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부여 수몰·환경 변화부터 보상·기반시설·물 혜택까지 새 쟁점
김태흠 1000억원 약속 승계엔 “그대로 지원한다고 말할 단계 아니다”
정부가 충남 청양·부여 지천댐 건설을 확정하면서 찬반 논란의 무대가 ‘건설 여부’에서 ‘어떤 조건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로 넘어가고 있다.
특히 지천댐 건설에 반대해 온 박수현 충남지사가 정부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정부에 구체적인 설명과 지역 지원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향후 사업 추진 과정에서 충남도의 역할과 주민들의 선택이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박 지사는 31일 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충청남도는 정부의 지천댐 건설 추진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찬성’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박 지사는 “지천댐 건설에 대해 개인적으로 반대하지만 충분한 소통과 숙의가 먼저라는 원칙을 일관되게 말씀드려 왔다”며 “공론화위원회의 공정성·투명성·중립성을 요청했고 그 원칙에 따라 합리적인 결정이 내려진다면 결과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수용하겠다는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지난 27일 공론화 과정을 거쳐 건설 추진을 결정한 만큼 결과 자체는 존중하되, 이제부터는 정부가 주민들에게 ‘왜 지천댐이어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지사가 정부에 요구한 것은 크게 네 가지다.
지천댐이 충청권 메가프로젝트 등 첨단산업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건설 이후 청양·부여의 홍수 위험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다른 대안과 비교해 왜 지천댐을 선택했는지, 공론화위원회가 어떤 자료와 절차를 통해 결론을 냈는지를 공개하라는 것이다.
특히 박 지사는 정부가 첨단산업과 AI 대전환에 따른 용수 수요를 지천댐 건설의 근거로 제시한 데 대해 날을 세웠다. 그는 “이번 정부 발표는 과거와 달리 새로운 기업의 첨단 투자와 AI 대전환 시대의 용수 공급 차원에서 검토됐고 공론화위원회도 이런 부분을 고려했다는 취지”라며 “그렇다면 AI 대전환과 첨단 투자가 청양·부여에 댐을 짓는 것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설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청양·부여에 직접적인 수요가 없고 충남의 다른 지역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지천댐을 건설한다면 지역 주민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어떤 수요와 계획에 따라 용수를 공급하는지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박 지사가 단순히 정부 결정에 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 이후 검증’에 들어가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박 지사는 “현재는 충남도의 시간이 아니라 정부의 시간”이라고 했다. 정부가 결정의 근거를 제시하면 이를 토대로 충남도의 후속 입장을 정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미묘한 정치적 상황도 겹쳐 있다.
민선 8기 김태흠 전 충남지사는 지천댐 건설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물 부족과 홍수 조절뿐 아니라 향후 AI·첨단산업의 용수 수요에 대비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김 전 지사는 특히 정부 지원과 별도로 충남도가 청양·부여에 10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며 주민 설득에 나선바 있다.
반면 민선 9기 박 지사는 지천댐 건설에 반대하면서 충분한 소통과 숙의를 강조해 왔다.
그런데 정권과 도정이 바뀐 뒤 정부가 지천댐 건설을 확정했고, 현재 충남도지사와 청양·부여 지역 단체장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정부의 결정을 맞게 됐다.
야당 국민의힘 소속인 김홍열 청양군수와 김용우 부여군수는 지천댐 건설 필요성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김 군수는 정부 발표 직후에도 지천댐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주민 협의와 피해 보상, 지역개발 대책을 전제로 사실상 조건부 수용 입장을 밝혔다.
박 지사도 이제 사업 자체를 놓고 정부와 맞서는 대신 주민의 부담을 줄이고 지역에 돌아오는 몫을 키우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모습이다.
다만 김 전 지사의 ‘1000억원’ 약속을 그대로 승계할지는 선을 그었다. 기자회견에서 1000억원 지원 약속을 이어갈 것인지 묻자 박 지사는 “꼭 그대로 10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지금 말씀드릴 수는 없다”며 “현 단계에서 그렇게 말씀드리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민선 8기가 됐든 9기가 됐든 충남도가 주민들에게 약속한 부분은 주민들의 머릿속에 명확하게 각인돼 있다”며 “도가 청양과 부여의 짐과 미래를 함께 나누고 책임을 다하겠다는 원칙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결국 1000억원이라는 숫자는 승계하지 않았지만, ‘충남도가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은 승계한 셈이다.
정부의 결정 과정 역시 박 지사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박 지사는 정부 발표 직전 결정 내용을 구체적으로 통보받지는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충남도 패싱’이라고 규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8월 말쯤 공론화위원회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가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며 “충남도가 배제되거나 소외됐다는 생각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공론화위원회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공개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수는 주민들이다.
지천댐을 둘러싼 청양·부여 주민들은 그동안 ‘건설 찬성’과 ‘건설 반대’로 맞서 왔다. 하지만 정부가 건설을 확정하면서 논쟁의 질문 자체가 달라졌다.
이제 주민들이 선택해야 할 것은 단순히 ‘댐을 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만이 아니다. 댐 건설로 인한 수몰과 환경 변화, 생활권 변화 등을 어떻게 보상받을지, 지역에 어떤 기반시설과 관광자원을 확보할지, 댐에서 생산된 물의 혜택을 지역이 얼마나 공유할지, 정부와 충남도가 어떤 지원을 내놓을지 등이 새로운 협상의 대상이 됐다.
정부와 충남도, 청양·부여군 그리고 주민들이 어떤 합의점을 만들어낼지가 지천댐 사업의 다음 관문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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