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안의 이야기가 극장으로 간 것 자체가 신기한 기적이죠.”
숏드라마 ‘아버지의 집밥’ 극장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배우 정진영(62)은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의 집밥’ 은 당초 극장 상영을 염두에 두지 않고 스마트폰의 세로 화면에 맞춰 만든 숏폼 드라마다. 그런데 제작을 마친 뒤 극장 개봉이 결정됐고, 9일 롯데시네마에서 단독 개봉한다. 이준익 감독과 정진영 모두 처음 도전한 숏드라마가 예상 밖으로 극장의 큰 화면에 걸리게 된 것이다.
4일 서울 성동구 레진엔터테인먼트에서 만난 정진영은 “지금 이 시점에서 대표작을 꼽으라면 ‘아버지의 집밥’이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대표작을 묻는 말에 “모두 내 손가락인데 어떻게 하나를 대느냐”고 말해왔던 그다. ‘왕의 남자’(2005), ‘7번방의 선물’(2013), ‘국제시장’(2014) 등 여러 흥행작에 출연한 배우가 자신의 첫 숏드라마를 대표작으로 꼽은 이유는 무엇일까.
정진영은 “평소에는 내 작품 보는 것을 낯설어한다”며 “내 모습을 왜곡된 거울로 보는 듯한 불편한 느낌이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아버지의 집밥’은 두 번 봤는데도 불편하지 않았다”며 “투명하게 감정이 교류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친구들에게도 ‘사람마다 기호가 각각이지만, 이 작품은 다들 좋아할 거다’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집밥’은 고리타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가족 드라마다. 결혼 40년 차 노부부 하응(정진영)과 순애(이정은)가 중심이다. 평생 가족의 밥상을 책임져온 순애가 교통사고를 당한 뒤 요리하는 법을 잊는 ‘요리백지증’ 진단을 받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평생 부엌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하응이 아내를 대신해 주방에 들어서면서 가족의 역학구도에 지각변동이 찾아온다.
하응은 구두 수선공으로 평생 일하며 두 아들을 길러낸 가장이다. 그저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이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해왔다. 아내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상은 자신이 가족을 위해 일한 대가로 응당 받아야 할 보상이라고 여겼다. 반찬 하나하나를 독한 말로 평가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밥상을 엎기도 했다.
정진영은 하응을 “특별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우리 옆에 있는 뻔한 아버지”라고 소개했다. 그 평범함이 이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게 하는 힘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 작품을 “소박한 가족의 이야기이면서 커다란 감정들이 넘쳐나는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한 끼 밥과 오래된 부부의 관계가 코미디 호흡으로 펼쳐지다 결말에 이르면 어느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준익 감독과 정진영의 만남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달마야 놀자’ 제작자였던 이 감독이 정진영을 캐스팅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이후 정진영은 이 감독이 연출한 ‘황산벌’(2003), ‘왕의 남자’(2005), ‘즐거운 인생’(2007), ‘평양성’(2011), 시리즈 ‘욘더’(2022) 등에 출연했다.
이준익 감독을 정진영은 “천재”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 감독은 기존에 하려던 것을 계속하려고 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며 “최근작으로 갈수록 더 좋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산어보’는 정말 아름다웠고 ‘욘더’에서도 다른 지평으로 갔고, 매번 대표작을 경신한다”고 했다.
이번 작품은 두 사람에게 모두 첫 숏드라마다. 정진영은 세로형 화면이라는 형식에 맞춰 연기 방식을 특별히 바꾸지는 않았다고 했다. 대신 기존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과는 다른 현장의 분위기를 경험했다. 촬영 규모가 상대적으로 간소했고, 카메라와 스태프가 배우와 가까운 거리에서 움직였다.
그는 “가까운 거리에서 스태프들의 열기와 감정을 느끼니 부담스럽지만 재밌기도 했다” 고 돌아봤다. 숏폼이라는 형식에 대해서는 “멀리서 관조하기보다 인물의 감정에 쑥, 깊이 들어오는 게 장르적 특성 중 하나인 것 같다”고 했다. 작품은 9일 롯데시네마에서 개봉하고, 이후 숏폼 플랫폼 레진스낵을 통해 공개된다.
정진영은 데뷔 40년을 눈앞에 둔 배우이면서 영화 ‘사라진 시간’(2020)으로 데뷔한 영화감독이다. 그는 “두 번째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로, 감독으로 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그가 바라는 것은 거창한 수식어가 아니다. “연기를 한 덕분에 가장으로 살았고, 지금도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합니다. ‘저 사람은 자기 것이 있네’라는 평을 듣는다면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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