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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용 독서 폭식 벗어나… 읽고 생각하는 힘 키워야 [심층기획-읽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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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름·김은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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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AI시대 독서량 급감 심각하지만
단순 양적 확대 정책은 경계해야
학업성취 연계 땐 사교육 부작용
말놀이·역할극·토론식 수업 주목
지문풀이 대신 어휘교육 병행 필요

美, 뇌 연구 기반 ‘읽기과학’ 도입
어휘·텍스트 이해 등 단계별 학습
핀란드는 범사회적 협력체계 구축

인공지능(AI) 시대 읽기 환경의 변화로 학생들의 독서량이 급감하면서 정부가 학교 독서교육 강화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독서량을 늘리는 데에 매몰될 경우 문해력 증진 효과를 도모할 수 없고, 기존 주입식 교육처럼 독서마저 또 다른 평가와 실적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양적 확대식’ 접근을 넘어 교육 체질을 개선하는 ‘질적 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일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 국민독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초(4~6학년)·중·고교생의 연간 평균 독서량은 2019년 41.0권에서 2025년 31.5권으로 10권가량 급감했다. 일주일 평균 독서시간 역시 180.2분에서 150.2분으로 16.6% 감소했다. 세계일보가 종로학원에 의뢰해 지난달 26~28일 초·중·고 학부모 5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자녀가 스스로 종이책을 읽는 습관이 형성되었다’고 답한 학부모는 10명 중 3명(34.2%)에 불과했다.

정부는 이에 대응해 학교 독서교육을 대폭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교육부는 7월 ‘학교 독서교육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독서교육을 국어 교과 중심에서 전 교과로 확대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독서교육 집중 학년’으로 지정하고 교과와 연계한 독서·탐구·토론수업을 늘린다. 2030년까지 매년 1000개의 독서 연계 교수·학습모델을 개발하고, ‘매일 아침 10분 함께 책 읽기’ 등 학교별 독서 프로그램도 확대할 계획이다.

 

◆양적 확장에 갇힌 정책…AI시대엔 ‘무용지물’

 

전문가들은 독서량 감소를 ‘양적 확장’ 문제로 접근해서는 실질적인 문해력 증진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독서 시간과 행사 횟수를 늘려 이를 평가하는 방식은 수행평가 등 내신 부담과 맞물려 사교육만 양산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류선정 한국·핀란드 교육연구센터 소장은 지난달 한국교육개발원의 ‘세계교육 리포트’를 통해 “한국의 독서교육은 학업 성취와 기초학력 보장 중심 논의에 집중돼 있다”며 “특히 독서기록장 작성, 수행평가, 독후활동 결과 제출 등 결과 중심 활동의 비중이 높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나치게 평가 중심으로 운영될 경우 읽기가 또 하나의 시험과 과업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며 “학생들의 자발적 읽기 경험 형성에는 상대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양진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도 “독서는 단순히 텍스트량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각 텍스트를 어떻게 입체적으로 소화할 것인가의 문제”라며 “시험을 전제로 하는 암기형 독서가 아닌, 글의 배경과 맥락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생성형 AI가 보편화된 환경에서 ‘주입식 독서’는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서무계 한국교육개발원 초중등교육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은 “요즘엔 AI에 ‘책 내용을 요약해줘’라고 입력만 하면 그대로 제출할 수 있는데 누가 그걸 읽겠느냐”라며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는 방향성은 맞지만, 책을 읽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 대해 정교한 설계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건강하게 자라자’라는 추상적인 교육과 같다”고 꼬집었다.

◆말놀이·역할극부터, ‘어휘망’ 교육까지

 

무엇부터 바꿔야 할까.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문해력 증진을 위해 토론식 수업과 어휘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 선임연구위원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말놀이나 역할극, 또는 토론식 수업 등 책의 내용을 습득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효과가 있다”며 “교사가 어려운 문장이나 숨은 뜻을 해설해 주는 한편 학생들의 일상과 밀접한 책을 고르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순 지문풀이 중심의 국어 수업에서 벗어나 어휘체계를 익히는 교육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현재 국어 수업은 지문을 읽고 답을 고르는 데 치중해 있다”며 “어휘의 속성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분류, 분절, 분화에 대해 아이들이 깨닫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테면 ‘야영장·야구장’의 ‘장(場)’이나 ‘신제품·신도시’의 ‘신(新)’처럼 접두·접미사가 들어간 단어를 ‘어휘망’으로 만들어 가르치고, 유의어·반의어·상위어 등을 맥락 속에서 찾아보게 하는 방식이다.

 

우리말의 특성을 고려한 한자어 유추 교육 역시 주요 과제로 제시된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 세대는 한자 교육을 (필수로) 받지 않아 낱말의 뜻을 유추하기 어려워하는데, 우리말에는 한자어가 많아 뜻을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평가·실적 넘어…독서 생태계 바꿔야

 

정부 정책이 학교 내 과제나 성과 제출용에 그치지 않으려면 독서교육의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연계된 독서 생태계를 조성하고, 학생의 발달 단계에 맞춘 문해력 지도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뇌 과학 연구에 기반한 ‘읽기 과학’을 문해력 교육에 도입했다. 현재 미국의 40개 이상 주(州)에서 도입한 해당 정책은 음소 인식, 파닉스, 유창성, 어휘 및 언어 이해, 텍스트 이해 등 읽기 능력 향상을 위한 요소를 단계별로 가르는 게 핵심이다. 김해련 한국교육개발원 미국통신원은 5월 ‘해외교육동향 리포트’에서 “미국은 문해력 문제를 개별 학생의 학습 문제로 보기보다, 교육과정과 교수체계 전반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며 “미시시피 등 일부 주에선 학생들의 학년 수준과 발달 단계에 맞춘 일관된 읽기 지도를 제공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교원 연수와 전문 지원체계를 함께 구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해력 교육을 ‘범사회적 협력 체계’로 접근하는 핀란드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핀란드는 2021년 ‘국가 문해력 전략 2030’을 제도화하고, 독서 프로그램을 일회성 캠페인 사업이 아닌 학교·유아교육기관·도서관·복지서비스·청소년기관 등이 참여한다. 이와 관련해 류 소장은 “향후 한국의 독서 정책은 문해력을 특정 교과의 학습 성과가 아닌 개인의 삶과 공동체, 그리고 민주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지탱하는 핵심 역량으로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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