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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비누, ‘폼(foam)’ 미쳤다…독산역 화장실 조각상의 정체 [유희태 기자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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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태 기자 joyk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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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역 세면대에 거품 이는 다비드가 있었다

닳아야 완성되는 다비드 비누
손 씻을수록 조각이 되는 전시
독산역 등 화장실 4곳, 1년 여정
물건은 말이 없다. 대신 흔적이 말한다. 게중 엉뚱한 자리에 있는 물건은 눈길을 붙잡는다. 왜 이것이 여기 있을까. 그 자리에 앉아 오래 바라보고, 쥐어 보고, 냄새도 맡아 본다. 그래도 모르는 것은 내력을 아는 사람을 찾아 묻고 듣는다. 물건 뒤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연이 있다. 그 사연 속에 우리 시대의 모습이 있다. 사건에 가려 보이지 않던 풍경을 줍는다. 거기, 그것이 있었다.

 

11일 서울 금천구 대동몰드 화장실에 ‘화장실 프로젝트(Toilet Project): 익명의 손들, 유물이 된 일상’에 참여한 신미경 작가의 비누 조각상이 전시돼 있다.
11일 서울 금천구 대동몰드 화장실에 ‘화장실 프로젝트(Toilet Project): 익명의 손들, 유물이 된 일상’에 참여한 신미경 작가의 비누 조각상이 전시돼 있다.

 

정말인지 코를 갖다 댔다. 눈의 초점이 흐려질 정도로 다가가자 그제야 비누 냄새가 났다.

 

11일 서울 지하철 1호선 독산역 화장실. 세명대 한가운데에 형광빛 도는 초록색 두상이 놓여 있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우묵한 눈두덩과 콧대, 다문 입, 이마를 덮은 곱슬머리까지 얼굴을 그대로 본떴다. 곱슬머리 골 사이사이에는 흰 거품이 끼어 있었다. 아직 거품이 채 꺼지지도 않았다. 조금 전까지 누군가 이 머리를 문지르고 갔다는 흔적이다.

 

볼일을 마친 시민들은 세면대 앞에서 멈칫했다. 두상을 잠시 살피던 이들은 안내문을 본 뒤 이내 손을 뻗어 거품을 냈다. 얼핏 보면 장식용 조각상 같지만, 손을 씻는 데 쓰는 비누다.

 

이 비누는 지난 9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서울 1호선 독산역 화장실 근황’이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화제가 됐다. 어디부터 거품을 내야 하느냐는 반응과 함께, 전시 기간 작품이 온전히 남겠느냐는 우려도 나왔다.

 

11일 서울 금천구 지하철 1호선 독산역 화장실에서 한 시민이 비누 조각상을 이용해 손을 씻고 있다.
11일 서울 금천구 지하철 1호선 독산역 화장실에서 한 시민이 비누 조각상을 이용해 손을 씻고 있다.
11일 서울 금천구 예술공간인아트센터 예술의시간 화장실에 ‘화장실 프로젝트(Toilet Project): 익명의 손들, 유물이 된 일상’에 참여한 신미경 작가의 비누 조각상이 전시돼 있다.
11일 서울 금천구 예술공간인아트센터 예술의시간 화장실에 ‘화장실 프로젝트(Toilet Project): 익명의 손들, 유물이 된 일상’에 참여한 신미경 작가의 비누 조각상이 전시돼 있다.

두상은 신미경 작가의 ‘화장실 프로젝트(Toilet Project): 익명의 손들, 유물이 된 일상’이다. 금천예술공장과 아트센터 예술의시간이 공동 기획했다. 작품은 독산역과 아트센터 예술의시간, 금천뮤지컬센터, 대동몰드&리빙 등 금천구 일대 화장실 4곳에 설치됐다. 이날 기자가 찾은 아트센터 예술의시간과 대동몰드&리빙 화장실에도 비누 조각이 놓여 있었다.

 

신 작가는 2004년 영국의 미술관 화장실에 비누 조각을 설치하며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5년 중국 상하이에서는 공공화장실 5곳에 비누 불상 12점을 놓았고, 국내에서는 경기도미술관과 소마미술관을 거쳐 2018년 광주송정역 화장실에 비누 조각 6점을 설치했다.

 

이번 전시는 서울문화재단이 금천구 일대에서 진행하는 ‘2026 금천미술벨트: 공동의 지형, 이어진 시간’의 일환이다. 금천예술공장을 중심으로 지역에 흩어진 예술공간과 일상 공간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다. 독산역 일원에서는 다른 전시도 진행 중이다. 아트센터 예술의시간은 기획전을 열고 있다. 진도아파트 담장에는 미니어처 조각상이 놓였다.

 

11일 서울 금천구 진도아파트 앞 담장에 공공미술 프로젝트 ‘예술로 잇는 거리’ 관련 미니어처 조각상이 전시돼 있다.
11일 서울 금천구 진도아파트 앞 담장에 공공미술 프로젝트 ‘예술로 잇는 거리’ 관련 미니어처 조각상이 전시돼 있다.
11일 서울 금천구 지하철 1호선 독산역 화장실에 ‘화장실 프로젝트(Toilet Project): 익명의 손들, 유물이 된 일상’에 참여한 신미경 작가의 비누 조각상의 머리카락 부위에 흰 거품이 앉아 있다.
11일 서울 금천구 지하철 1호선 독산역 화장실에 ‘화장실 프로젝트(Toilet Project): 익명의 손들, 유물이 된 일상’에 참여한 신미경 작가의 비누 조각상의 머리카락 부위에 흰 거품이 앉아 있다.
11일 서울 금천구 예술공간인아트센터 예술의시간 화장실에 ‘화장실 프로젝트(Toilet Project): 익명의 손들, 유물이 된 일상’에 참여한 신미경 작가의 비누 조각상이 전시돼 있다.
11일 서울 금천구 예술공간인아트센터 예술의시간 화장실에 ‘화장실 프로젝트(Toilet Project): 익명의 손들, 유물이 된 일상’에 참여한 신미경 작가의 비누 조각상이 전시돼 있다.

전시는 지난 7일 시작해 2027년 8월 31일까지 이어진다. 미술관 유리장 안이라면 ‘만지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붙었을 조각상이다. 여기서는 만져야 작품이 된다. 서울문화재단은 이 작업을 여러 사람의 참여와 경험으로 완성되는 ‘관계 예술’로 설명했다.

 

시민들이 쓸수록 조각은 닳는다. 주최 측은 형태가 변해가는 과정을 1년간 기록한다. 손 씻기라는 가장 일상적인 행위가 조각을 깎는 끌이 된다. 출근길 지하철역 세면대와 아파트 담벼락, 공장 화장실까지 작품이 전시장 문턱을 넘어 일상 한가운데로 침투했다. 다비드의 머리는 오늘도 조금 닳았다. 1년 뒤 이 얼굴이 어떤 모양으로 남을지는 독산동을 오가는 시민들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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