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 6월 ‘신효순·심미선양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경기 양주에서 훈련 중이던 주한미군 제2사단 소속 장갑차가 좁은 도로를 지나던 어린 여중생 2명을 치어 숨지게 한 비극이다. 당시 장갑차 운전병이 미군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분노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서울 도심에선 미국 행정부를 규탄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렸다. 이는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약 57만표 차이로 꺾고 당선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여중생 사망으로 고조된 반미(反美) 감정은 해를 넘긴 2003년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노무현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03년 3월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하는 결정을 내렸다. 2001년 뉴욕 9·11 참사를 계기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갖고 있다”며 전쟁을 선포했다. 러시아·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동맹인 독일·프랑스조차 이 같은 주장의 신빙성을 의심하며 지원을 거절했다. 파병 요구를 받은 한국은 난감한 처지가 되었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 수행을 이유로 주한미군 감축을 단행한다면 당장 우리 안보에 위협이 될 뿐더러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다수 국민이 정부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컸다.
미군은 압도적 무력으로 개전 1개월 만에 이라크를 초토화했다. 그러는 사이 노 대통령의 고심은 깊어져만 갔다. 지지층은 이라크 파병 반대 입장이 확고했다. ‘노무현을사랑하는모임’(노사모)의 어느 회원은 “부도덕한 전쟁보다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노무현정부가 학살 전쟁에 동참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한·미 동맹은 너무나도 소중했다. 정부는 결국 국회에 파병 동의안을 제출했고 2003년 4월 초 가결이 이뤄졌다. 실제 파병은 약 1년 뒤인 2004년 2월 시작됐다. 2008년 12월까지 현지에서 활동한 이라크 평화·재건 사단(일명 ‘자이툰 부대’)이 주인공이다.
청와대가 4일 호르무즈 해협 안정을 위한 파병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이란 전쟁의 장기화 속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연일 이재명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압박해 온 만큼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다. 이미 한국의 소극적 태도를 이유로 연례 한·미 연합 훈련을 대폭 축소한 트럼프는 어쩌면 주한미군 철수 카드까지 꺼내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파병 동의안이 국회에 오면 지지하지 않을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침략 전쟁을 부인한다”고 밝혔다. 2003년 노 대통령의 사례에서 보듯 정치 지도자가 지지층이 반대하는 결정을 내리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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