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AG 금메달 이어 세계랭킹 1위까지…한국 클라이밍 간판
젊은 선수들에 밀리는 변화 속 피지컬 강점은 여전
선수 생활의 다음 목표는 LA 올림픽…“‘유종의 미’ 거두고 싶어”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스포츠클라이밍 남자 콤바인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던 천종원(노스페이스)은 누구보다 빠르게 정상으로 향했다. 세계랭킹 1위까지 찍으며 한국 클라이밍의 간판으로 떠올랐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그가 달려온 길을 설명하는 가장 선명한 결과였다.
8년이 흘렀다. 천종원은 이제 대표팀에서 가장 오래된 이름 중 하나가 됐다. 한때 자신이 길을 닦았던 무대에는 새로운 선수들이 등장했고, 그가 처음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던 때와는 경쟁의 무게도 달라졌다. 정상에 서는 것만 바라보고 벽을 올려다보던 선수는 이제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며 다시 벽 앞에 선다.
19일 개막하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천종원은 다시 정상에 도전한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벽 앞에서 확인하려는 것은 메달의 색깔만이 아니다. 오랜 시간 세계 무대를 누빈 자신의 현재를 스스로 증명하는 일이다.
천종원은 13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금메달도 물론 좋지만, 지금은 아직 제가 경쟁력 있는 선수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가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는 지점은 경기 결과를 대하는 태도다. 2018년에는 성적에 대한 부담이 컸지만, 이제는 결과에 흔들리기보다 자신이 해야 할 경기에 집중한다. 천종원은 “당시에는 부담감 때문에 경기 결과에 많이 매몰됐던 것 같다”며 “지금은 조금 더 멘털적으로 성숙해졌고, 경기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경기장에서 요구되는 능력도 달라졌다. 천종원은 2~3년 전부터 변화가 두드러졌다고 했다. 문제 스타일이 한층 역동적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움직임에 빠르게 적응하는 능력이 중요해졌고, 젊은 선수들이 이 변화에 강점을 보인다고 평가했다. 반면 오랜 훈련으로 다져온 피지컬은 여전히 자신의 강점으로 봤다. “제가 전성기였을 때와 비교하면 문제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고, 그런 부분에서는 젊은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저보다 앞서 있다고 느낀다”면서도 “제가 강점으로 가지고 있는 피지컬적인 부분에서는 아직 제가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나이에 따른 변화는 경기 운영에도 나타났다. 30대에 접어들면서 회복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체감한 그는 한 문제에 무리하게 힘을 쏟기보다 주어진 시도 안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내는 쪽으로 훈련과 경기 방식을 바꿨다. 천종원은 “경기 중 한 문제당 3번 이상의 시도를 잘 하지 않게 됐다”며 “대신 더 높은 집중력을 가지고, 3번의 시도 안에 제 힘을 최대한 끌어내는 방향으로 경기 운영을 하고 있다”고 했다.
몸의 변화에 맞춰 경기 방식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마음의 변화도 컸다. 천종원은 최근 2~3년 동안 은퇴를 고민한 적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모든 선수에게 우승은 중요한 목표지만, 예전처럼 다시 정상에 오를 수 있을지 자신하기 어려워지면서 앞으로 무엇을 위해 선수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지 스스로 묻게 됐다.
생각을 바꾼 계기는 훈련장에서 만난 후배들이었다. 자신이 쌓아온 경험을 통해 어린 선수들이 배우고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선수로서 자신에게 아직 역할이 남아 있다고 느꼈다. 그는 “저를 통해 어린 선수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더 이끌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됐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각별한 후배가 이도현(노스페이스)이다. 어린 시절부터 천종원과 볼더링 훈련 파트너로 함께했던 이도현은 이제 세계선수권 정상에 올랐다. 자신과 함께 벽을 오르던 후배가 세계 정상에 선 모습을 지켜본 천종원은 “대견하고 뿌듯하다”고 했다.
한국 클라이밍의 미래에 대해서는 특정 선수의 활약보다 저변을 넓히는 일이 중요하다고 봤다. 이도현과 서채현(노스페이스)의 뒤를 이어 국제무대에서 경쟁할 선수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천종원은 “이도현, 서채현 선수를 이어 더 많은 어린 선수들이 나와야 한다”며 “결국 선수층이 두터워져야 한국 클라이밍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선수 생활을 통해 남기고 싶은 것도 기록보다 다음 세대였다. 후배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 선배로 기억되고, 자신에게서 배운 선수들이 또 다른 후배들을 이끌며 경험을 이어가기를 바랐다.
가장 아쉬운 순간으로는 도쿄올림픽을 꼽았다. 2018년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맞은 큰 무대였지만,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체중을 지나치게 감량한 것이 경기력에 악영향을 줬다고 돌아봤다. 실제 경기를 치르면서 준비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천종원의 시선은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을 향한다. 다시 아시안게임 무대에 선 그에게 LA는 선수 생활의 다음 장을 여는 무대다.
나고야에서 천종원이 오르는 벽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과 지금의 기량을 마지막까지 벽 앞에서 증명하는 과정이다.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선수 생활의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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