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을 바라보는 한국 직장인의 시선이 ‘자아실현’보다 ‘먹고사는 문제’에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급여와 복지, 워라밸 등 현실적인 조건이 직업 선택과 만족도를 좌우했다.
29일 엘림넷의 온라인 설문 플랫폼 나우앤서베이에 따르면, 전국 만 20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내 직업관을 진단해 볼까? 한국 직장인의 직업에 대한 인식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70.3%가 직업의 가장 큰 의미로 ‘경제적 안정과 생계수단’을 꼽았다. ‘자아실현’은 8.3%, ‘삶의 만족’은 8.2%, ‘사회적 지위’는 5.5%에 그쳤다.
◆ “좋아하는 일보다 조건”…급여·워라밸이 직업 선택 좌우
특히 직업이 삶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높았다. 응답자의 87.4%는 직업이 삶의 만족도에 영향을 준다고 답했고, 84.6%는 직업이 자신의 정체성 형성에도 영향을 준다고 봤다. 그러나 ‘현재 직업이 나의 가치관과 잘 맞는다’는 응답은 58.2%에 머물렀다.
새로운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요소 역시 현실적인 조건이었다.
‘급여 및 복지’가 47.2%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고,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이 19.1%로 뒤를 이었다. 반면 직업의 성장 가능성이나 자아실현 등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을 차지했다.
현재 직업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가장 먼저 개선돼야 할 요소를 묻는 질문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공정한 보상·인센티브 확대’가 30.9%로 가장 많았으며, ‘워라밸 강화’가 27.0%로 뒤를 이었다. 직업 선택부터 만족도 개선까지 결국 ‘돈’과 ‘시간’이라는 두 가지 현실적 조건에 대한 요구가 집중된 것이다.
성별에 따라서는 미묘한 차이가 나타났다. 남성은 ‘급여’를 선택한 비율이 49.8%로 가장 높았지만, 여성은 ‘워라밸’을 22.7%로 꼽아 남성(17.0%)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연령별로는 직업을 바라보는 기준이 달랐다. 20대는 ‘성장 가능성’에 16.3%가 응답해 상대적으로 높은 관심을 보인 반면, 50대는 ‘급여’를 선택한 비율이 52.6%로 가장 높았다. 사회생활 초기에는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현재의 경제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엿보인다.
◆ 같은 직업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만족도 달라져
흥미로운 점은 직업에 부여하는 의미 자체가 직업 만족도와 연결됐다는 것이다.
직업을 ‘자아실현의 기회’라고 답한 응답자들은 가치관 부합도에서 평균 3.94점, 자기실현 가능성에서 4.00점을 기록했다. 반면 직업을 ‘경제적 생계수단’으로 인식한 응답자들의 점수는 각각 3.45점과 3.61점이었다.
같은 직업을 갖고 있더라도 이를 단순한 생계수단으로 보는지, 자신의 성장과 실현을 위한 기회로 보는지에 따라 체감하는 만족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직업에 대한 평가가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경향도 나타났다.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정체성 형성, 가치관 부합도, 자기실현 가능성, 사회적 기여 인식, AI 직업 전망 긍정도 등 6개 지표 모두에서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점수가 상승했다.
특히 ‘삶의 만족 영향’은 20대 4.07점에서 60대 이상 4.55점으로, ‘가치관 부합도’는 20대 3.42점에서 60대 이상 3.86점으로 높아졌다.
◆ AI 시대, 직장인 10명 중 7명 “이직 고민”
직업관 변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AI다. AI 기술 발전으로 인한 직업 환경 변화가 더 이상 막연한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년 사이 AI 기술 발전 때문에 이직이나 직업 변경을 고민한 적이 있는지를 묻자 67.1%가 한 번이라도 고민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11.1%는 실제로 이직이나 직업 변경을 준비했거나 실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AI에 대한 직장인들의 시선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신기술 발전이 자신의 직업 전망에 미칠 영향을 묻자 전체 순긍정도는 +34.3%포인트로 긍정적인 전망이 부정적인 전망을 크게 웃돌았다.
특히 남성의 평균 점수는 3.46점, 긍정 응답 비율은 57.6%로 여성(평균 3.27점·긍정 응답 48.8%)보다 낙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순긍정도 역시 남성은 +39.8%포인트, 여성은 +24.7%포인트로 모두 플러스(+)를 기록했다.
실제로 AI로 인해 이직을 준비했거나 직업 변경을 경험한 사람일수록 AI에 대한 전망 점수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AI를 직접 경험하고 행동에 옮긴 직장인들이 AI를 단순한 위협보다는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한국 직장인들에게 직업이 여전히 ‘나를 실현하는 수단’보다는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우앤서베이 케빈 수석연구원은 “AI로 인한 직업 변화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며 “남녀 모두 자신의 직업 전망에 대해 긍정적 응답이 부정적 응답을 압도한 것은 다행스러운 결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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