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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상황 가정 훈련도 했었던 우리… 1999년 ‘전시 양곡 배급훈련’ [사진기자 이제원의 30년 된 외장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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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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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dak 필름 한 롤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며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카메라에 표시된 필름 카운터가 25 정도가 되면 고민이 시작됐다. 필름을 새걸로 갈아야 하나 남은 거로 찍어도 될까? 제한된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신중함과 긴장감, 설렘은 지금의 디지털카메라 시대에는 느낄 수가 없는 감정이다.

 

사진기자는 본인이 취재했던 사진을 나름의 방식으로 보관한다. 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사진의 중요도를 떠나 보관을 많이 하는 사진기자이다. 역사의 중요했던 순간도 있었고, 상황이 기억도 없는 시답지 않은 사진도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담은 기념사진도 있고 취재와 출장 중에 보이는 나의 모습도 있다.

 

아주 먼 옛날의 모습은 아니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열어본 나의 외장하드를 독자들과 같이 꺼내보고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1999년 8월 18일 서울 성동구 금호2동 사무소에서 전시 상황을 가정해 열린 ‘전시 양곡 배급훈련’에서 주민들이 쌀을 배급받고 있다. 이제원 기자
1999년 8월 18일 서울 성동구 금호2동 사무소에서 전시 상황을 가정해 열린 ‘전시 양곡 배급훈련’에서 주민들이 쌀을 배급받고 있다. 이제원 기자
1999년 8월 18일 서울 성동구 금호2동 사무소에서 전시 상황을 가정해 열린 ‘전시 양곡 배급훈련’에서 주민들이 쌀을 배급받고 있다. 이제원 기자
1999년 8월 18일 서울 성동구 금호2동 사무소에서 전시 상황을 가정해 열린 ‘전시 양곡 배급훈련’에서 주민들이 쌀을 배급받고 있다. 이제원 기자

1999년 8월 18일 서울 성동구 금호2동 사무소 앞. ‘양곡 배급소’라고 적힌 흰색 간판 아래 쌀자루가 산처럼 쌓였다. 소총을 든 군인들이 사이로 주민들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노란 완장을 찬 관계자들은 묵직한 쌀자루를 한 포대씩 건넸다. 

 

이날 서울 성동구 금호2동 사무소에서는 전쟁 등 국가비상사태에 대비한 전시 양곡 배급 실제훈련이 진행됐다. 전쟁이 나면 시민들의 일상도 멈춘다. 평소처럼 필요한 식량을 사고파는 일이 어려워지고, 정부가 확보한 양곡을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비상체계가 가동된다. 이날 훈련은 그런 상황을 가정해 배급소를 설치해 양곡을 옮기고 주민에게 빠짐없이 전달하는 과정을 실제처럼 진행한 것이다.

 

사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쌀과 총의 낯선 조합이다. 한쪽에서는 주민들이 두 손으로 쌀을 받아 들고, 그 앞에 철모와 군복 차림의 장병들이 소총을 든 채 쌀자루 주변을 지킨다. 생존에 필요한 가장 일상적인 물건인 ‘쌀’과 전쟁을 상징하는 ‘총’이 한 장의 사진 안에 들어왔다. 동사무소 앞 골목, 천막 아래 놓인 나무 책상, 손으로 나르는 쌀자루, 전쟁에 대비한 국가의 계획은 이날 서울의 한 동네에서 쌀 한 포대를 건네는 아주 구체적인 장면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에는 을지연습을 비롯한 비상대비 훈련이 지금보다 주민들의 생활 가까이에서 펼쳐졌다. 관공서와 군·경뿐 아니라 시민들도 대피와 식량 배급 같은 훈련에 직접 참여했다. 행정기관뿐 아니라 군과 경찰, 주민이 참여해 전쟁 상황을 가정한 여러 훈련을 벌였다. 주민 대피와 비상급수, 의료지원, 양곡 배급 등 실제 전쟁이 벌어졌을 때 시민들의 생활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확인하는 훈련이었다. ‘전시 양곡 배급’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필름 속 주민들은 쌀자루를 받아 들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훈련이 끝나면 ‘양곡 배급소’ 간판도 내려갔을 것이다. 전쟁을 대비한다는 말이 주민 한 사람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쌓여 있는 쌀자루와 총을 든 군인이 한 장면으로 설명하고 있다. 구경 나온 듯 골목을 메운 주민들의 모습에서는 긴장감보다는 동네 행사를 바라보는 듯한 1999년 서울 금호동 일상의 표정도 읽힌다.

 

지난 2일 국가데이터처에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2025년)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3.9㎏으로 전년 대비 3.4% 감소하며 역대 최저 수준을 보였다. 30여 년 전 양곡 소비량의 절반 정도의 수치를 보이고 있다. 1999년 ‘양곡 배급소’ 사진을 보니 낯설면서도 묘한 시대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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