌 14승과 통산 100승을 달성한 임찬규에 물과 케이크 등을 쏟아부으며 축하하고 있다. 뉴스1

임찬규의 100승은 완벽한 수미쌍관 구조였다. 데뷔 시즌인 2011년 5월 6일, 대구 시민야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이었던 김광삼(현 LG 투수코치)를 구원해 마운드에 선 임찬규는 4이닝 1피안타 1실점으로 호투하며 데뷔 첫 승을 거뒀다.

 

그로부터 5609일이 지난 13일, 시민야구장은 아니지만,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7이닝 7피안타 4실점의 호투로 100승을 쌓았다. 선발승으로 89승, 구원승으로 11승이었다.

 

1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6 신한 SOL뱅크 KBO리그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LG 선발 임찬규가 100승 달성 기념 세리머니를 하고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6 신한 SOL뱅크 KBO리그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LG 선발 임찬규가 100승 달성 기념 세리머니를 하고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100승에 대해 임찬규는 “100승을 찍으면 굉장히 좋을 것 같았는데, 당장 다음주에 한화와의 경기에 등판해야 한다. 준비를 해야한다.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그래도 1승과 100승을 대구에서 한 건 기분 좋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한 팀에 오래 남아서 공이 빠르진 않아도 이런 피칭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후배나 아마추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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