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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국 쥐어짜 얻은 나치 독일의 ‘풍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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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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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벨기에 등에 점령비 명목 세금 걷어
자국민 복지·참전 군인들 달래기에 몰두
유대인 재산도 몰수… 침대·식기까지 경매
저자 “홀로코스트, 약탈·학살 결합” 지적
안락함 원한 다수 침묵, 독재 가능케 해

히틀러의 복지국가/ 괴츠 알리/ 최준영 옮김/ 생각의힘/ 2만8800원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39년, 독일군 병사 하인리히 뵐은 쾰른의 가족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25마르크라는 엄청난 급여를 대체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얼마 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는 당시 사치품이던 커피를 싼값에 샀다며 가족에게 보냈다.

휴가를 떠나는 독일 병사들이 가족과 지인에게 보낼 선물 꾸러미를 들고 있다.
휴가를 떠나는 독일 병사들이 가족과 지인에게 보낼 선물 꾸러미를 들고 있다.

전쟁터의 독일 병사들이 고향으로 보낸 소포에는 커피와 버터, 초콜릿, 통조림뿐 아니라 향수와 비누, 모피, 시계, 의류, 은식기와 가구까지 들어 있었다. 유럽 곳곳이 폭격과 굶주림, 죽음으로 무너지는 동안 독일 본토의 상당수 시민은 전쟁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 수준을 유지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독일 역사학자 괴츠 알리는 ‘히틀러의 복지국가’에서 나치 독일의 12년 통치를 게슈타포와 친위대의 공포정치, 히틀러를 추종한 광신도, 나치와 결탁한 대기업과 금융계의 책임만으로 설명해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나치 체제가 장기간 사회를 장악할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가 독일 국민에게 제공한 경제적 이익과 복지였다는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

저자가 파고드는 핵심은 복지와 약탈의 연결고리다. 나치는 집권 후 독일인을 하나의 ‘인민 공동체’로 묶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 공동체는 모든 사람을 포괄하지 않았다. 나치가 규정한 인종적 기준에 부합하는 ‘순수한 독일인’만이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히틀러는 사회적 장벽을 없애고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노동자를 포섭하기 위해 고용을 늘리고 사회보장을 강화했으며, 군인과 그 가족에 대한 지원도 확대했다. 전쟁이 시작된 뒤에도 국민에게 지나친 희생을 요구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식량난과 생활고가 독일 사회의 불만을 폭발시켰던 경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으로부터 몰수한 가구들.
나치 독일이 유대인으로부터 몰수한 가구들.

문제는 그 비용이었다. 나치 정권은 전쟁비용을 독일 국민에게만 부담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프랑스와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스, 세르비아, 폴란드 등 점령국에 막대한 점령비용을 부과했다. 독일군의 주둔에 필요한 비용이라는 명목이었지만 실제로는 독일의 전쟁을 떠받치는 중요한 재원이 됐다. 점령지에서 식량과 원자재, 각종 상품을 가져오면서 대금을 즉시 지급하지 않고 국가 간 청산계정에 채무로 기록하는 방식도 활용했다. 독일군이 현지에서 사용하는 돈과 물자의 상당 부분을 점령국의 중앙은행과 정부가 부담하도록 한 것이다. 독일 병사가 프랑스에서 와인을 사고 네덜란드에서 물건을 구입해 가족에게 보내더라도 그 비용이 독일 국민의 세금으로 그대로 청구되는 구조가 아니었다. 유럽의 점령지들이 독일의 전쟁비용을 대신 부담하고 있었던 셈이다.

유대인으로부터 몰수한 생활용품을 분류하는 독일 여성
유대인으로부터 몰수한 생활용품을 분류하는 독일 여성

더 끔찍한 것은 유대인 박해와 경제적 약탈이 긴밀하게 결합됐다는 점이다. 나치는 유대인의 예금과 기업, 주택, 토지, 귀금속을 조직적으로 빼앗았다.

가구와 침대, 옷과 식기 같은 생활용품까지 몰수해 경매에 부쳤다. 몰수한 재산은 국가 재정으로 흘러들었고, 강제노동으로 만들어진 가치 역시 독일 경제를 지탱했다. 유대인 박해와 재산 몰수, 강제노동, 전쟁 재정은 서로 분리된 정책이 아니었다. 인종적 증오와 경제적 약탈이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맞물려 돌아갔다. 저자가 “홀로코스트는 약탈과 학살의 결합이었다”고 표현하는 이유다.

점령지 수탈도 같은 구조였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독일에는 더 많은 식량과 원자재,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독일 국민에게 세금과 희생을 계속 요구하면 정권에 대한 지지가 흔들릴 수 있었다. 그래서 전쟁의 비용을 독일 밖으로 돌렸다. 그 결과 독일 국민은 상대적으로 낮은 부담으로 전쟁을 견딜 수 있었다. 전선의 병사들은 점령지에서 물건을 구입해 가족에게 보냈고, 본토의 가족들은 그것을 받아 사용했다. 공습으로 집을 잃은 사람에게는 몰수된 유대인 재산이 돌아가기도 했다. 저자가 독일군을 ‘총을 든 버터 배달부’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총을 든 군인이 전쟁터에서 약탈한 물자가 독일 국민의 식탁과 생활을 풍요롭게 했다. 총과 복지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돼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복지국가는 지속할 수 없었다. 다른 나라를 점령하고 유대인의 재산을 빼앗으며 전쟁포로와 강제노동자를 착취하고 더 많은 식량과 원자재를 수탈해야만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확대될수록 더 많은 약탈이 필요했고, 약탈이 확대될수록 더 많은 폭력이 뒤따랐다. 결국 독일인의 안락함은 누군가의 고통과 죽음을 대가로 만들어졌다.

괴츠 알리/ 최준영 옮김/ 생각의힘/ 2만8800원
괴츠 알리/ 최준영 옮김/ 생각의힘/ 2만8800원

‘히틀러의 복지국가’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특정 집단의 권리와 재산을 빼앗아 다수에게 나눠주는 정책은 그 혜택을 받는 집단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혜택의 비용을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긴다면 그것은 정의로운 복지와 거리가 멀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나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부당함을 외면하는 태도다. 거대한 범죄는 몇몇 악인의 명령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작은 이익을 받아들이고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때 거대한 시스템은 더욱 단단해진다.

80여년 전 독일의 역사가 오늘날에도 불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국가가 특정 집단을 ‘적’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다수에게 풍요와 안정을 약속할 때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고 강조한다. “누가 이익을 얻는가”뿐 아니라 “그 이익의 대가는 누가 치르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독재는 폭력과 공포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쌓인 안락함과 이익 그리고 그 안락함을 잃지 않기 위해 외면하고 침묵하는 다수가 안타깝게도 독재를 떠받치는 힘이 된다”는 게 책의 핵심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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