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들 사이에서 흔히 회자되는 이 말은 세종에선 좀처럼 적용하기 어렵다. 정확히 말하면 행정중심복합도시, 이른바 세종 신도시에는 시장이 없다. 물론 세종시 북쪽 조치원읍과 남쪽에는 과거 연기군 금남면 시절부터 자리를 지켜온 대평시장 등이 있긴 하다. 하지만 조치원은 세종시 출범 훨씬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던 구도심이고, 이들 전통시장 역시 신도시의 계획된 흐름과는 다른 오랜 삶의 결을 간직한 곳이다.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설계된 행복도시(정부청사 주변 계획도시)로 범위를 좁히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흔한 재래시장은 물론 5일장이나 3일장처럼 오랜 시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며 만들어진 전통적인 상업공간을 찾아보기 어렵다.
처음 세종에 내려왔을 때 도시의 생활상을 들여다보고 싶어 가장 먼저 시장부터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낯선 도시에 가면 으레 시장부터 찾던 버릇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좌판도, 장바구니를 든 사람들로 뒤엉킨 골목도, “한번 보고 가라”는 상인들의 목소리도 없었다. 대신 반듯한 도로와 정돈된 상가, 깨끗한 보행로가 펼쳐져 있었다. 정갈하고 쾌적했다. 그런데 어딘가 허전했다. 도시의 ‘현재’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공간이 이 도시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쇼핑할 땐 원정 가죠.”
시장만 없는 게 아니다. 웬만한 대도시라면 하나쯤 있을 법한 백화점도 세종에는 없다. 세종의 ‘홍대’이자 ‘강남’ 격으로 불리는 나성동 한복판에는 백화점이 들어설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부지가 수년째 공터로 남아 있다. 정부세종청사 인근에는 AK플라자 등 상업시설이 있지만, 마음먹고 하루 쇼핑을 즐길 만한 대형 백화점이나 스타필드 같은 대규모 복합쇼핑몰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생긴 세종 사람들의 생활 방식 중 하나가 이른바 ‘원정 쇼핑’이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두 딸을 키우는 교사 이모(41)씨는 “아이들 옷을 사야 할 때 가끔 주말에 대전 갤러리아에 간다”며 “차로 30분 정도면 갈 수 있어 아주 부담스럽지는 않지만, 이왕이면 세종 안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무원 부부는 주말이면 가족과 차를 몰고 청주로 간다. 서울에 갈 일이 생기면 필요한 물건을 한꺼번에 사 트렁크를 채워 내려오기도 한다. 백화점이 없는 도시의 빈틈을 주변 도시가 메워주는 셈이다.
“시장 대신 새벽배송”
그런데 세종에서 살다 보니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시장도 없고 백화점도 없는데, 우리는 어떻게 별 탈 없이 살고 있을까. 막상 살아보면 시장과 백화점의 부재가 생각만큼 큰 불편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세종이라는 도시의 독특한 생활 방식이 보인다. 우선 도시가 압도적으로 젊다. 행복청에 따르면 올해 행복도시 주민의 평균연령은 37세다. 전국 평균 46.1세보다 9세 가량 젊다. 이 젊은 도시에서 전통시장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형태의 시장일지 모른다. 바로 스마트폰이다. 쿠팡이나 마켓컬리 같은 온라인∙새벽배송 서비스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많은 만큼 전통적인 시장이 없다는 불편을 다른 방식으로 해결한다.
백화점도 비슷하다. 꼭 필요한 물건은 온라인에서 사고, 직접 보고 사야 할 물건이 있을 때만 대전이나 청주로 나간다. 도시 안에 모든 소비시설을 갖추지 않아도 일상생활이 굴러가는 구조다. 그렇다고 세종에 대형 오프라인 쇼핑공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코스트코가 있다. 주말이면 장을 보러 나온 가족들로 매장이 북적인다. 시장도 백화점도 없는 세종에서 대형 장보기 수요의 상당 부분을 받아내는 곳이다. 2018년 문을 연 세종점이 개장 첫날 전 세계 코스트코 매장 가운데 매출 1위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지역에서 꽤 유명한 이야기다. 주말마다 매장이 미어터지는 모습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종의 한 사무관은 또 다른 답을 내놨다. 그는 “맞벌이 부부가 많고 야근도 잦다보니, 퇴근해서 아이 챙기고 나면 백화점에 가서 몇 시간씩 쇼핑할 여유가 사실 별로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과장은 웃으며 “공무원 월급이 뻔하지 않나”라며 “씀씀이가 아주 크지 않다보니 백화점 쇼핑 수요가 다른 도시보다 많지 않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공무원이 많다고 해서 세종시민 전체의 소비 성향을 하나로 규정할 수는 없다. 다만 직접 살아보니 이 도시에서는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꽤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하나쯤 있었으면…”
그렇다고 주민들이 시장이나 백화점을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세종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백화점이나 대형 복합쇼핑몰 유치를 바라는 글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는 공공기관 추가 이전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인구가 더 늘어난다면 이번에는 대형 쇼핑몰이 들어올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나온다. 하지만 유통업계의 셈법은 주민들의 바람보다 냉정하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나성동 부지를 매입해 진출한다 해도 공무원 중심 도시의 소비 수요가 대형 유통시설을 지속적으로 떠받칠 정도인지 확신하기 어렵다”며 “대전이라는 큰 상권이 가까이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업체 입장에서는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직접 살아보니 시장도, 백화점도 없다는 사실이 생각만큼 큰 불편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물론 가끔은, 아니 자주 매우 아쉽다. 퇴근길 시장에 들러 이것저것 구경하거나, 주말에 별다른 계획 없이 백화점을 어슬렁거리는 재미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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