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플랫폼과 호텔·리조트 업계의 경쟁 무대가 달라지고 있다. 객실이나 항공권을 싸게 파는 데서 벗어나 여행 전 예약부터 현지 이동, 공연과 체험, 미식까지 한 번에 묶는 경쟁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여행 플랫폼은 외부 사업자의 상품을 끌어들이며 선택지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호텔과 리조트는 숙박시설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강화한다. 고객이 여행을 계획하는 순간부터 현지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얼마나 오래 붙잡아둘 수 있느냐가 새로운 승부처로 떠올랐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놀유니버스가 운영하는 NOL은 최근 해외 패키지여행 플랫폼 ‘트립스토어’와 연동해 해외패키지 서비스를 전면 개편했다.
트립스토어가 보유한 국내 주요 여행사의 해외패키지와 에어텔 약 500만개를 NOL에서 일정과 가격, 상품 구성별로 비교하고 예약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여러 여행사 사이트를 각각 찾아다니지 않아도 한곳에서 상품을 고를 수 있게 됐다.
상품을 직접 모두 확보하는 대신 외부 서비스를 NOL 안으로 끌어들이는 ‘오픈플랫폼’ 전략이다. 앞서 카셰어링 서비스와 연결한 데 이어 해외패키지까지 범위를 넓혔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자체 상품을 일일이 만드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상품 수를 늘릴 수 있고, 이용자는 여러 앱을 오가는 수고를 덜 수 있다. 결국 한 앱 안에서 여행 준비를 얼마나 많이 해결할 수 있느냐가 경쟁력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여행 플랫폼들의 영역 확장은 NOL만의 움직임도 아니다.
여기어때는 현재 국내·해외 숙소뿐 아니라 항공과 패키지여행까지 판매하고 있다. 실제 홈페이지에는 일본과 중국, 호주 등 해외 패키지 상품이 함께 올라와 있다.
여기에 투어 영역도 키우고 있다. 여기어때가 공개한 가이드 투어 파트너 모집 자료를 보면 올해 2월 기준 앱 누적 다운로드는 5200만건, 누적 거래액은 14조원으로 제시됐다. 4월 기준 이용자 가운데 20·30대 비중은 54%다. 숙박 고객을 투어와 액티비티 구매로 연결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마이리얼트립 역시 숙소와 항공권, 투어·티켓을 한 플랫폼에서 판매하고 있다. 특히 현지 투어나 입장권처럼 여행지에서 직접 소비하는 상품을 별도 영역으로 운영하며 예약부터 바우처 발급까지 플랫폼 안에서 처리한다.
상품 종류를 늘리는 것과 함께 ‘여행을 떠날 이유’를 직접 만드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여기어때의 ‘콘서트팩’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숙박권과 공연 티켓을 한꺼번에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특정 여행지를 선정해 공연 자체를 여행 콘텐츠로 만든다.
열 번째 콘서트팩 여행지는 경남 거제다. 최근 집중호우 피해를 입은 거제의 여행 수요를 끌어올린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걸그룹 리센느와 코미디언 이선민·유영우가 참여해 콘서트와 토크쇼를 진행한다.
여행을 먼저 정한 뒤 공연을 찾는 기존 방식과 반대로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게 하는’ 구조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가격 할인만으로 경쟁하지 않고 자체 콘텐츠로 고객을 끌어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리조트 업계는 고객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숙박시설 안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체험시설을 늘리고 있다.
소노인터내셔널은 최근 소노캄 경주와 쏠비치 남해에 복합 놀이공간 ‘플레이 갤러리’를 열었다.
소노캄 경주는 첨성대 링 걸기와 투호 던지기, 비석치기 등 지역색을 입힌 9종의 카니발 게임을 넣었다. 쏠비치 남해는 이탈리아 놀이동산을 콘셉트로 잡고 남해 특산물인 유자를 활용한 ‘유자 마켓’과 ‘유자 빌리지’, ‘유자 스핀’ 등을 배치했다.
같은 놀이시설을 전국 사업장에 복제하기보다 지역 특성을 콘텐츠에 집어넣은 것이 특징이다.
소노호텔앤리조트는 현재 쏠비치 남해와 소노캄 경주를 포함해 전국 다수 리조트를 하나의 예약망으로 운영하고 있다. 리조트 안에서 먹고 자는 것뿐 아니라 즐길 거리까지 해결하도록 해 체류시간과 시설 이용을 함께 늘리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호텔들도 객실과 뷔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콘텐츠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은 프렌치 향수 브랜드 킬리안 파리와 협업해 향수 ‘Angels’ Share’에서 착안한 칵테일을 선보였다.
코냑과 오크, 시나몬, 통카빈 등 향수를 구성하는 이미지를 바텐더가 칵테일의 맛과 향으로 다시 풀어내는 방식이다. 호텔 로비 라운지가 단순히 술을 마시는 장소가 아니라 브랜드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바뀌는 셈이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은 현재 11개 레스토랑과 바를 운영하며 식음 콘텐츠를 객실과 별도의 핵심 상품으로 두고 있다.
서울가든호텔도 가을을 맞아 일식당 ‘단야’와 뷔페 ‘라스텔라’를 중심으로 미식 콘텐츠를 강화했다.
단야에서는 스시 오마카세와 가이세키 코스를 내놓고 가족 모임과 상견례, 비즈니스 고객을 겨냥한 프라이빗 룸 메뉴를 운영한다. 라스텔라는 홍소육과 몽골리안 비프, 어향가지, 유린기 등 중국 각 지역의 요리를 앞세운 메뉴를 선보였다.
호텔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라스텔라는 세계 각국의 요리와 프라이빗 다이닝룸, 와인 등을 결합한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평일 저녁 성인 가격은 8만8000원, 주말·공휴일은 10만3000원이다.
여행업계의 방향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플랫폼은 더 많은 외부 상품을 끌어들이고, 호텔과 리조트는 자체 공간에 체험 콘텐츠를 집어넣는다. 숙소 한 곳을 예약하거나 항공권 한 장을 판매하면 고객과의 관계가 끝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여행업계의 경쟁은 계획부터 이동, 식사, 체험까지 여행의 전 과정을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업계가 파는 것도 더는 ‘방’이나 ‘티켓’ 한 장이 아니다.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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