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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안 들으면 췌장까지 잘라낸다”…한미약품, 희귀질환 ‘주 1회 주사’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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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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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인슐린이 지나치게 분비돼 반복적으로 저혈당에 빠지는 아이들이 있다.

 

한미약품 제공
한미약품 제공

약으로 혈당이 잡히지 않으면 포도당을 계속 공급해야 하고, 심한 경우 췌장을 대부분 잘라내는 수술까지 받아야 한다.

 

선천성 고인슐린증(Congenital Hyperinsulinism·CHI)이다. 신생아 2만5000~5만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질환이지만 제때 치료하지 못하면 반복되는 저혈당으로 뇌 손상이나 발달장애가 남을 수 있다.

 

췌장을 광범위하게 절제한 환자는 수술 뒤 당뇨병과 췌장 외분비 기능 저하를 평생 관리해야 할 가능성도 크다. 한미약품이 이 질환을 겨냥해 ‘주 1회 주사’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4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오는 8~10일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리는 제64회 유럽소아내분비학회 연례회의(ESPE 2026)에서 선천성 고인슐린증 치료제로 개발 중인 ‘에페거글루카곤(HM15136)’의 임상 2상 연구 내용을 발표한다.

 

이번 학회에서는 필라델피아아동병원의 디바 드 레온-크러치로 박사가 ACHIEVE 임상 2상에 참여한 환자들의 기초 특성과 인구학적 자료를 공개한다. 새로운 유효성 결과가 아니라 어떤 환자들이 임상에 참여했는지를 보여주는 발표다.

 

CHI 치료가 어려운 이유는 쓸 수 있는 약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약은 ‘프로그리셈(성분명 디아족사이드)’이다. 이 약은 고인슐린증으로 발생하는 증상성 저혈당 관리에 허가돼 있다. 엄밀히 말하면 CHI를 적응증으로 명시해 FDA 승인을 받은 치료제는 아직 없다.

 

디아족사이드는 인슐린 분비를 억제하지만, 모든 환자에게 듣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 변이에 따라 반응하지 않는 환자가 있고 다모증과 체액 저류, 심부전 등의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FDA는 영유아에게서 폐고혈압이 발생할 위험도 경고하고 있다.

 

약으로 저혈당이 조절되지 않는 중증 환자는 고농도 포도당을 지속해서 공급받거나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병변이 췌장 전체에 퍼진 ‘미만형’은 췌장의 95~98%를 절제하기도 한다. 수술을 받아도 저혈당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인슐린 의존성 당뇨병이 생길 위험도 높다.

 

이 때문에 글로벌 제약·바이오기업들은 인슐린 분비를 억제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저혈당을 직접 막는 신약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한미약품보다 먼저 허가 단계에 진입한 곳은 덴마크 바이오기업 질랜드파마다.

 

질랜드파마는 글루카곤 유사체 ‘다시글루카곤’을 웨어러블 펌프로 계속 주입하는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신생아부터 12세 이하 어린이를 대상으로 임상 3상 세 건을 진행했다. 입원 중인 신생아·영아에게 필요한 정맥 포도당 투여량을 줄일 수 있는지, 가정에서 생활하는 환자의 저혈당 시간을 얼마나 단축할 수 있는지 등을 평가했다.

 

현재 FDA는 최대 3주 투여분에 대한 허가 신청을 심사하고 있다. 질랜드파마는 3주를 넘는 장기 투여 자료도 추가로 제출할 계획이다. 아직 CHI 치료제로 정식 승인된 것은 아니다.

 

한미약품의 에페거글루카곤도 글루카곤의 작용을 이용한다. 인슐린이 혈당을 낮춘다면 글루카곤은 간의 글리코겐 분해와 포도당 생성을 촉진해 혈당을 끌어올린다.

 

차이는 투여 방식이다.

 

다시글루카곤이 펌프를 통한 지속 주입을 택했다면 에페거글루카곤은 한 번 주사한 약효가 오래 이어지는 주 1회 제형을 목표로 한다. 한미약품의 지속형 바이오의약품 플랫폼 ‘랩스커버리’가 적용됐다.

 

한미약품의 ACHIEVE 임상 2상은 기존 치료를 받아도 저혈당이 반복되는 2세 이상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에페거글루카곤을 주 1회 피하주사로 투여한 뒤 안전성과 내약성, 약동학, 저혈당 감소 효과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결과에서는 가능성을 보였다.

 

2025년 ESPE·유럽내분비학회 공동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코호트 1 환자 8명 분석을 보면, 주당 평균 저혈당 발생 횟수는 치료 전 10.1회에서 8주차 2.8회로 72.3% 줄었다. 가정에서 측정한 기록에서도 16.0회에서 3.6회로 77.5% 감소했다.

 

이상반응은 복통과 설사, 구토, 메스꺼움 등 위장관 증상과 고혈당, 식욕 감소 등이 주로 보고됐다. 대부분 경증 또는 중등도였으며 치료 중단이나 사망으로 이어진 사례는 없었다.

 

한미약품은 지난 2월 FDA로부터 에페거글루카곤의 혁신치료제 지정(BTD)도 받았다. 중대한 질환에서 기존 치료보다 상당한 개선 가능성을 보여준 후보물질의 개발과 심사를 FDA가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아직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공개된 유효성 분석은 환자 8명을 대상으로 한 개방형 임상 결과다. 위약 대조군이 없고 참여 인원도 적어 효과와 안전성을 확정하려면 더 큰 규모의 후속 시험이 필요하다.

 

미국 레졸루트는 다른 길을 택했다. 개발 중인 ‘에르소데투그’는 글루카곤 유사체가 아니라 인슐린 수용체에 결합하는 완전 인간 단일클론항체다. 인슐린이 수용체를 과도하게 활성화하지 못하도록 조절해 저혈당을 막는 방식이다.

 

개발 속도는 빨랐지만 임상 3상의 벽을 넘지 못했다.

 

레졸루트가 2025년 12월 공개한 글로벌 임상 3상 ‘sunRIZE’ 결과를 보면, 고용량 투여군의 저혈당 발생 횟수는 약 45% 줄었다. 그러나 위약군에서도 40% 감소해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연속혈당측정기로 평가한 저혈당 지속시간 지표도 목표를 충족하지 못했다.

 

이 시험에는 63명이 참여했다. 회사는 일부 분석에서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FDA와 후속 개발 방향을 논의하고 있지만, 임상 3상까지 도달한 후보물질도 허가로 직행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줬다.

 

CHI는 환자 수만 놓고 보면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 그러나 기존 약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가 적지 않고, 어린 나이부터 반복되는 저혈당과 치료 부담을 견뎌야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선택지가 절실하다.

 

질랜드파마가 펌프형 지속 투여로 허가 문을 두드리고 레졸루트가 항체 치료제의 돌파구를 찾는 사이, 한미약품은 주 1회 주사라는 길을 택했다.

 

승부는 투약 횟수만으로 갈리지 않는다. 저혈당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줄이는지, 어린 환자가 장기간 견딜 수 있는 안전성을 확보하는지가 최종 허가의 문턱을 가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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