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최근 남북을 ‘두 개의 국가’(兩個國家)라고 표현해 한국 정부가 문제를 제기한 가운데 중국이 광주비엔날레의 ‘대만관’ 명칭에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은 1992년 한·중 수교 공동성명까지 거론하며 한국 정부가 정치적 약속을 ‘실제 행동’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4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궈자쿤 대변인은 전날 밤 홈페이지에 공개한 기자와의 문답 형식의 입장문에서 “광주비엔날레 주최 측이 잘못된 방식을 고집하며 중국 대만 지역이 그 신분에 맞지 않는 명칭으로 전시에 참여하도록 용인했다”며 “이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공개적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궈 대변인은 “중국은 이에 단호히 반대하며 이미 한국 측에 엄정한 교섭을 제기해 관련 측이 즉각 잘못된 방식을 바로잡을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엄정한 교섭 제기’는 중국이 외교 경로를 통해 강하게 항의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는 “한국 정부가 정치적 약속을 준수하고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며 실제 행동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실천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1992년 한·중 수교 공동성명을 거론하며 “대한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고, 중국에는 하나의 중국만 존재하며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입장을 존중한다고 명확히 밝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올해 들어 한국 측은 하나의 중국 입장을 견지하는 데 변화가 없다고 여러 차례 명확히 밝혔다”고 덧붙였다.
중국 측이 ‘대만관’ 문제의 근거로 든 한·중 수교 합의는 최근 왕 부장의 발언을 놓고 한국 정부가 문제를 제기한 근거이기도 하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달 28일 비공개 기자간담회에서 “사후에 중국 측 발표문에 ‘두 개의 국가’라는 표현이 있어서 그 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다르기 때문에 엄중하게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3일 뒤늦게 알려졌다.
위 실장은 “한국과 중국이 수교할 때 만들어진 합의에 따르면 중국은 우리의 통일을 지지하는 것으로 돼 있다”며 “‘두 국가’가 되면 통일과 멀어지기 때문에 우리 입장과 배치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칫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고 우리 입장과도 맞지 않는다는 것을 전달했다”며 “그런 오해를 야기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왕 부장은 지난달 19일 방한해 조현 외교부 장관과 회담했다. 중국 측은 당시 보도자료에서 왕 부장이 “한국과 조선 두 개의 국가가 점차 평화 공존을 향해 나아가고, 최종적으로 반도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안정을 실현할 것이라고 낙관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중국이 최근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수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다만 위 실장은 “왕 부장이 저와 면담할 때 ‘두 국가’를 거론하지는 않았다”며 “다른 협의 과정에서 비슷한 얘기가 거론된 적은 있지만 과거에 중국이 한 적이 있는 정도의 표현이었다”고 부연했다.
광주비엔날레를 둘러싼 논란은 국립대만미술관의 전시 명칭을 두고 불거졌다. 대만 문화부는 그동안 ‘대만관’으로 협의해 왔지만 주최 측이 지난 6월부터 명칭을 국립대만미술관의 약칭인 ‘NTMoFA’로 바꿨다고 항의했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국가관이 아닌 기관관으로 계약했기 때문에 기관명 약칭을 사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대만 측과 국내외 문화예술계에서 명칭 변경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원활한 전시를 위해 국립대만미술관의 국가관 변경 신청을 승인했다.
이에 중국 작가 등으로 구성된 중국 파빌리온팀은 작품 설치를 중단한 데 이어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전시 철수를 공식 선언했다.
중국팀은 “강력한 항의의 뜻을 표명하기 위해 전시 철수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며 “광주비엔날레 주최 측이 대만 지역의 전시 참가와 관련해 잘못된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정치적 요소가 예술 영역에 개입하는 상황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주한 중국대사관도 같은날 대변인 명의 담화에서 “주최 측은 중국 대만 지역이 자신의 신분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공공연히 허용했다”며 “이는 한·중 관계의 정치적 기반을 직접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궈 대변인은 대만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을 향해서도 “문화교류와 회의·전시 등의 기회를 빌려 정치적 조작을 하고 독립을 꾀하는 도발을 벌이고 있다”며 “그 정치적 기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는 1992년 공동성명 이후 대만 문제와 관련해 ‘하나의 중국’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으며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최근 이를 재확인했다. 다만 박두순 외교부 대변인은 3일 정례브리핑에서 “이번 사안은 문화예술 영역에서 민간이 자체 판단하에 결정한 것으로, 우리 정부의 대만 관련 입장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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