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납 10건 중 8건 중국동포…반납·추납 수급자 104명→520명
李 “단기 거주 추납 모순”…국회 배제법 발의·공단 “국적 차별 안 돼”
“한 달 일하고 10년 치를 몰아내면 평생 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실제로 가능한 사례가 있지만, 외국인 누구나 한국에서 한 달만 일한 뒤 119개월 치 보험료를 한꺼번에 내고 곧바로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노령연금을 받으려면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20개월, 즉 10년을 채워야 한다. 사업장에서 보험료를 낸 기간이 1개월뿐이더라도 과거 119개월이 법에서 정한 추후납부(추납) 대상기간으로 인정된다면, 그 보험료를 한꺼번에 내고 120개월을 채울 수 있다.
실제로 국민연금공단 일선 지사에서는 방문취업(H-2) 자격으로 국내 사업장에 1개월 가입한 중국인이 과거 119개월분 보험료를 한 번에 추납해 노령연금 수급권을 얻은 사례가 확인됐다. 이 수급자는 지금도 매달 노령연금을 받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제도 개선 검토에 들어갔고, 국회에서는 외국인의 추납 자체를 막는 법안도 나왔다. 정작 국민연금을 운영하는 공단은 이 흐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2년 새 2.9배…올 상반기에만 994건
외국인의 추납 신청은 빠르게 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교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민연금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외국인 추납 신청은 2023년 530건에서 2024년 848건, 2025년 1517건으로 늘었다. 2년 만에 2.9배가 된 것이다.
올해는 1~6월 여섯 달 만에 994건이 접수됐다. 지난해 전체 신청 건수의 65.5%가 반년 새 몰린 셈이다.
물론 994건은 신청 건수일 뿐, 신청자 전원이 노령연금을 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추납보험료를 내고 총 가입기간과 연령 등 수급 요건까지 채워야 실제 연금이 나온다.
공단 자료상 ‘가입 개월 12개월 미만’ 외국인 노령연금 수급자도 2021년 15명에서 올해 상반기 60명으로 늘었다. 짧은 가입 이력을 가진 외국인이 추납으로 실제 수급권을 얻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신청 10건 중 8건은 중국동포
국적·동포 여부로 나눠보면 중국동포 비중이 압도적이다. 올해 상반기 외국인 추납 신청 994건 가운데 공단 자료상 중국동포는 792건, 79.7%였다. 신청 10건 중 8건꼴이다. 중국동포와 별도로 분류된 중국 국적자는 64건(6.4%)이었다.
중국동포는 별도 국적이 아니라 중국 국적을 가진 재외동포, 흔히 조선족으로 불리는 이들을 뜻한다. 국민연금공단 제출 자료가 중국동포와 그 밖의 중국 국적자를 나눠 집계한 결과다.
79.7%라는 숫자만으로 특정 집단 전체가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국내 체류 규모나 연령대, 과거 가입 이력이 신청 건수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는 공개된 자료만으로 알기 어렵다. 확인되는 사실은 올해 상반기 신청 994건 중 792건이 공단 자료상 중국동포로 분류됐다는 것뿐이다.
◆반환일시금 돌려주고 다시 추납…수급자 5배로
반환일시금을 받았다가 되돌려주고 추납까지 거쳐 노령연금 수급권을 얻는 외국인도 늘고 있다. 반환일시금은 가입기간이 짧아 연금 수급 요건을 채우지 못한 가입자가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납부한 보험료에 이자를 더해 돌려받는 제도다.
외국인이라고 출국할 때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본국법이 한국인에게 상응하는 급여를 주거나 한국과 사회보장협정을 맺은 국가의 국민, 그리고 방문취업(H-2)·비전문취업(E-9) 등 일부 체류자격 소지자가 대상이다.
반환일시금을 받은 뒤 국내에서 다시 가입자격을 얻으면 받은 돈에 이자를 더해 반납하고 과거 가입기간을 되살릴 수 있다. 여기에 별도로 인정되는 납부예외·적용제외 기간이 있다면 추납도 가능해진다.
반납과 추납은 다른 개념이다. 반납은 반환일시금을 받으면서 사라진 과거 가입기간을 복원하는 것이고, 추납은 법에서 인정하는 과거 보험료 공백을 보험료 납부로 가입기간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이 두 절차를 거쳐 노령연금을 받는 외국인 수급자는 2021년 104명에서 올해 상반기 520명으로 늘었다. 정확히 5배다.
◆‘한 달 일하면 119개월 산다?’…누구나 가능한 건 아니다
여기서는 선을 그어야 한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한 달만 일하면 누구나 119개월의 가입기간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추납은 가입기간을 자유롭게 사들이는 제도가 아니다. 실직이나 사업 중단 등으로 보험료를 못 낸 납부예외 기간, 보험료를 낸 뒤 무소득 배우자나 기초생활수급자 등의 사유로 적용에서 제외됐던 기간, 법에서 인정하는 군복무 기간처럼 추납할 수 있는 과거 이력이 실제로 있어야 한다.
외국인 역시 과거 추납 대상기간과 당시 국내 체류·외국인등록 여부가 확인 대상이다. 국외이주를 이유로 국민연금 적용에서 제외된 기간은 추납할 수 없고, 현재 추납 가능 기간은 최대 119개월이다.
과거 추납 대상기간이 전혀 없는 외국인이 처음 한국에 들어와 한 달 일한 뒤 곧바로 119개월치를 낼 수는 없다. 반대로 과거 국내 체류 과정에서 추납 요건을 갖춘 기간이 충분하다면, 실제 보험료를 냈던 기간이 짧아도 추납으로 최소 가입기간 120개월을 채울 수 있다.
이번에 확인된 1개월 가입 사례가 바로 이 경우다. 한 달치 보험료만 내고 연금을 받는 게 아니라, 1개월 가입에 과거 119개월분 보험료를 더 얹어 120개월을 채운 것이다.
◆李 “실거주 요건 강화” 주문, 국회는 추납 배제법
정부도 제도 개선 검토에 들어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7회 국무회의 비공개 회의에서 보건복지부의 ‘국민연금 외국인 추납 현황 및 개선 방안’을 보고받았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추납 외국인 규모를 물은 뒤 “국내에 단기 거주한 외국인들이 추납 자격을 갖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앞선 모두발언에서도 “어떤 제도를 설계하든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빈틈이 생긴다”며 “그 빈틈이 발견됐을 때 최대한 신속하게 메우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실거주 기간 등을 따져 자격 요건을 긴급히 강화할 필요가 있는지 국민 시각에서 검토해 달라고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복지부도 지난 21일 외국인의 추납제도 활용 현황과 해외 사례를 참고해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필요하면 관련 법령을 정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회 움직임은 한발 더 나갔다.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 등 13명은 지난 28일 외국인 가입자에게 추납 규정을 아예 적용하지 않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외국인의 임의가입을 제한하는 국민연금법 제126조에 추납 적용 배제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대통령의 주문이 국내 실거주 기간을 추납 자격 심사에 반영할지 검토하는 수준이라면, 이 개정안은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외국인은 과거 보험료 공백을 추납으로 채울 방법 자체가 사라지는 훨씬 강한 조치다. 둘 다 아직 확정된 제도는 아니다. 대통령의 주문은 검토 단계이고, 국회 개정안 역시 상임위 심사를 남겨두고 있다.
현행 요건에 따른 외국인의 추납은 불법이 아니다. 법이 정한 요건을 충족해 보험료를 내고 가입기간을 인정받는 것이다. 논란의 초점은 개인의 불법행위가 아니라, 단기 국내 체류자에게도 장기간의 추납을 허용하는 현행 제도 설계가 적절한지에 있다.
◆공단 이사장 “국적 따른 추납 차별은 안 돼”…납부기간 연동 제안
논란이 이렇게 정치권 입법으로까지 번지자, 정작 제도를 운영하는 국민연금공단이 30일 다른 목소리를 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이날 자신의 SNS에 ‘국민연금 추후납부제도의 취지와 문제점 그리고 보완 방안’이라는 글을 올려 입장을 밝혔다.
김 이사장은 먼저 추납 제도의 취지 자체에 대해 “납부 의무를 거부하다가 나중에 연금을 받을 시점에 몰아서 납부하고 혜택을 누리는 것은 전 국민이 참여하는 의무가입 사회보장제도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비교적 관대한 추납 제도를 허용해온 것은 한국의 노후빈곤이 심각하고 국민연금 제도가 뒤늦게 도입돼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의 추납 자체를 국적을 이유로 제한하는 방식에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는 “누구나 한국의 직장에서 일하면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국민연금과 국민건강보험료를 납부하게 돼 있다”며 “우리나라 사람도 외국에서 똑같은 의무와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료를 납부했는데도 외국인이라고 한국의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하거나 비싼 병원비를 물릴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1개월 납부 후 119개월 추납’처럼 짧은 납부 기간에 비해 지나치게 긴 과거 기간을 추납하는 방식에는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봤다. 구체적으로는 “보험료 납부기간과 추납 가능기간을 연동하고 실거주 여부를 지급 조건으로 할 수도 있다”며 최소 1년·3년·5년 등 일정 기간 보험료를 납부한 경우에만 추납을 허용하거나, 실제 납부한 기간만큼만 추납기간을 인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실거주 요건을 그대로 적용하면 해외에 거주하는 내국인도 추납 자격을 잃거나 연금 지급이 중지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은 구체적인 개선 방안은 보건복지부와 공단이 더 논의해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국회가 입법하면 될 일이라고 밝혔다.
특히 국적이나 특정 국가를 기준으로 추납을 제한하는 방식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장기간 거주했고 한국 국민연금에 실제 가입했으며 한국인과 동일한 보험료를 부담했다면, 단순히 국적으로 추납 권리를 차별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사회보장협정이 국가별로 내용과 목적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며, 상호주의라는 목적 자체는 정당하지만 국적을 이유로 한 차별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김 이사장은 올해 상반기 추납 신청의 국가별 분포도 직접 인용했다. 중국동포 792건(79.7%), 중국 64건(6.4%), 미국 47건(4.7%), 일본 30건(3.0%), 캐나다 29건(2.9%) 순이라며 “전체 외국인 추납 건의 80%가 조선족이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결국 외국인 추납 제한은 조선족이 내국인과 같은 수준의 사회보장 혜택을 갖도록 하는 것이 국민 정서상 받아들일 수 있는가의 문제로 흐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이번 논란의 구조를 “조선족 배제 논쟁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짚은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다른 동포 정책과의 형평성도 언급했다. 사할린 동포의 영주 귀국,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 국적 고려인의 귀국 허용 사례를 들었고, 파독 간호사·광부들이 한국에 거주하면서도 독일 연금을 받으며 노후를 보내는 사례, 미국 영주귀국 동포의 연금 수급권 확보를 위해 공단이 미국 사회보장청과 협력해온 사례도 소개했다. “사회보장협정의 존재 여부와 개인의 국민연금 기여에 대한 권리는 별개의 문제”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쟁점은 ‘외국인 연금’ 아닌 추납 자격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도 체류자격과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보험료를 낸 뒤 요건을 충족하면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노령·장애·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번 논란도 외국인에게 국민연금을 지급할 것이냐의 문제는 아니다. 국내 체류기간과 실제 보험료 납부기간이 짧더라도, 과거 국내 체류 중 발생한 적용제외·납부예외 기간을 최대 119개월까지 추납하도록 계속 허용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추납보험료를 전액 낸 만큼 현행법상 정당한 권리라는 시각과, 국내 체류·가입기간이 극히 짧은 사람까지 장기간 추납을 허용하는 것은 제도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맞선다. 여기에 이제는 “국적을 기준으로 제한하는 게 맞느냐”는 세 번째 쟁점까지 더해진 셈이다.
국회 개정안처럼 외국인 전체의 추납을 아예 막을 것인지, 공단 이사장 제안처럼 납부기간과 추납기간을 연동하는 식으로 조정할 것인지를 두고 정부·국회·공단의 입장이 서로 다르다.
신청 증가가 곧 같은 규모의 연금 수급자 증가나 국민연금 기금 손실을 뜻하지는 않는다. 추납자가 낸 보험료와 실제 지급될 연금액, 예상 수급기간까지 함께 따진 재정 분석은 아직 공개돼 있지 않다.
결국 정부와 국회가 정해야 할 것은 외국인의 연금 수급 여부 자체가 아니다. 국내 체류와 가입 이력을 얼마나 갖춰야 과거 보험료 공백까지 추납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그리고 그 기준을 국적으로 나눌 것인지 납부·거주 이력으로 나눌 것인지, 이 두 가지를 정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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