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기득권을 향한 칼끝이 자신을 향할 때…용혜인과 염흥방[김세희의 역사ON]

관련이슈 김세희의 역사ON , 이슈플러스

입력 : 수정 :
김세희 기자 saehee0127@segye.com

인쇄 메일 url 공유 - +

구글 선호 매체 등록

과거는 현재를 관통합니다. 문명은 발전했지만 수천·수백 년 전 벌어진 사건과 문제는 오늘날 다른 모습으로 되풀이됩니다. 특히 사회·정치·경제 분야에서 빚어지는 고질적 병폐는 시대를 달리해 반복되고 있습니다.

 

‘김세희의 역사ON’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삼국사기’ 등 사료에 기록된 사건·인물·제도를 오늘의 현안과 연결해 살펴보고 논평하고자 합니다. 과거를 성찰의 거울로 삼아 오늘의 현실을 이해할 단서를 찾겠습니다.

 

고려 말 염흥방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과거에 장원급제해 관직에 진출했고, 학식도 뛰어나 시문집인 ‘동정집’을 남겼다고 전한다. 

 

관료로서 능력은 돋보였다. 1367년 공민왕의 명으로 성균관 공사의 책임자를 맡았을 때의 일이다. 당시 염흥방은 문신들에게 품계에 따라 베를 내도록 했는데, 이에 대한 호응이 별로 없었다. 그러자 윤상발이라는 가난한 정 7품 관원이 옷을 팔아 베를 낸 사례를 거론하면서 문신들을 질타했고, 열흘 만에 1만 단을 모았다. 덕분에 성균관 공사는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권력의 중심과 충돌해 정치적 보복도 당했다. 1375년 우왕 시기 조정의 실권을 쥔 이인임 세력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정몽주·이숭인 등과 함께 유배형에 처해졌다. 한때 권신에 맞서던 신흥 유신들과 같은 편에 서 있던 셈이다.

 

그러나 관직에 복귀한 뒤 그의 행보는 달라졌다. 과거 자신을 내쳤던 이인임, 임견미 등과 어울리면서 권력형 부정 축재와 청탁, 매관매직, 인사개입 등을 자행했다. 오히려 그가 비판하고 맞섰던 인물들을 자기도 모르게 닮아갔다. 어느 날 그는 이부형 이성림과 고향 집에 갔다가 거리에서 권세가의 종이 백성을 수탈하는 모습을 풍자한 광대놀음을 봤는데, 자신을 풍자하는지도 모르고 재미있게 구경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노비가 토지를 탈점한 사건이 화근이 돼 몰락했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약 640년 뒤, 시민운동가 출신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국무위원 후보자가 됐다. 그의 출발점은 권력의 바깥이었다. 경희대 재학 시절 한진중공업 희망 버스에 참여했고, 알바연대와 알바노조 등에서 활동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에는 사고 당시 선내 안내방송을 비유해 ‘가만히 있으라’ 침묵 행진을 공개 제안하며 이름을 알렸다. 당시 그는 “세월호 참사는 돈이 생명보다 더 중요한 사회이기에 일어났다. 말도 안 되는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이제는 더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했다. 

 

그랬던 용 후보자가 ‘기득권’과 ‘돈’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21·22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주도한 비례연합정당을 통해 연속으로 비례대표에 당선된 그는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후, 의원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당의 유일한 국회의원인 자신이 사퇴하면 기본소득당이 원외 정당이 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원외 정당이 되면 국고보조금 지급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문제는 6년 전 그의 모습이다. 당시 그는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을 ‘기생충’에 빗대며 보조금 폐지를 주장했다. 과거 자신이 문제 삼았던 제도의 혜택을 이제는 지키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배우자를 둘러싼 논란도 겹쳤다. 용 후보자의 배우자는 기본소득당 핵심 당직자로 근무하며 최근 5년간 1억2000여만원의 급여를 받았다. 용 후보자가 2020∼2024년 정치자금 약 3억원을 특별당비로 당에 납부한 사실도 알려졌다. 이를 두고 정치자금이 당을 거쳐 배우자에게 우회적으로 흘러간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돼 경찰 고발로 이어졌다. 이와 별도로 용 후보자가 자신의 근로소득에서 1억9500여만원을 정치자금기부금으로 내고 3600여만원의 근로소득세를 감면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야권에서는 이를 두고 ‘꼼수 절세’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더 뼈아픈 대목은 ‘공적 지위’와 ‘사적 편의’ 사이의 경계를 대하는 태도다. 용 후보자는 의원이 된 후 가족여행에 공항 귀빈실 의전을 받아 논란이 일자 사과했고, 코로나 19 시국에는 ‘아이동반법’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생후 59일 된 아들을 국회에 데리고 왔다가 보좌진이 아이를 안게 되면서 “아기 수발까지 들어야 하느냐”는 불만을 샀다. 당시 출연한 공영방송에서 이를 꼬집자 사과는커녕 “(내 아들은) 너무 귀여운데 동료로서 1시간 정도 봐줄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해 아연실색게 했다. 일·가정 양립을 외치면서 그 비용을 권력관계에 놓인 보좌진에게 떠넘긴다면 모순이다.

 

물론 염흥방의 탐학과 지금 용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같은 성격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염흥방의 이야기가 용 후보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유효하다. 권력 밖에서 기득권을 비판하기는 쉽다. 어려운 것은 권력을 가진 뒤에도 같은 원칙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일이다. 장관직과 의원직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가 설명해야 할 것은 과거에 외쳤던 원칙과 지금의 행보 사이에 벌어진 거리다.


오피니언

포토

한소희 '인형의 등장'
  • 한소희 '인형의 등장'
  • 미야오 안나, '상큼 발랄'
  • [포토] 아이린 '눈부신 등장'
  • 차희 '반가운 손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