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청(提請)이란 ‘어떤 안건을 제시하며 결정할 것을 청구한다’라는 의미다. 이를 인사(人事) 업무에 적용하면 ‘아무개를 어떤 자리에 기용해 달라’고 인사권자에게 요구하는 행위가 되겠다. 우리 헌법은 국무위원의 임명은 국무총리, 감사원 감사위원의 임명은 감사원장, 대법관의 임명은 대법원장이 각각 제청하도록 명문화했다. 이 가운데 대법원장의 임명 제청권이 특히 중요하다. 국무위원이나 감사위원은 모두 행정부 소속이고 행정부 수반은 다름아닌 대통령이다. 제청권자가 누구이든 결국 대통령 의지대로 인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반면 대법관은 행정부와 별개인 사법부 구성원이다.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제청권자인 대법원장 의중이 그만큼 중요하다.
요즘 이재명 대통령과 조희대 대법원장 간의 갈등 배경에는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 중 무엇이 우선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이 자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조 대법원장이 대법관 임명을 제청한 손봉기 판사에 대해 이례적으로 ‘협의 절차가 부족했다’는 이유를 들어 반려했다. 대법원장의 재(再)제청을 주문한 것인데, 헌정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법원행정처장이 국회에서 한 발언을 들어보면 ‘조 대법원장이 이 대통령과의 대면 협의를 요청했으나 청와대가 일정을 잡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가 서열 1위 대통령이 무척 바쁜 직책이란 점은 잘 알지만, 서열 3위 대법원장과의 만남에 시간을 내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일인지 의문이다.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김명수 판사가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김 후보자에게 “대통령을 상대로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 제청권을 확실히 행사하겠느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특정 후보를 점찍은 뒤 사전 협의 단계에서 ‘이 사람을 제청하라’는 취지의 요구를 한다면 어떻게 대응할지 물은 것이다. 김 후보자는 단호한 어조로 “내 의지를 관철하겠다”며 “대통령이 추천하거나 원하는 인사가 적절하지 않으면 결코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것이 대통령의 임명권보다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먼저 규정한 헌법 104조 2항의 정신에 부합하는 태도일 것이다. 사법부의 대법관은 결코 행정부 국무위원이 아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개각을 단행하며 지명한 장관 후보자들을 둘러싼 자질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6명 가운데 김승원 법무부,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강신철 국방부 장관 후보자 3명이 특히 문제가 심각한 듯하다. 헌법 87조 1항에 따라 한성숙 국무총리가 이들의 임명을 이 대통령에게 제청했을 것이다. 물론 한 총리는 청와대에서 미리 작성한 새 국무위원 후보자들 명단을 나중에 받아본 뒤 이 대통령 면전에서 “이렇게 제청하겠습니다”라고 한마디 하는 데 그쳤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렇다고 ‘인사 참사’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이번 개각에 한 총리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6명 중 누군가 낙마한다면 제청권자인 한 총리도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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